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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조세핀 (첫만남, 결혼생활, 이별)

by 미니55 2026. 7. 22.

나폴레옹 하면 보통 전쟁이랑 알프스 넘는 그림부터 떠오르잖아요. 근데 이 사람 연애사가 웬만한 로맨스 소설보다 더해요. 여섯 살 연상에 아이 둘 딸린 과부한테 첫눈에 반해서 편지를 수천 통 써 보내고 나중엔 나라 때문에 그 사람을 놓아주고도 죽는 순간까지 이름을 불렀거든요. 오늘은 나폴레옹과 조세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볼게요!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첫만남

조세핀은 원래 이름이 조세핀도 아니었어요. 1763년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난 마리 조제프 로즈라는 이름의 귀족 아가씨였죠. 열여섯 살에 프랑스로 건너와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라는 장교와 결혼해서 아들 외젠과 딸 오르탕스를 낳았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평범한 귀족 부인의 삶이에요.

그런데 프랑스 혁명이 터지면서 인생이 완전히 뒤집혀요. 남편이 감옥에 갇혔고 조세핀 본인도 함께 투옥돼요. 공포정치가 한창이던 시절이라 감옥에 들어간다는 건 곧 목숨이 위태롭다는 뜻이었죠. 실제로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조세핀은 정치 상황이 뒤집히면서 겨우 풀려나요. 그것도 예정된 날짜를 하루 앞두고요. 하루만 늦었어도 역사가 통째로 달라졌을 거예요.

풀려난 조세핀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요. 감옥에서 사귄 친구를 통해 파리 사교계에 발을 들이는데 여기서 인생 2막이 시작되거든요. 미모와 세련된 매너로 순식간에 사교계의 꽃이 되고 유력한 정치인들과 어울리며 인맥을 쌓아요. 두 아이 딸린 서른 넘은 과부가 혁명 직후의 파리 한복판에서 자기 힘으로 자리를 만들어낸 거예요. 이 사람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죠.

나폴레옹이 등장하는 건 이 무렵이에요. 1795년경 스물여섯 살의 젊은 장교였던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보자마자 완전히 빠져버려요. 조세핀이 연상이였다니 의외죠. 거기다가 애기까지 둘이나 있었다니… 나폴레옹은 뭘 보고 빠졌던걸까요? 궁금해요ㅎㅎ 매력이 엄청났었나 봐요~

그때부터 나폴레옹의 편지 폭탄이 시작돼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심장이 불길에 휩싸였다느니 당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느니 하는 편지를 매일같이 써서 보냈어요. 나중에 전쟁터에 나가서도 포탄이 터지는 와중에 편지를 썼고 평생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가 수천 통에 이른다고 해요.

그런데 반전은 조세핀 쪽이었어요. 처음엔 시큰둥했거든요. 키도 작고 촌스러운 데다 풍류도 모르는 젊은 장교라고 생각했대요. 근데 조세핀이 안좋아했었다니 웃겨요ㅋㅋㅋ 그치 처음에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였을테니ㅋㅋ 나폴레옹이 외모로 막 매력적인건 아니였으니까~ 편지는 활활 타는데 답장은 미지근했던 거죠.

그래도 어떻게 연애편지로 잘 꼬셨네요ㅎㅎ 사실 저는 외모를 엄청 보는 편이라서 외모가 딱 내스타일 아니면 아무리 잘해줘도 매력으로 안느껴지고 싫던데ㅠㅠ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엄청난걸지도???? 결국 1796년 3월 9일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려요. 나폴레옹 스물일곱 조세핀 서른셋이었어요. 이때 마리 로즈라는 원래 이름 대신 나폴레옹이 부르던 조세핀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우리가 아는 그 조세핀이 탄생하게 된 거랍니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결혼생활

결혼식을 올린 지 이틀 만에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요. 신혼이 딱 이틀이었던 거예요ㅋㅋ 신혼이 이틀이였다니 너무 아쉬웠겠다ㅠㅠ 신혼 생활은 진짜 꿀떨어지고 행복한데ㅎㅎ

그런데 전쟁터에 가서도 편지질은 멈추지 않았어요. 당신을 못 본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삼 년이 지난 것 같다는 둥 밤새 그리워하고 있다는 둥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써 보냈죠. 심지어 곧 돌아갈 테니 그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편지까지 있어요. 조세핀의 체취를 그리워한다는 뜻이었대요.

나폴레옹이 조세핀 체취 좋아했다는거 이건 좀 유명하죠! 근데 저는 지금 입덧중이라 그런가… 좀 비위가 많이 상하네요ㅠㅠㅠ 토할거같아요. 사랑도 좋지만 이건 좀 취향이 독특하죠ㅎㅎ

문제는 파리에 남은 조세핀이었어요. 남편이 없는 동안 외로워하기는커녕 그 시간을 자유로 채웠거든요. 사교계 생활을 그대로 이어갔고 답장은 점점 뜸해졌어요. 심지어 다른 남자와 어울린다는 소문까지 나폴레옹 귀에 들어가요. 근데 원래의 조세핀이였으면 진짜 자유롭게 다른남자 만났을수도 있을것같아요… 감옥에서 나와 혼자 힘으로 사교계를 휘어잡던 사람이잖아요.

이집트 원정 중에 그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나폴레옹은 크게 분노해서 이혼까지 결심하는데요. 여기서 결국 마음을 돌려요. 조세핀이 데려온 두 아이 외젠과 오르탕스가 눈물로 매달렸거든요. 근데 나폴레옹이 의붓자식들도 아꼈다니. 벤츠남이였네요? 보통 그러기 쉽지 않을텐데ㅠㅠ 실제로 나중에 오르탕스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이혼시키라는 동생의 요청을 딱 잘라 거부할 정도였어요. 오히려 친형제들은 나폴레옹 덕에 출세해놓고 뜯어먹기만 했다는 평이 있을 정도고요.

그렇게 위기를 넘긴 두 사람은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러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조세핀은 황후가 된 거죠. 다비드가 그린 그 유명한 대관식 그림이 바로 이 장면이에요. 무릎 꿇은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이 관을 씌워주는 순간이요.

그런데 재밌는 건 이 그림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이에요. 나폴레옹 어머니와 누이들은 조세핀을 싫어해서 대관식에 아예 오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화목한 가족 모습을 원한 나폴레옹이 요청해서 그림에는 다들 참석한 것처럼 그려 넣었어요ㅋㅋ 나폴레옹 가족들 입장에서는 조세핀 싫어할만해요ㅠ 나이도 많고 애까지 딸린 여자를 솔직히 뭐가 좋았겠어요.

황후가 된 조세핀에게는 유명한 취미가 있었어요. 바로 장미예요. 우와 저도 장미 좋아하는데 조세핀이랑 공통점이 있네요! 파리 근교 말메종이라는 저택에 장미 정원을 만들고 250종이 넘는 장미를 모았어요. 직접 채집도 다니고 화가를 고용해서 자기가 모은 장미를 전부 그림으로 남기게 했죠. 지금도 그 그림들은 식물화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아요. 덕분에 사라질 뻔한 옛 장미 품종들이 기록으로 남았고요.

물론 돈은 어마어마하게 들었어요. 조세핀은 낭비벽으로도 유명했거든요. 드레스와 구두를 매년 수백 벌씩 사들였고 나중엔 나폴레옹 눈치가 보여서 자식들한테 몰래 돈을 빌리기도 했대요. 그래도 그 사치 덕분에 당대 유행을 선도했고 벼락출세한 사람들로 가득했던 궁정에 품위를 만들어줬다는 평가도 있답니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이별 이야기

두 사람 사이엔 딱 하나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어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였죠. 사실 조세핀은 아이를 이미 가진적이 있었으니까 문제가 없었을텐데… 아닌가? 나이가 조금 많아서 그랬을까요…? 조세핀이 나폴레옹을 만났을 때 이미 서른셋이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고요. 아무튼 그 시절엔 원인을 따질 방법 자체가 없었어요.

게다가 나폴레옹은 그냥 남편이 아니라 황제였잖아요. 제국을 물려줄 후계자가 없다는 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문제였고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황제였으니 어쩔수없었겠네요. 약간 헨리 8세도 생각나고…? 역시 왕이라면 후사 문제가 엄청 중요하긴 하니까요.

나폴레옹의 가족과 각료들은 계속 이혼을 압박했어요. 원래 조세핀을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니 이건 아주 좋은 명분이었죠. 결국 1809년 12월 나폴레옹은 이혼을 결정해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황제라는 자리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그렇지만 진짜 그 문제때문에 이혼을 결정하다니ㅠㅠ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이혼이 공식 발표되던 날 조세핀은 그 자리에서 오열하다가 실신했다고 해요. 열세 해를 함께 산 사람한테서 나라를 위해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듣는 기분이 어땠을까요.

그런데 나폴레옹이 이혼하면서 남긴 조건들이 좀 특이해요. 조세핀은 황후라는 칭호를 죽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했어요. 두 사람이 함께 지내던 말메종 저택도 조세핀에게 줬고요. 이혼한 아내한테 황후 자리를 그대로 남겨준 거예요. 심지어 조세핀이 또 빚을 잔뜩 지자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갚아주기도 했어요. 그래도 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사랑한 마음만큼은 진짜였네요.

그리고 1810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 재혼해요. 이듬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 태어나고 로마왕이라는 칭호를 받죠. 다른 여자랑 재혼해서 바로 아들이 생겼다니 또 뭔가 조세핀이 불쌍해요ㅠㅠ

목적은 이룬 셈이었지만 그 뒤 나폴레옹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어요. 마리 루이즈는 친정으로 돌아간 뒤 다른 남자와 재혼해버렸고 아들 나폴레옹 2세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곁에 없는 채로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자라다가 스물한 살에 세상을 떠나요. 훗날 이 아이가 황후로는 친어머니보다 조세핀이 더 어울렸을 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조세핀은 말메종에서 장미를 가꾸며 지내다가 1814년 5월 29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요. 쉰 살이었어요.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이 보나파르트 로마왕 엘바섬이었대요. 자기를 떠난 남자와 그 남자의 아들과 그 남자가 갇힌 섬 이름이요.

그리고 7년 뒤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나폴레옹이 눈을 감아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프랑스 육군 육군 총수 그리고 조세핀이었어요. 워털루에서 패한 뒤 유배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 하룻밤을 보낸 곳도 말메종이었고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한 연인이니 죽을때까지 그립고 보고싶었겠네요.

구분 조세핀 나폴레옹
세상을 떠난 해 1814년 1821년
마지막 남긴 말 보나파르트 로마왕 엘바섬 프랑스 육군 육군 총수 조세핀
마지막 머문 곳 말메종 세인트헬레나섬

재밌는 건 나폴레옹이 그렇게 원했던 후계자는 결국 대가 끊겼는데 조세핀의 핏줄은 지금도 유럽 곳곳에 남아 있다는 점이에요. 딸 오르탕스의 아들이 훗날 나폴레옹 3세가 되고 아들 외젠의 후손들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왕실로 이어져요. 그래서 조세핀에게는 유럽의 조상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답니다.

한 줄 정리
후계자를 위해 사랑을 포기한 남자와 황후 자리를 지킨 채 장미밭에서 생을 마친 여자. 그런데 제국을 이어받은 건 결국 조세핀의 핏줄이었어요. 역사가 참 얄궂죠.

자주 묻는 질문

조세핀은 왜 이름이 바뀐 건가요?
원래 이름은 마리 조제프 로즈였어요. 나폴레옹이 조세핀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 이름이 굳어졌답니다.
두 사람은 왜 이혼했나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황제라는 자리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이혼 후에도 황후였다고요?
맞아요. 나폴레옹은 이혼하면서도 황후 칭호와 말메종 저택을 그대로 조세핀에게 남겨줬어요.
말메종은 지금도 볼 수 있나요?
네 파리 근교에 박물관으로 남아 있어요. 두 사람의 유품과 장미 정원을 직접 볼 수 있답니다.

출처
위키백과 조제핀 드 보아르네 / 위키백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 나무위키 조제핀 드 보아르네 / 매일신문 오늘의 역사 1796년 3월 9일 / 쇼메 조세핀과 나폴레옹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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