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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튜어트 (여왕, 결혼, 최후)

미니55 2026. 8. 19. 21:09

목차


    메리 스튜어트

    왕관을 쓰고 태어나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여왕

    1542년 겨울 스코틀랜드의 한 궁전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어요. 태어난 지 겨우 6일 만에 이 아기는 한 나라의 여왕이 돼요. 아빠가 세상을 떠났거든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왕관을 쓴 이 아기의 이름은 메리 스튜어트예요. 화려하게 시작한 이 삶이 세 번의 결혼과 19년의 유폐를 거쳐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죽어서 어떻게 두 나라를 하나로 묶었는지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왕관을 쓰고 태어나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여왕의 이야기예요.

    태어나자마자 여왕이 된 메리 스튜어트

    메리는 1542년 12월 8일 스코틀랜드 린리스고 궁전에서 태어나요. 근데 태어난 지 겨우 6일 만에 여왕이 돼요. 아빠인 제임스 5세가 딸이 태어나고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래서 갓난아기가 왕관을 물려받은 거예요. 실제 대관식은 생후 9개월 때 스털링성에서 치러졌어요. 아기가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여왕이 된 거죠.

    아빠가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나다니ㅠㅠ 이것만 봐서는 흔한 슬픈 역사의 시작 같아요. 보통 이렇게 지켜줄 부모님이 떠나버리고 어린 시절에 왕위를 물려받으면 안 좋은 결과인 인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여기서 재밌는 게 아빠 제임스 5세가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남긴 말이에요. 스튜어트 왕조가 여자로 시작했으니 여자로 끝나겠구나 하는 식으로 한탄했다고 전해져요. 원래 스튜어트 왕가가 여자를 통해 왕권을 얻어서 시작됐는데 이제 자기 대에서 딸로 끝나겠다고 절망한 거예요. 아들을 원했는데 딸이 나왔으니까요.

    역시 제임스 5세도 아들을 바랬었나봐요. 저는 이 부분을 보니까 헨리 8세가 생각나네요ㅡㅡ 아들한테 집착하던! 

    갓난아기 여왕을 두고 주변 나라들이 가만있지 않았어요. 특히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눈독을 들였죠. 헨리 8세는 메리를 자기 아들 에드워드랑 결혼시켜서 스코틀랜드를 손에 넣으려고 했어요. 참고로 메리는 헨리 8세랑도 피가 섞인 친척이에요. 메리의 할머니가 헨리 8세의 누나였거든요. 이 혈연이 나중에 메리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씨앗이 돼요.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까지 걸린 문제였으니까요.

    방금전에도 헨리 8세 이야기했는데 바로 등장하는 거 실화인가요....ㅋㅋㅋㅋ 헨리 8세는 진짜 여기저기 다 등장하네요ㅡㅡ 제 블로그에서 지분 1위인거같아요ㅋㅋ

    근데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개신교 국가인 잉글랜드랑 엮이는 걸 반대했어요. 가톨릭 국가였던 스코틀랜드는 전통적으로 프랑스랑 친했거든요. 그래서 잉글랜드랑 맺은 혼약을 깨버려요. 헨리 8세가 이거에 완전 폭발해서 스코틀랜드를 마구 침공하는데 이걸 거친 구애라고 불러요. 구애라는 말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수도원을 불태우고 국경 지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잔인한 전쟁이었어요. 청혼을 거절당한 화풀이를 전쟁으로 한 거죠.

    종교가 같은 나라들끼리 친할 수밖에 없죠. 저때는 지금이랑 다르게 종교가 굉장한 권력을 차지했었으니까요ㅎㅎ아 헨리 8세 혼약 깼다고 쳐들어오는 것도 뭔가 치사해요.

    결국 스코틀랜드는 메리를 지키려고 프랑스로 보내요. 다섯 살짜리 메리는 1548년에 프랑스 궁정으로 건너가서 거기서 자라요. 프랑스 왕의 아들인 프랑수아 왕세자랑 결혼시키기로 하고요. 메리는 프랑스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프랑스어 라틴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다 익혔고 시와 음악 승마 매사냥까지 배웠죠. 키도 크고 우아하고 머리도 좋아서 프랑스 궁정의 사랑을 독차지했어요. 참고로 이때 프랑스식으로 이름 철자를 스튜어트로 바꿨다고 해요. 원래 스코틀랜드에서는 스튜어트를 다르게 썼거든요.

    그리고 메리는 열다섯 살이던 1558년에 프랑수아랑 결혼해요. 이듬해 시아버지가 죽으면서 남편이 프랑스 왕이 되고 메리는 열여섯에 프랑스 왕비까지 돼요. 스코틀랜드 여왕이면서 동시에 프랑스 왕비. 그야말로 인생 절정이었죠. 근데 이 행복은 오래 못 가요. 남편 프랑수아가 결혼 2년 만인 1560년에 귀 염증으로 갑자기 죽거든요. 열여섯 나이에 왕비가 됐다가 열여덟에 과부가 된 거예요. 게다가 그 직전에 엄마까지 세상을 떠났어요. 아빠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가 열여덟에 남편이랑 엄마를 한꺼번에 잃은 거죠.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여왕이 되더니 열여섯에 프랑스 왕비까지 된 거예요? 스펙 대박이다ㅎㅎ 하는 순간 또 불행한 일들이 생기다니ㅠㅠ 메리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네요.

    메리 스튜어트의 위험했던 세 번의 결혼

    과부가 된 메리는 1561년 열여덟에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요. 근데 이 나라가 메리한테는 낯설었어요. 다섯 살에 프랑스로 가서 거의 평생을 거기서 자랐으니까요. 게다가 스코틀랜드는 그새 개신교 국가로 바뀌어 있었는데 메리는 독실한 가톨릭이었어요.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자기 나라인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는데 그곳이 낯설었다니 이건 또 얼마나 외로운 상황일까요. 거기다가 그새 종교까지 바뀌어버렸다니;; 메리한테 왜 이렇게 잔인한 일들만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두 번째 결혼을 해요. 상대는 사촌인 단리 경이에요. 메리는 이 남자한테 홀딱 반해서 결혼했어요. 키 크고 잘생겼거든요. 근데 이게 인생 최악의 선택이었어요. 단리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오만하고 질투 많고 야심만 가득한 남자였어요. 재밌는 건 최근 연구인데 1928년에 한 통계학자가 단리의 두개골을 초상화들이랑 비교해봤더니 실제로는 그림만큼 잘생기진 않았다고 해요. 메리가 환상을 보고 반한 셈이죠.

    근데 메리도 얼빠였다니 뭔가 재밌네요ㅎㅎ 역사에서 제 동지인 얼빠들이 자주 등장하네요. 겉만 번지르르한 거 알지만 그 얼굴을 거부하기 힘들긴 해요ㅠ.ㅠ 근데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잘생기지 않았다니.. 그냥 메리의 콩깍지였던건가요..

    결혼하자마자 문제가 터져요. 단리가 메리의 총애를 받던 비서 데이비드 리치오를 질투했거든요. 둘이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요. 결국 단리는 임신 6개월이던 메리가 보는 앞에서 리치오를 끌어내 살해해요. 만삭에 가까운 아내 눈앞에서 벌인 끔찍한 일이었죠. 일설에는 이 충격으로 메리가 유산하기를 노린 거라는 얘기도 있어요. 이 사건으로 부부 사이는 완전히 끝장나요.

    아 잠깐만요 임신한 아내 앞에서 무슨 짓이에요? 이건 진짜 갈라서자는 이야기 아니에요?ㅡㅡ

    그러고 얼마 뒤 이번엔 단리가 죽어요. 그것도 아주 미스터리하게요. 1567년 2월 10일 새벽 단리가 요양 중이던 에든버러의 커크 오필드 저택이 엄청난 폭발로 산산조각 나요. 폭발음이 에든버러 전체에 들렸을 정도였어요. 근데 진짜 미스터리는 여기예요. 단리의 시신이 폭발 잔해가 아니라 근처 정원에서 발견됐는데 폭발로 죽은 흔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목이 졸려 죽은 흔적이 있었대요. 이거 많이 수상하긴 하네요. 그러니까 누군가 폭발 전에 단리를 끌어내 목 졸라 죽이고 폭발로 위장하려 한 거예요.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제로 남아 있어요. 요즘같으면 이거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와야돼요..

    여기서 메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세 번째 결혼이 나와요. 단리가 죽고 겨우 석 달 뒤에 메리는 보스웰 백작이랑 결혼해요. 문제는 이 보스웰이 바로 단리 살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는 거예요. 남편이 의문사했는데 그 용의자랑 곧바로 재혼했으니 사람들이 어떻게 봤겠어요. 메리가 공범이라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어요. 심지어 메리가 보스웰이랑 짜고 남편을 죽였다는 거죠. 참고로 보스웰이 메리를 납치하듯 데려가서 결혼한 거라 메리가 자발적이었는지 강제였는지도 지금까지 논쟁거리예요.

    아이고 두 번째 남편의 죽음에 관련된 용의자와 재혼을 했다니 이건 또 뭘까요.

    여기서 꼭 짚고 갈 게 있어요. 그럼 메리는 진짜 남편 살해 공범이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도 아무도 확실히 몰라요. 메리가 유죄라는 핵심 증거로 제시된 게 캐스킷 편지라는 여덟 통의 편지였어요. 메리가 보스웰한테 보낸 연애편지인데 남편을 죽이자는 내용이 담겼다는 거였죠. 근데 이게 진짜 수상해요. 이 편지들을 들이민 사람이 메리의 이복오빠 머리 백작이었는데 이 사람은 메리가 몰락하면 자기가 권력을 잡을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요즘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이 편지가 메리를 무너뜨리려고 조작된 위조문서라고 봐요. 원본은 사라지고 사본만 남아서 더더욱 확인이 불가능하고요. 실제로 2026년 최근에도 전문가들이 메리는 남편 살해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어요. 400년이 지나도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요.

    편지는 사실 조작하기 너무 쉬운 증거라서 믿을 수 없긴 해요. 역사다 보니까 그 시대에 진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하긴 하네요ㅎㅎ

    NOTE 메리가 남편 살해에 가담했다는 핵심 증거로 제시된 캐스킷 편지는 오늘날 대다수 학자들이 위조로 봐요. 편지를 들이민 사람이 메리가 몰락하면 권력을 쥘 이복오빠였고 원본은 사라져 사본만 남았거든요. 2026년 최근에도 전문가들은 메리의 무죄 쪽에 무게를 실었어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진범은 미제로 남아 있어요.

    메리 스튜어트가 맞이한 마지막 순간

    보스웰과의 결혼은 메리 인생을 완전히 무너뜨려요. 귀족들이 이 결혼에 격분해서 반란을 일으켰거든요. 메리는 싸움에서 지고 폐위당해요. 그리고 겨우 한 살이던 아들 제임스한테 왕위를 넘기고 강제로 물러나요. 스코틀랜드에 갇혔다가 1568년에 극적으로 탈출해서 군대를 모았지만 또 져요. 갈 곳이 없어진 메리는 결국 잉글랜드로 도망쳐요. 사촌인 엘리자베스 1세한테 도움을 청하려고요.

    메리의 인생 너무 불쌍해요ㅠㅠ 보스웰과의 결혼도 좀 의문스러운 점이 많은데 그것 때문에 폐위도 당하고 쫓겨난 거잖아요. 그래서 사촌한테 기대고 싶어서 찾아갔던거겠죠?

    근데 이게 메리 인생 최악의 판단이었어요. 엘리자베스한테 메리는 도와줄 사촌이 아니라 위험한 경쟁자였거든요. 앞에서 얘기했듯이 메리는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톨릭 세력한테 메리는 개신교 여왕 엘리자베스를 밀어내고 왕좌에 앉힐 완벽한 카드였죠. 그러니 엘리자베스가 메리를 곱게 볼 리 없었어요. 도움을 청하러 온 메리를 엘리자베스는 가둬버려요. 그리고 이 유폐가 무려 19년이나 이어져요.

    근데 엘리자베스 1세 입장에서는 굳이 도와줄 필요가 없었을 것 같은데요. 자기한테 위협적인 존재잖아요. 역시 저랑 엘리자베스 1세의 생각이 같았나봐요. 가둬버리기까지 할줄은 몰랐지만.. 근데 19년이나 갇혀있었어요? 이게 글이니까 불쌍하다ㅠ 하고 넘어가는 거지 인생이 너무 기구해요.

    메리는 이 성 저 성으로 옮겨다니며 감시 속에 살았어요. 그래도 나름 시녀도 두고 자수도 놓고 카드놀이도 하면서 지냈다고 해요. 재밌는 건 이때 놓은 자수 중에 고양이가 쥐를 발로 누르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자기를 쥐 엘리자베스를 고양이로 빗댄 거라는 해석이 있어요. 갇혀서도 은근히 메시지를 남긴 거죠. 근데 세월이 흐를수록 메리는 점점 초조해졌어요. 자유를 되찾으려고 계속 비밀 편지를 주고받으며 탈출을 도모했고요.

    그러다 1586년 결정적인 사건이 터져요. 바빙턴 음모라는 엘리자베스 암살 계획에 메리가 연루된 거예요. 앤서니 바빙턴이라는 사람이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메리를 잉글랜드 여왕으로 세우자는 편지를 보냈고 메리가 여기에 암호로 답장을 했거든요. 근데 이건 사실 엘리자베스의 첩보 책임자 월싱엄이 파놓은 함정이었어요. 메리의 모든 편지는 이미 도청되고 해독되고 있었죠. 이 답장 하나가 메리의 사형 선고가 돼요. 메리는 반역죄로 재판을 받고 1586년 10월 유죄 판결을 받아요.

    태어났더니 아빠 죽고 결혼하자고 옆 나라에서 쳐들어오고 도망가듯이 결혼했더니 남편 죽고 돌고 돌아서 19년이나 유폐라니ㅠㅠ 근데 유폐된 중에도 함정에 빠지다니 아 안타까워요.

    엘리자베스는 사실 사형 집행을 무척 망설였어요. 신의 기름 부음을 받은 여왕을 처형하는 게 나쁜 선례가 될까 두려웠거든요. 왕도 법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게 증명되면 자기 자리도 위험해지니까요. 그래도 결국 1587년 2월 1일 사형 집행 서류에 서명해요.

    여기서 메리의 마지막 순간이 진짜 인상적이에요. 1587년 2월 8일 포더링게이성에서 메리는 죽음을 맞아요. 그런데 메리가 이 마지막을 대하는 태도가 놀라웠어요. 겉옷을 벗자 안에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 붉은색은 가톨릭에서 순교를 상징하는 색이었어요. 자기 죽음을 신앙을 위한 순교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옷 색깔로 보여준 거예요. 목격자들은 하나같이 메리가 보여준 침착함과 위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요. 메리는 자기를 죽이러 온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하고 조용히 기도하며 마지막을 맞았어요. 향년 마흔넷이었어요. 참고로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순교자로 떠받들어지는 걸 막으려고 처형과 관련된 물건들을 다 태워버리게 했어요. 유품 하나도 남기지 않으려고요.

    저는 아침 여덟 시에 죄인처럼 처형될 것입니다. 메리 스튜어트가 처형 전날 새벽 프랑스 왕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여기서 이 모든 비극을 뒤집는 반전이 나와요. 메리는 왕좌도 잃고 자유도 잃고 목숨까지 잃었지만 딱 하나 지켜낸 게 있었어요. 바로 아들 제임스예요. 그리고 1603년 엘리자베스가 자식 없이 죽으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메리의 아들 제임스가 잉글랜드 왕위까지 물려받은 거예요. 스코틀랜드 왕이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를 겸하게 되면서 두 나라가 한 명의 왕 아래 묶여요. 이게 그 유명한 왕관의 통합이에요. 평생 잉글랜드 왕좌를 갈망했지만 갖지 못했던 메리가 죽어서 아들을 통해 그 꿈을 이룬 셈이죠. 심지어 왕이 된 아들 제임스는 나중에 엄마의 무덤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명예로운 자리로 옮겼어요. 자기를 처형한 엘리자베스보다 더 높은 자리로요.

    오 그런데 결국에는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가 잉글랜드랑 스코틀랜드를 통합했다니 뭔가 복수 같기도 하네요ㅎㅎ 결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건 화려한 승자 엘리자베스만이 아니라 이 비운의 여왕 메리이기도 했던 거예요.

    메리 스튜어트의 파란만장한 삶
    1542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 여왕이 돼요
    1558 프랑스 왕세자와 결혼해요
    1561 남편을 잃고 낯선 스코틀랜드로 돌아와요
    1565 단리와 결혼하지만 최악의 선택이 돼요
    1567 단리가 의문의 폭발로 죽고 보스웰과 재혼해요
    1568 잉글랜드로 도망쳤다가 유폐가 시작돼요
    1587 19년의 유폐 끝에 붉은 옷을 입고 최후를 맞아요
    1603 아들 제임스가 두 나라의 왕이 되며 왕관이 통합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