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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계약이던 시절 (상대, 예식, 이혼)

미니55 2026. 9. 8. 20:31

목차


    결혼이 계약이던 시절

    사랑이 아니라 가문이 짝을 정하던 그때의 이야기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 사람과 평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수없이 대화했어요. 저는 그게 당연한 과정이라고만 여겼는데 중세 유럽에는 그런 당연함이 아예 없었더라고요. 오늘은 사랑이 아니라 집안이 짝을 정하던 그 시절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결혼이 집안 계약이던 시절의 상대

    저는 얼마 전에 결혼을 했어요. 요즘은 결혼한다고 하면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걸 참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저도 먼저 결혼한 언니들이랑 친구들을 보고 남편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설레면서도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라 떨리고 싱숭생숭하고 가끔은 투닥거리기도 하면서요. 저는 그게 결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세 유럽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고 해요.

    그 시절 결혼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어요. 집안과 집안이 맺는 계약에 가까웠거든요. 특히 귀족 가문에서 결혼은 땅과 권력을 이어붙이는 정치적 수단이었어요. 신랑 신부가 서로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엄격한 계급사회였던 그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해요. 지금 우리처럼 다양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요.

    실제로 중세 유럽 역사를 보다 보면 왕실은 물론이고 귀족들도 수준이 맞는 가문끼리 이해관계를 따져 결혼한 경우가 정말 많더라구요. 어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도 그렇게 결혼했으니 기왕 할 거 가문에 도움이 되는 쪽과 맺어주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 부부가 되는 일도 많았겠죠ㅠㅠ 제가 현대에 살아서 그런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 돼요.

    평민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부모가 집안 형편이나 마을 안의 관계를 보고 짝을 정해줬거든요. 왕족이랑 귀족만 그런 줄 알았는데 평민도 다르지 않았다는 게 좀 놀라웠어요. 그래도 평민 쪽은 당사자 의견이 아주 조금은 더 반영될 여지가 있었다고 해요.

    귀족 집안은 훨씬 더 극단적이었어요. 아이가 요람에 있을 때 이미 약혼이 정해지기도 했고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에 두 집안이 아이들을 짝지어주자고 약속하는 일까지 있었어요. 물론 약혼과 실제 결혼은 달랐어요. 교회법상 진짜 결혼은 여자가 열두 살 남자가 열네 살은 되어야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 정해지는 건 약혼이고 결혼은 좀 더 자란 뒤에 이뤄진 거죠. 그래도 약혼 자체가 법적 구속력을 지녔으니 사실상 인생이 아주 어린 나이에 정해져버린 셈이에요.

    실제로 프랑스의 이자벨라는 여섯 살에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와 약혼했는데 두 사람은 스물세 살 넘게 차이가 났어요. 두 나라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계산이었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나이는 좀 비슷하게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스물세 살 차이라니 너무하잖아요ㅠㅠ 결혼이 아무리 정치적 수단이라고 해도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정하는 일인데 말이에요. 정작 본인들도 그렇게 나이 차이 큰 상대와 맺어지라고 하면 싫어했을 거면서요. 중세 유럽 역사를 보다 보면 귀족이라고 해서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귀족의 결혼
    땅과 권력을 잇는 정치적 계약. 요람에서 약혼이 정해지기도 했어요
    평민의 결혼
    부모가 집안 형편을 보고 결정. 당사자 뜻이 조금은 더 반영됐어요
    중세의 결혼식
    교회 문 앞에서 공개 선언. 하객보다 증인이 중요했어요
    현대의 결혼식
    서약 뒤 혼인신고까지. 형식보다 두 사람 마음이 중심이에요

    계약이던 시절의 결혼 예식은 어땠을까

    중세 유럽의 결혼식은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모습이랑 꽤 달랐어요. 요즘은 결혼식을 예식장이나 교회 안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그 시절에는 예식의 핵심 절차를 교회 문 앞에서 치렀어요. 신랑 신부가 문 앞에서 서약을 나눈 다음 안으로 들어가 미사를 드리는 순서였죠. 사실 여러 사람 앞에서 서약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것같기도 하지만요ㅎㅎ

    근데 왜 굳이 문 앞이었을까요. 결혼을 최대한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야 나중에 어느 한쪽이 결혼한 적 없다고 발뺌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이 시절 결혼식에서는 화려한 하객보다 결혼을 두 눈으로 지켜본 증인이 훨씬 중요했어요.

    사실 중세 유럽에서 결혼을 성립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두 사람의 동의였어요. 12세기 이후 교회법에 따르면 남녀가 지금 이 순간 서로를 배우자로 맞이한다는 현재형 서약을 주고받기만 해도 결혼이 유효했거든요. 놀랍게도 사제가 없어도 혼인 예고를 미리 안 해도 그 서약만 있으면 법적으로는 부부가 됐어요. 반지를 주고받는 것도 이 동의를 눈에 보이게 표시하는 방법이었고요. 그때는 지금 같은 혼인신고 제도가 없었으니 두 사람이 서로 동의한다는 그 말 자체가 곧 결혼이었던 거죠. 저도 결혼식에서 서약을 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 뒤에 혼인신고까지 따로 해야 법적으로 부부가 되잖아요. 사실 저는 집 문제 때문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을 나중에 올린 경우라 순서만 놓고 보면 중세랑 정반대네요ㅎㅎ

    또 하나 재밌는 건 신부가 흰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가 웨딩드레스 하면 당연히 떠올리는 새하얀 드레스는 사실 한참 뒤에 생긴 문화예요. 1840년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식에서 흰 드레스를 입은 게 크게 유행하면서 자리 잡은 거거든요. 예전에 빅토리아 여왕 이야기를 하면서 이 대목이 나왔던 기억이 나요. 어릴 때부터 웨딩드레스는 당연히 흰색이라고 믿었는데 그 역사가 생각보다 짧고 게다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됐다는 게 참 신기했어요ㅋㅋ 중세에는 그냥 자기가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것을 입었고 파란색이나 빨간색처럼 색깔 있는 옷도 많이 입었다고 해요.

    오히려 저는 이렇게 색이 자유로운 쪽이 더 재밌었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웨딩 촬영 때 흰 드레스도 물론 예뻤지만 유색 드레스를 고를 때가 훨씬 재밌었거든요. 핑크 드레스도 입어보고 싶고 노랑 드레스에도 자꾸 눈이 가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결국 남편 의견을 따라 핑크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모바일 청첩장을 돌렸더니 다들 핑크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해줬어요. 만약 중세처럼 색이 자유로웠다면 저는 아예 핑크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ㅎㅎ

    사랑은 결혼 앞에 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 뒤에 찾아오길 바라는 것이었어요

    계약이던 시절의 사랑과 이혼 이야기

    중세 유럽 결혼이 이렇게 가문끼리 정해지는 계약이었다면 사랑은 아예 없었을까요. 그건 또 아니에요. 흥미롭게도 교회법에서는 결혼이 성립하려면 당사자 두 사람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억지로 시키는 강제 결혼이 인정되지 않았어요. 실제로 12세기 후반부터는 공포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동의라면 그 결혼을 나중에 무효로 선언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규칙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의 마음이 결혼의 핵심이긴 했던 거죠. 시작은 계약이었지만 살다 보니 서로 진짜 사랑에 빠지는 관계요. 사실 이런 설정은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나 웹툰에서 단골로 나오는 소재예요ㅋㅋ 계약 결혼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사람이요.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 낭만이고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ㅠㅠ 얼굴도 모르고 지내다 어른들 손에 맺어진 사이인데 평생 사랑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고 산 경우도 분명 있었겠죠. 특히 앞에서 본 것처럼 나이 차이까지 크게 났다면 더더욱요.

    문제는 이렇게 서로 도무지 맞지 않을 때였어요. 지금처럼 이혼이라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었거든요. 가톨릭 교회가 이혼을 금지했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이혼이 흠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만큼 서로 안 맞으면 참고 살지 말라고 하잖아요. 제 주변에도 이혼한 분들이 있고 이제는 꽤 흔한 일인데 그 시절에는 아예 길이 막혀 있었다니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로는 두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지만 부모가 가문에 도움이 되라고 정해준 결혼을 대놓고 싫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맺어진 뒤에 안 맞아도 이혼조차 못 하고 평생 참고 살아야 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럼 방법이 아예 없었냐면 딱 하나 있었어요. 바로 결혼 무효였어요. 이혼이 이미 성립한 결혼을 끝내는 거라면 결혼 무효는 이 결혼이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거예요. 인정되는 조건은 서로 너무 가까운 친척인 경우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인 경우 당사자의 진짜 동의 없이 맺어진 경우 등이었죠. 재밌는 건 귀족들이 이 조건을 꽤 교묘하게 활용했다는 거예요. 결혼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알고 보니 우리가 먼 친척이더라는 식으로 무효 사유를 찾아내려 했거든요.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오늘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제 글의 단골손님 헨리 8세예요ㅋㅋ 이쯤 되면 이 사람 없이는 유럽 역사 이야기를 못 하는 게 아닐까요.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비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돌리려고 교황에게 허락을 구했는데 끝내 거절당했어요. 그리고 이 거절이 결국 잉글랜드 교회가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오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졌고요. 결혼 하나 무를 수 없어서 나라의 종교가 통째로 바뀐 셈이에요. 왕조차 이렇게 이혼이 어려웠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오죽했을까요.

    이렇게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나니 결혼을 앞두고 이 사람과 어떻게 살아갈지 수없이 대화했던 제 시간이 새삼 떠올라요. 저는 그게 당연한 과정이라고만 여겼는데 그런 대화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 거잖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을 맞춰가며 결혼할 수 있는 지금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NOTE
    이혼과 결혼 무효는 달라요. 이혼은 이미 성립한 결혼을 끝내는 것이고 결혼 무효는 그 결혼이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거예요. 중세 유럽에서 이혼은 막혀 있었지만 특정 조건이 맞으면 결혼 무효는 가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