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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즉위 · 통치 · 오해

마리아 테레지아의 즉위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이름은 저도 굉장히 많이 들어본 것 같아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라는 것도 알고 대단한 통치자였다는 것도 얼핏 들었는데 정작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거든요ㅎㅎ 근데 이 사람 알고 보면 유럽 역사에서 손꼽히는 통치자였어요. 오늘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해볼게요.
마리아 테레지아는 171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주로 태어났어요. 문제는 태어날 때부터 좀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당시 유럽에는 살리카법이라는 오래된 법이 있었는데 딸은 아버지의 영토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없으면 가문의 대가 끊기는 거죠.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 카를 6세한테는 아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대책을 세워요. 1713년에 국사조칙이라는 법을 만들어서 아들이 없으면 딸도 영토를 물려받을 수 있게 못을 박은 거예요. 사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아들 없다고 슬퍼하고 아내를 탓하는 남자들만 잔뜩 봐서 그런지 딸을 위해 법까지 바꾼 아버지라니 좀 신선하더라고요ㅋㅋ 문제는 이게 오스트리아 혼자 정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유럽의 다른 강대국들이 인정을 해줘야 효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카를 6세는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니며 제발 내 딸의 상속을 인정해달라고 사정했어요. 딸의 상속권 하나 지켜주려고 아버지가 수십 년을 그렇게 애썼다니 이 부분만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해요ㅠㅠ 강대국들은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약속해요. 물론 그 대가로 이것저것 얻어내면서요.
그런데 여기 진짜 어이없는 반전이 있어요. 정작 아버지 카를 6세는 딸을 후계자로 제대로 키우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딸이 결국 남편한테 권력을 넘길 거라고 믿었거든요.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나라는 딸한테 물려주는데 진짜 정치는 사위가 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잖아요ㅎㅎ 그래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나 군사 전략 같은 건 거의 배우지 못했어요. 대신 궁정 예절이나 음악 언어처럼 당시 귀족 아가씨가 배우던 것들만 익혔죠. 제일 중요한 걸 쏙 빼먹은 셈이에요. 다른 나라들 설득하러 다닐 그 시간에 딸한테 정치랑 군사랑 외교를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긴해요ㅠㅠ
그리고 1740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요. 사냥 여행 중에 병을 얻어서였어요. 이제 스물세 살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 넓은 합스부르크 영토를 물려받게 됐어요. 근데 아버지가 눈을 감자마자 그동안 약속했던 강대국들이 싹 돌변해요. 살리카법을 어긴 여자가 무슨 통치냐면서 말이죠. 아 진짜 이것저것 얻어놓고 치사하죠. 근데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솔직히 현실적이긴 해요. 스물세 살 공주를 누가 만만하게 안 봤겠어요ㅠㅠ 특히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가 제일 먼저 오스트리아의 알짜배기 땅 슐레지엔으로 쳐들어왔어요. 뒤이어 바이에른과 프랑스까지 합세하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터졌어요. 준비도 안 된 스물세 살 여성이 즉위하자마자 유럽 전체를 상대로 싸우게 된 거예요. 돈도 군대도 경험도 조언해줄 사람도 없이 그야말로 혼자였죠. 저는 스물세 살 때 진짜 아무 생각 없는 어린애였거든요. 만약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세살인데 아빠가 돌아가시자마자 주변 어른들이 우르르 시비를 건다고 상상하니까 벌써 아찔해요. 이랬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대체 어떻게 그 대단한 통치자가 됐는지 다음 이야기에서 풀어볼게요.
그녀가 이뤄낸 통치와 개혁
자 그럼 준비도 안 된 채로 유럽 전체와 싸우게 된 마리아 테레지아가 어떻게 됐을까요. 놀랍게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위기가 그녀를 진짜 통치자로 만들었어요.
먼저 전쟁을 치르면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뼈아픈 사실을 깨달아요. 자기 나라의 행정이랑 군대가 생각보다 훨씬 허술했다는 거예요. 그동안 겉으로만 강대국이었지 속은 비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녀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라를 근본부터 뜯어고치기 시작해요.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각각이던 행정 기구를 하나로 모아 정리하고 세금 제도도 새로 짰어요. 세금이 제대로 걷혀야 나라 살림이 돌아가니까요. 군대도 현대식으로 바꿨어요. 다시는 슐레지엔 같은 알짜 땅을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으려고요. 이 대목에서 저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진짜 천재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ㅎㅎ 정치 교육은 제대로 받지도 못한 사람이 전쟁 끝나자마자 자기 나라의 약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그걸 하나하나 손봤다는 거잖아요. 배운 적도 없는 일을 직접 부딪쳐가며 해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그런데 마리아 테레지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빛나는 업적은 교육이에요. 1774년에 그녀는 정말 앞서간 결정을 내려요. 제국 안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의무교육을 도입한 거예요. 그것도 여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다 포함해서요. 지금이야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게 당연하지만 그 시절에 나라가 나서서 모든 아이를 교육하겠다고 한 건 유럽에서도 가장 앞선 축에 들었어요. 이게 저는 제일 놀라웠어요. 사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제대로 교육 못 받은 분이 많았고 특히 여자들은 초등학교만 겨우 마친 경우도 흔했잖아요. 근데 그 먼 옛날에 여자아이까지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니 정말 앞서간 사람이에요.
여기서 좀 재밌는 부분이 있어요. 이 교육 개혁의 모델을 어디서 가져왔냐면 바로 프로이센이에요. 마리아 테레지아가 평생을 두고 싸운 그 프리드리히의 나라 말이에요. 원수의 나라에서 좋은 건 배워온 거죠. 이게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솔직히 저는 지금 그때의 마리아 테레지아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이렇게 생각 못 하거든요ㅋㅋ 저는 한번 싫어진 사람이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일단 다 싫던데.. 근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기 감정을 딱 내려놓고 원수한테서도 좋은 건 배워서 자기 나라에 들여왔어요. 미워도 배울 건 배운다는 그 태도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것 같네요.
그런데 여기서 진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어요.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 모든 걸 해내는 동안 개인적으로는 무려 열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거예요. 그것도 19년이라는 기간 안에요. 아니 19년 동안 열여섯 명이면 거의 매년 임신 중이었다는 얘기잖아요. 이건 진짜 말도 안 돼요ㅠㅠ 저도 그렇고 제 주변도 임신하면 다들 기운이 없어서 출근조차 힘들어하거든요. 결국 버티다 못해 휴직하는 친구들도 꽤 많고요. 근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 몸으로 전쟁을 지휘하고 나라를 개혁했다는 거예요. 대체 체력이 어느 정도였던 건지 상상도 안 가요. 그리고 그 열여섯 명 중 막내 쪽에 있던 딸 하나가 바로 훗날 프랑스로 시집간 마리 앙투아네트예요. 그 유명한 앙투아네트가 이 대단한 여제의 딸이었다니 새삼 신기하죠.
마리아 테레지아의 열여섯 자녀 중엔 훗날 이름을 남긴 인물이 많아요. 장남 요제프 2세는 어머니에 이어 신성로마황제가 됐고 막내딸 쪽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비가 됐어요. 유럽 곳곳으로 자녀를 시집 장가 보내며 그녀는 유럽의 장모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아직도 남아있는 오해
자 여기까지 보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감이 오죠.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이 정도 업적을 남긴 사람인데 왜 우리한테는 그냥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 정도로만 기억되는 걸까요. 사실 저부터도 이름은 그렇게 많이 들었으면서 정확히 뭘 한 사람인지는 몰랐거든요. 여기에 오래된 오해가 하나 숨어 있어요.
먼저 짚고 갈 게 있어요. 마리아 테레지아는 사실 신성로마황제라는 최고 자리에 직접 오르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그 자리는 법적으로 여자가 앉을 수 없었거든요. 결국 아버지가 걱정하던 그림이 어느 정도는 현실이 된 셈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남편 프란츠가 그 황제 자리에 올랐어요. 겉으로만 보면 황제는 남편이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 황제의 아내인 셈이 된 거죠. 서류상 직함만 놓고 보면 남편이 더 높아 보였어요.
그런데 진실은 전혀 달랐어요. 실제로 나라를 다스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 시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어요. 심지어 남편 프란츠 본인조차 진짜 권력은 아내에게 있다는 걸 인정했어요. 직함만 보면 황제인 남편이 최고 권력일 것 같은데 실제 결정권자가 누군지 다들 알고 있었다니 좀 웃기죠ㅋㅋ 남편은 성격이 느긋한 편이었고 정치에는 큰 욕심이 없어서 주로 경제나 문화 쪽에 관심을 뒀어요. 사실 이게 참 다행인 일이였던것 같아요. 만약 남편이 권력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둘 사이가 꽤 삐걱거렸을 텐데 말이죠. 요즘 말로 하면 딱 부러지는 테토녀랑 느긋한 에겐남 조합이었나 봐요ㅎㅎ 나라의 큰 결정을 내리고 개혁을 밀어붙인 건 처음부터 끝까지 마리아 테레지아였어요. 직함은 남편이 가졌지만 나라를 실제로 움직인 손은 그녀의 것이었죠.
여자라 상속조차 위협받음. 통치 교육도 못 받음. 준비 안 된 스물세 살에 홀로 유럽 전체를 상대해야 했음.
행정과 군대를 개혁하고 유럽에서 가장 앞선 의무교육을 도입. 열여섯 자녀를 기르며 제국을 지켜낸 여제.
그러니까 마리아 테레지아를 그냥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로만 기억하는 건 좀 억울한것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녀는 여자라서 상속조차 위협받았고 여자라서 후계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여자라서 최고 직함마저 남편에게 양보해야 했어요. 그 모든 불리함을 뚫고 40년간 나라를 지키고 개혁한 사람인데 정작 역사는 그녀를 딸의 이름 뒤에 세워둔 셈이죠. 이렇게 멋진 사람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로 더 유명하다니 본인이 알면 좀 억울해할 것 같아요.
물론 그녀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떤 결정은 시대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고 모두를 만족시킨 통치자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준비 안 된 스물세 살의 여성이 유럽 전체를 상대로 살아남아 자기 나라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요. 다음에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화려한 왕비 뒤에 이런 대단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걸 한 번쯤 떠올려봐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