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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이웃, 공포, 진실)

by 미니55 2026. 8. 2.

마녀사냥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평생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저를 마녀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운데 이게 수백 년 동안 유럽 곳곳에서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에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나 권력자가 먼저 나선 게 아니라 많은 경우 평범한 이웃들이 서로를 마녀로 지목하면서 시작됐거든요.

마녀사냥을 시작한 건 이웃이었다

한 마을을 예로 들어볼게요. 어떤 할머니가 형편이 어려워서 옆집에 먹을 걸 좀 나눠달라고 부탁을 해요. 근데 옆집이 매몰차게 거절하죠. 할머니는 서운한 마음에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돌아가요. 그런데 며칠 뒤에 하필 그 거절한 집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기르던 가축이 죽는 일이 생겨요. 그럼 거절했던 사람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내가 너무 매몰차게 굴어서 안 좋은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과 두려움이 뒤섞여요.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이 어느 순간 저 할머니가 우리 집에 해코지를 한 거야 하는 생각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렇게 한 명이 의심하기 시작하면 소문이 순식간에 번져요. 한 명 두 명이 수군거리다 보면 마을 전체가 그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하고요. 그러다 마을에 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도 전부 그 사람 탓이 돼요. 결국 누군가 정식으로 고발하면 그 사람은 마녀로 끌려가는 거죠. 무서운 건 이 모든 게 특별한 악당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거예요.

사실 마녀라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근데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 걸까요ㅠㅠ 평소에 옆집 앞집에 살던 이웃이 나를 모함해서 마녀로 몰아가면 진짜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그냥 좀 싸웠다거나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다는 이유로 신고했다는 게 너무한 것 같아요! 어떻게 같은 이웃끼리 그럴 수가 있죠? 마녀로 신고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면서 신고했다는 게 저는 믿기지가 않아요ㅠㅠ

이게 그냥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에요. 실제로 남아 있는 재판 기록들을 살펴본 역사가들이 딱 이런 흐름을 발견했거든요. 이웃끼리 사소하게 다투거나 부탁을 거절한 뒤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게 마녀 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정말 많았어요. 그러니까 마녀사냥의 진짜 씨앗은 대단한 악의라기보다 이웃 사이의 작은 갈등과 죄책감이었던 셈이에요.

여기서부터 좀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마녀는 원래부터 마녀라서 마녀가 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미움을 사는 순간 마녀가 된 거잖아요.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신고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신고하자! 이런 마음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누구든 마녀가 될 수 있었던 거네요.

마녀는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사람이 마녀가 됐다.

— 마녀사냥 연구자들의 공통된 결론

마녀사냥이 번진 공포의 구조

파트1에서 본 것처럼 이웃의 의심에서 시작된 마녀사냥이 왜 그렇게 무섭게 커졌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한번 의심받으면 빠져나올 방법이 거의 없었다는 거예요. 마녀라는 의심을 받는 순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마녀가 아니라는 걸 무슨 수로 증명하겠어요. 애초에 증명이 불가능한 일이라 의심을 받는 그 순간 이미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됐던 거죠.

그럼 주로 어떤 사람들이 몰렸을까요. 안타깝게도 곁에서 지켜줄 사람이 없는 이들이 표적이 되기 쉬웠어요. 처형된 사람의 약 여덟 명 중 일곱 명이 여성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과부나 혼자 사는 여성처럼 변호해줄 가족이 곁에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누가 옆에서 저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으면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거든요.

헐... 아니 진짜 마녀가 아닌 걸 대체 어떻게 증명하라는 거예요! 아닌데!! 진짜 답답했겠어요. 그냥 신고당하면 끝인 거잖아요. 아 어떻게 이런 게 다 있냐 진짜! 게다가 곁에 사람이 없는 여성들이 특히 더 많이 신고당했다니 더 안타까워요.. 지금 제가 읽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네요. 그 사람들은 얼마나 외롭고 억울했을까요ㅠㅠ

그런데 여기서 진짜 무서운 질문이 생겨요. 왜 그 시대 사람들은 이 광기를 멈추지 못했을까요. 사실 나서서 말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누군가를 변호하면 그 순간 왜 저 사람 편을 들지 너도 한패 아니야 하는 시선이 돌아왔거든요. 잘못 나섰다가는 나까지 마녀로 몰릴 수 있으니 다들 입을 다물거나 차라리 같이 손가락질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파트1에서 얘기한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신고하자는 마음이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거예요.

근데 또 변호 못 한 사람들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진짜 단체생활 할 때도 조금만 튀는 행동을 하면 어? 너? 너도 마녀야? 이렇게 되기 쉽잖아요... 그래서 저는 무서워서 말 못 하고 숨어있던 사람들한테는 차마 뭐라고 못 하겠어요.. 저 같았어도 솔직히 그랬을 것 같거든요ㅠ 그러다 보니 이런 무서운 생각도 들어요. 광기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싶은 거요. 제가 만약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렵네요ㅠㅠ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마녀사냥은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어요. 한 사람이 붙잡히면 혹독한 심문 끝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이름을 대고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한 마을에서 수십 명이 줄줄이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어요. 독일의 밤베르크라는 도시에서는 1620년대 후반 몇 년 사이에만 수백 명에서 천 명 가까이가 마녀로 몰렸다고 추정돼요. 작은 도시 하나가 통째로 공포에 사로잡혔던 거죠. 그리고 이런 대규모 사건은 이웃의 소문만으로 벌어진 게 아니라 열성적인 권력자가 앞장서고 강압적인 심문이 더해지면서 폭주한 경우가 많았어요.

한 마을에서 수십 명이 끌려갔다니.. 이런 거 읽을 때마다 현대에 태어난 게 진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ㅠㅠ 너무 끔찍하고 무섭게 느껴지네요.

마녀사냥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들을 좀 바로잡아 볼게요. 첫 번째 오해는 마녀사냥이 캄캄한 중세 암흑기의 일이라는 거예요. 근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건 중세가 아니라 16세기에서 17세기 그러니까 르네상스가 지나가고 근대로 넘어가던 시기였어요. 인쇄술이 발달해서 마녀를 어떻게 찾아내는지 적은 책이 유럽 곳곳으로 퍼졌고 종교개혁으로 사회가 어수선해지면서 오히려 이 시기에 광기가 폭발한 거죠. 우리가 가장 이성적이었다고 배우는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이 마녀로 몰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해요.

여기엔 날씨도 한몫했어요. 이 시기 유럽은 유난히 춥고 흉년이 잦았거든요. 갑자기 서리가 내려서 농사를 망치고 먹을 게 부족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져요. 그리고 그 불안은 누군가 탓할 대상을 찾게 만들죠. 실제로 앞에서 말한 밤베르크 같은 대규모 사건도 농작물이 얼어 죽은 흉년 직후에 터졌어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애먼 사람이 희생양이 된 거예요.

두 번째 오해는 약초를 잘 아는 산파나 치료사 같은 여성이 주로 마녀로 몰렸다는 이야기예요. 이건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저도 예전엔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근거가 약한 이야기예요. 실제 남아 있는 재판 기록을 보면 산파가 마녀로 고발된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거든요. 산파는 마을에서 신뢰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라 함부로 몰기 어려웠고요. 스코틀랜드의 경우 고발된 사람 중에 산파는 백 명 중 한 명도 안 됐다고 해요. 산파가 마녀의 대표였다는 건 사실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까워요.

헐! 아니 그럼 마녀사냥이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네요?? 인쇄술까지 발달했던 시대에 마녀사냥이 있었던 거라고요..? 믿을 수가 없어요ㅠㅠㅠ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누구든 탓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겠죠.... 음.. 그리고 저는 산파들이 가장 많이 희생당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다니 놀랍네요ㅠㅠ 사람들이 이성적이었다는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까 뭔가 더 충격적이에요!

NOTE

1487년에 나온 마녀사냥 지침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 우리말로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뜻이에요. 마녀를 찾아내고 심문하는 방법을 담은 이 책이 인쇄술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마녀사냥을 크게 부추긴 원인으로 꼽혀요.

그럼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까요. 규모를 보면 이게 단순히 몇몇 마을의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학자들은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마녀로 몰려 목숨을 잃은 사람을 약 4만에서 6만 명 정도로 추정해요. 그중 약 80퍼센트가 여성이었고요.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지금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는데 나라가 여러 작은 영지로 쪼개져 있어서 통제가 느슨했던 게 오히려 마녀사냥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이유 중 하나였다고 봐요.

그럼 이 광기는 어떻게 멈췄을까요. 18세기 들어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세상을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어요. 마녀라는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늘었고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을 못 믿겠다는 목소리도 커졌죠. 권력자들도 마녀사냥이 걷잡을 수 없이 남용되는 걸 보면서 슬슬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수백 년을 이어온 광기가 서서히 막을 내렸어요.

마녀사냥은 종교적 광기라기보다 사람들 사이의 두려움과 욕심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어요. 가장 합리적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 가장 많은 사람이 이렇게 희생됐다는 게 진짜 아이러니하고요. 근데 이걸 마냥 옛날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게 곁에 지켜줄 사람이 없는 이가 더 위험했던 그 구조가 지금이랑 완전히 다르지는 않잖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몰아가는 건 요즘에도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리도 그런 걸 마녀사냥이라고 부르잖아요.. 누구 하나 찍히면 사실 확인도 없이 신상을 밝히고 매장시키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마녀사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거네요.. 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가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주 묻는 질문

마녀사냥은 언제 가장 심했나요?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가 정점이었어요. 흔히 생각하는 어두운 중세보다 오히려 르네상스가 지난 근대 초에 더 심했답니다. 인쇄술과 종교개혁 시기가 겹치면서 광기가 폭발했어요.

마녀로 몰린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곁에 지켜줄 사람이 없는 여성이 많았어요. 과부나 혼자 사는 여성처럼 변호해줄 가족이 없는 경우가 특히 위험했답니다. 누구든 이웃의 미움을 사면 몰릴 수 있었어요.

산파가 주로 마녀로 몰렸다는 게 사실인가요?

널리 퍼진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실제 기록을 보면 산파가 고발된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어요.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까워요.

마녀사냥이 가장 심했던 지역은 어디인가요?

지금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었어요. 나라가 작은 영지로 쪼개져 통제가 느슨했던 게 마녀사냥이 크게 번진 이유 중 하나로 꼽혀요.

마녀사냥은 왜 끝났나요?

18세기 계몽주의가 퍼지면서 이성과 과학으로 세상을 보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어요. 마녀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늘었고 권력자들도 남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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