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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불운했던 천재의 삶 (무명, 진실, 재평가)

무명으로 살다 간 천재 화가 반 고흐
반 고흐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사실 저는 음악을 전공했지 미술은 아예 문외한이거든요. 솔직히 유명한 그림을 봐도 음 이게 잘 그린 건가? 싶을 때가 많아요ㅎㅎ 그런데 그런 저조차도 와 진짜 멋지다 하고 감탄한 작품을 그린 사람이 바로 반 고흐예요.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 같은 그림은 한 번쯤 보셨을 텐데 저는 그의 그림을 보면 멍하니 빠져들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그의 그림 한 점이 수천억 원을 호가해요. 2022년에는 그의 작품 하나가 경매에서 약 1170억 원에 팔리며 최고가를 새로 썼죠. 그런데 정작 반 고흐 본인은 살아있는 동안 이런 영광을 조금도 누리지 못했어요. 오히려 그 반대였죠.
놀랍게도 반 고흐는 살아생전 그림을 딱 한 점밖에 팔지 못했어요. 붉은 포도밭이라는 작품인데 죽기 일곱 달쯤 전에 벨기에에서 400프랑에 팔린 게 전부였죠. 그마저도 사준 사람이 같은 화가였던 안나 보흐라는 여성이었어요. 9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단 한 점만 제값을 주고 팔렸다니 저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어요. 지금은 그렇게나 사랑받는 반 고흐가 살아있을 땐 왜 이토록 인기 없는 무명 화가였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ㅠㅠ 그는 평생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고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이라 여기며 괴로워했어요.
사실 반 고흐가 처음부터 화가였던 것도 아니에요. 저는 음악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 들으며 교육받은 경우가 많아서 예술가라면 다 그런 줄 알았는데 화가는 좀 다르더라고요. 반 고흐는 화가가 되기 전에 화랑 직원으로도 일해보고 목사가 되려고 벨기에 탄광촌에서 가난한 광부들과 함께 지내며 전도사 생활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죠. 결국 스물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야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어요. 이것저것 고민하다 늦게 시작한 셈이죠. 그런데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쏟아지듯 그려진 거예요. 화가로 산 시간이 겨우 10년 남짓이었다는 뜻이죠. 그 짧은 시간에 걸작을 쏟아냈다니 저는 정말 밥 먹고 그림만 그린 건가 싶어서 놀랐어요.
반 고흐의 그림은 후기 인상주의라는 미술 사조를 대표해요. 후기 인상주의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 화가 자신의 감정과 주관을 강렬한 색과 붓질로 표현한 화풍을 말해요. 인상주의라는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는데 이런 뜻이었구나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반 고흐 그림이 뭔가 독특한 질감처럼 보였는데 그게 바로 붓질로 감정을 표현한 거였더라고요. 그의 그림 속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나 이글거리는 노란 해바라기가 바로 그 감정의 언어였던 거죠.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그림은 그저 이상하고 서툴게만 보였어요. 그렇게 멋진 그림이 이상하게만 보였다니 반 고흐는 정말 시대를 너무 앞서갔나 봐요ㅠㅠ 너무 앞서간 재능은 그 시대엔 인정받기 어려웠던 거예요. 오죽하면 그가 살던 프랑스 아를에서는 주민 여든 명이 그를 위험한 사람이라며 마을에서 내보내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하기까지 했어요.
반 고흐의 귀에 관한 진실 논쟁
반 고흐 하면 많은 분들이 그림보다 먼저 떠올리는 게 하나 있어요. 바로 귀를 자른 화가라는 이미지죠. 저도 반 고흐라고 하면 어쩐지 그 귀 자른 그림부터 생각나는데 정작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 유명한 일화를 하나씩 파헤쳐 보면 우리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실이 나와요.
먼저 가장 흔한 오해부터 풀어볼게요. 흔히 반 고흐가 귀를 통째로 잘랐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여러 기록과 연구를 종합하면 그가 손상한 건 왼쪽 귀의 아랫부분 즉 귓불 일부였던 걸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요. 물론 귀의 상당 부분이 잘렸다는 주장도 있어서 정확히 어디까지였는지를 두고는 지금도 견해가 갈려요. 귀 전체가 아니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저는 귓불 일부라 해도 어쩐지 좀 섬뜩하더라고요ㅠㅠ 이 사건이 벌어진 건 1888년 성탄절 무렵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였어요. 당시 반 고흐는 심각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었죠. 신경쇠약이란 극심한 스트레스나 불안으로 정신적 육체적 기능이 무너져 내리는 상태를 말해요.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반전이 있어요. 사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진짜 이유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거예요.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동료 화가 폴 고갱과의 관계예요. 두 사람은 아를의 노란 집에서 함께 지내며 그림을 그렸는데 예술관이 너무 달라 자주 부딪혔어요. 노란 집이란 반 고흐가 예술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빌린 아를의 작업실 겸 거처를 말해요. 저는 예전에 반 고흐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노란 집을 봤던 기억이 나요. 아무튼 두 사람이 격렬하게 다툰 직후 이 사건이 벌어졌다는 게 정설처럼 전해져요.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아예 다른 가능성을 제기해요. 반 고흐가 스스로 그런 게 아니라 펜싱 실력이 뛰어났던 고갱이 다툼 중에 저지른 일이고 두 사람이 이를 숨기기로 입을 맞췄다는 주장이에요. 고갱이 경찰의 추궁을 피하려고 반 고흐가 스스로 한 일로 꾸몄다는 거죠. 저는 당연히 스스로 그런 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니 신기했어요. 역시 반 고흐 이야기에도 가설이 있구나 싶었죠ㅎㅎ 다 같이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인데도 해석이 이렇게 갈린다는 게 저는 참 재미있더라고요. 미래에 사는 우리는 그날 밤에 없었으니 궁금해도 정답은 알 수 없는 거고요. 물론 이 고갱 가설도 확실한 증거는 없어서 여전히 논쟁 중이에요. 다만 이런 주장이 나올 만큼 그날 밤의 진실은 안개에 싸여 있다는 뜻이에요.
이 사건 이후 반 고흐는 스스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가 요양을 해요. 놀라운 건 그가 그토록 힘든 시기에 오히려 가장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아는 별이 빛나는 밤도 바로 이 병원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완성한 작품이에요. 제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한 그 그림이 정신병원에서 그려졌다니 뭔가 다시 보이더라고요. 마음이 가장 무너져 있던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태어났다니 참 아이러니하죠. 사실 음악도 미술도 예술은 외롭고 힘들 때 영감을 받나 봐요. 행복하고 유복하게 자란 음악가의 음악은 너무 밝고 해맑아서 오히려 인기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미술에도 그게 살짝 적용되는 느낌이에요. 반 고흐도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을 붓끝으로 승화하며 버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세상이 뒤늦게 알아본 반 고흐의 진가
살아서 그림 한 점밖에 못 팔았던 무명 화가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거장이 됐을까요. 여기에 이 이야기의 진짜 반전이 숨어 있어요. 그리고 그 반전의 주인공은 정작 반 고흐 자신이 아니었어요.
첫 번째 주인공은 남동생 테오예요. 테오는 파리에서 잘나가던 미술상이었어요. 미술상이란 그림을 사고파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말해요. 그는 평생 형을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어요. 가난한 형에게 그림 재료를 사라고 매달 돈을 부쳤고 형이 마음껏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죠. 두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만 해도 수백 통에 이르는데 여기엔 반 고흐의 예술관과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이 편지들은 훗날 반 고흐를 이해하는 가장 소중한 열쇠가 돼요. 저는 이 대목에서 두 형제의 우애가 참 깊구나 싶어 뭉클했어요. 그림은 한 점밖에 못 팔았어도 이렇게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동생이 있었으니 반 고흐도 마음만은 외롭지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저도 이 이야기를 보다가 제 동생이 떠올라서 보고 싶어졌어요. 제 동생도 늘 제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사람이거든요ㅠㅠ
그런데 안타깝게도 반 고흐가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나고 겨우 여섯 달 뒤 동생 테오마저 형을 뒤따르듯 눈을 감아요. 형의 그림을 세상에 알리겠다던 테오의 꿈도 그렇게 끝나는 듯했죠. 남겨진 건 팔리지 않은 수백 점의 그림과 편지 뭉치뿐이었어요.
바로 이때 진짜 반전의 주인공이 등장해요. 테오의 아내 요한나 반 고흐봉어르예요. 스물여덟에 남편을 잃고 갓난아기까지 홀로 키워야 했던 이 젊은 여인에게 남은 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아주버니의 그림 수백 점이었어요. 주변에서는 이 애물단지 같은 그림들을 처분하라고 했지만 요한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두 형제의 꿈을 자신이 대신 이루기로 마음먹죠. 저라면 혼자 아기를 키우는 처지에 그냥 헐값에 그림을 팔아버렸을 것도 같은데 그러지 않았다니 요한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였나봐요.
요한나는 정말 놀라운 일을 해냈어요. 미술계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그녀가 남편과 시아주버니가 주고받은 편지를 하나하나 정리해 책으로 펴냈어요.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ㅎㅎ 이 편지집이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그림 뒤에 숨은 한 인간의 치열한 삶에 매료되기 시작했죠. 요한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중요한 미술관과 수집가에게 전략적으로 알렸어요. 1905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무려 480점이 넘는 작품으로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유럽 전역의 비평가들을 불러 모았죠. 회고전이란 한 예술가의 생애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돌아보는 전시를 말해요.
그녀의 헌신 덕분에 반 고흐의 그림은 그가 죽은 뒤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어요. 요한나는 평생에 걸쳐 190점이 넘는 작품과 수많은 드로잉을 세상에 내보내며 그 가치를 차근차근 높였어요. 살아서는 실패자로 불렸던 화가가 죽어서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다시 태어난 거예요. 지금 반 고흐가 이토록 사랑받는 데는 요한나의 공이 정말 크구나 싶어요. 어쩌면 요한나가 아니었다면 반 고흐는 이만큼 주목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만약 그녀가 그 그림들을 헐값에 처분해버렸다면 우리는 지금 별이 빛나는 밤도 해바라기도 영영 몰랐을지 몰라요.
그러고 보면 반 고흐의 이야기는 한 천재의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그를 끝까지 믿어준 동생과 그 꿈을 대신 이뤄준 한 여인이 있었기에 완성된 이야기죠. 저는 반 고흐를 그저 외롭고 힘들게 산 불운한 천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이렇게 든든한 가족이 곁에 있었더라고요.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물론 살아서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면 더없는 해피엔딩이었겠지만요ㅠㅠ 그래도 사람들에게 반 고흐의 삶과 그림을 남겨준 요한나에게 저는 참 고맙다는 마음이 들어요. 어쩌면 진짜 걸작은 캔버스 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함께 그려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