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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궁전의 비밀 (화장실, 목욕, 특권)

by 미니55 2026. 7. 25.

안녕하세요! 저는 살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입니다. 에펠탑도 보고 싶고 베르사유 궁전도 보고 싶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그 화려한 베르사유에 대해 조사하다가 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 중에 사실이 아닌 것도 많더라구요. 오늘은 그 진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있었을까

가장 유명한 소문부터 짚고 갈게요. 베르사유에 화장실이 아예 없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저도 어디선가 베르사유에는 화장실이 아예 없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조사해보니 이건 좀 과장된 이야기였어요. 실제로는 셰즈 페르세라고 부르는 구멍 뚫린 의자 형태의 변기가 약 300개 정도 있었다고 추정돼요. 300개면 생각보다는 많아 보이죠. 저도 이 숫자를 보고 어 생각보다 있었네 싶어서 놀랐거든요. 근데 베르사유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하니까 300개로도 부족했던 거예요. 문제는 개수가 아니라 인원이었어요. 당시 베르사유에는 귀족과 하인을 합쳐 수천 명이 드나들었으니 300개로는 어림도 없었던 거죠.

게다가 이 변기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좋은 변기는 왕족과 최고위 귀족 차지였고 일반 귀족은 자기 변기를 직접 가지고 다녀야 했어요. 하인이나 방문객은 공용 화장실을 써야 했는데 그마저도 턱없이 부족했고요. 변기마저 계급순으로 쓸 수 있었다니 진짜 치사하지 않나요ㅠㅠ 나중에 수세식 화장실도 생기긴 했는데 1789년 기준으로 딱 9개뿐이었어요. 그것도 왕족과 극소수 총애받는 사람만 쓸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결과는 뻔했어요. 사람들이 복도 구석이나 계단 아래 커튼 뒤 심지어 정원에서 그냥 볼일을 봤어요. 해가 지면 아름다운 정원 길이 야외 화장실이 됐던 거예요. 근데 사실 그 사람들도 정원에다 그렇게 볼일 보고 싶었겠어요ㅠㅠ 급해 죽겠는데 당장 쓸 화장실이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었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좀 짠하기도 해요. 어쨌든 베르사유를 방문한 외국 귀족들이 복도 냄새에 충격받았다는 기록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도 궁전 전체에 밴 냄새를 두고 불평을 남겼고요.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냐면 루이 14세가 복도를 일주일에 한 번은 청소하라는 규칙까지 새로 만들었을 정도예요. 왕이 아끼던 오렌지 나무를 화분에 담아 궁전 안 곳곳에 들여놓은 것도 사실은 냄새를 가리려는 목적이 컸다고 해요. 저는 이 대목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나는 냄새를 오렌지 나무로 가리고 있었다니요.

그리고 여기서 제가 궁금했던 게 하나 풀렸어요. 저는 다들 그렇게 냄새났다고 하니까 혹시 그 시대에는 저 정도 냄새는 그냥 괜찮았던 건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근데 기록을 보면 전혀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도 다 냄새를 맡았고 괴로워했고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애를 썼어요. 하긴 사람인데 악취는 악취였겠죠ㅋㅋ 다만 근본적인 해결책인 위생 시설을 갖추는 대신 향으로 덮는 쪽을 택했던 거예요. 결국 없어서 못 지은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달랐던 거죠.

셰즈 페르세란?
의자 아래에 요강을 넣고 앉아 볼일을 보던 구멍 뚫린 변기 의자예요. 배관이 연결돼 있지 않아서 볼일이 끝나면 하인이 요강을 비워야 했어요. 오늘날의 수세식 변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죠.

베르사유 궁전 사람들의 목욕 문화

베르사유 하면 빠지지 않는 유명한 소문이 하나 더 있어요. 루이 14세가 평생 두세 번밖에 목욕을 안 했다는 이야기예요. 근데 이 부분은 조사하면서 좀 놀랐어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주제더라고요.

실제로 이걸 사실이라고 보는 역사학자도 있어요. 두 번 다 의사가 두통을 치료하려고 권해서 한 목욕이었고 효과가 없자 다시는 안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들어요. 반면에 베르사유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쪽에서는 이걸 반박해요. 궁전 1층에 대리석 욕조를 갖춘 목욕 전용 공간이 있었고 그 이전인 1670년대 초에도 이미 욕조 두 개짜리 목욕방을 두고 있었다는 거예요. 하나는 비누칠용 하나는 헹굼용이었고요. 이런 시설을 갖춰놓고 평생 세 번만 씻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에요.

그럼 왜 이렇게 말이 엇갈릴까요. 핵심은 목욕이라는 말의 정의였어요. 그 시대의 목욕은 몸을 물에 푹 담그는 걸 뜻했는데 이건 아주 특별하거나 의료 목적일 때만 하는 일이었어요. 당시 의사들은 물이 병을 옮긴다고 믿어서 자주 씻는 걸 강하게 말렸거든요.

이 부분 처음 봤을 때는 저도 에이 말도 안 돼 싶었어요. 깨끗하게 씻어야 병에 안 걸리지 씻는다고 병에 걸린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죠.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시대에는 물 자체가 깨끗하지 않았겠더라고요. 상하수도가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의 물이 오염돼 있었고 오염된 물에 몸을 담근다고 생각하면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린다는 논리도 어느 정도 공감이 돼요. 무조건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 눈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대엔 그 시대 나름의 근거가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고 아예 안 씻고 산 건 아니었어요. 매일 하는 청결법이 따로 있었거든요. 희석한 향 알코올을 적신 천으로 얼굴과 몸을 문지르고 손끝을 물그릇에 살짝 담그는 방식이었어요. 루이 14세는 아침에 일어날 때와 밤에 잘 때 이렇게 몸을 닦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안 씻은 게 아니라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씻은 거죠.

근데 알코올 적신 천으로 얼굴을 닦았다니 저는 이 대목에서 좀 놀랐어요. 그거 피부에 너무 안 좋았을 것 같지 않나요. 매일 알코올로 얼굴을 문질렀다면 피부가 남아났을지 걱정될 정도예요. 게다가 저는 뽀득뽀득 물로 깨끗하게 씻어야 씻은 것 같은 사람이라 천으로 슥슥 닦는 걸로는 영 개운하지가 않을 것 같아요ㅠㅠ

물세수를 대신한 또 하나의 방법은 셔츠였어요. 루이 14세와 신하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흰 리넨 셔츠를 갈아입었어요. 깨끗한 리넨이 땀과 때를 흡수해준다고 믿었거든요. 셔츠를 갈아입는 게 곧 몸을 씻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거예요. 솔직히 저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어요. 셔츠만 갈아입는다고 몸이 깨끗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당시 사람들에겐 자주 갈아입을 깨끗한 리넨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와 청결의 상징이었다고 하니 그 시대 기준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한 셈이에요.

재밌는 사실 하나 덧붙이면 루이 14세는 젊은 시절 수영을 꽤 즐겼다고 해요. 물을 아예 무서워하고 피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죠. 결국 정리하면 이래요. 루이 14세가 더러웠다는 말도 완전히 깨끗했다는 말도 둘 다 정확하지 않아요. 그 시대 기준의 청결은 나름대로 지켰지만 그게 지금 우리가 아는 위생과는 달랐던 거예요. 이게 지금 학계가 합의하는 지점이에요.

베르사유 궁전에서 볼일이 특권이던 이유

앞에서 화장실 이야기를 실컷 했는데 사실 이번 글에서 제일 놀라운 건 따로 있어요. 베르사유에서는 볼일 보는 순간마저 권력의 무대였다는 거예요.

기록에 따르면 루이 14세는 아침 기상 의식 때 침실에 놓인 셰즈 페르세에 앉아 30분쯤 볼일을 봤어요. 그런데 이게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시종들과 당직 신하들이 그 방에 함께 있었어요. 왕의 가장 사적이고 신체적인 순간에 곁에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었거든요. 아침에 왕에게 양말을 건네거나 왕이 볼일 볼 때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최고의 영예였던 거예요.

으악 저는 이 대목에서 정말 소리 지를 뻔했어요. 왕이 볼일 보는 걸 쳐다보고 있는 게 권력이었다니요. 저는 그 권력 안 가질래요ㅠㅠ 진짜 계급사회는 볼수록 신기해요ㅋㅋㅋ 세상에 왕이 뭐라고 볼일 보는 것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니. 거기다 그걸 영광이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예요.

이게 과장이 아니라는 증거도 있어요. 생시몽이라는 사람이 남긴 회고록에 병든 오를레앙 공작을 보러 갔더니 지하 옷방에서 셰즈 페르세에 앉은 채 시종들과 측근들에 둘러싸여 있더라는 장면이 나와요. 볼일을 보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게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거죠. 지금 우리가 보면 기절할 노릇인데 그 시대엔 이게 일상이었어요. 솔직히 지금 제 눈에는 그냥 더럽다는 생각만 드네요...:: 하하

앉는 것도 특권이었어요. 왕과 왕족 앞에서 앉는 건 극소수만 누리는 특권이었거든요. 등받이 없는 스툴인 타부레에 앉을 권리는 공작부인이나 왕족 공주 정도의 아주 좁은 범위에만 허락됐어요. 나머지 귀족 남성들은 왕과 왕비 앞에서 거의 항상 서 있어야 했고요. 겨우 의자에 앉느냐 서 있느냐가 신분을 가르는 기준이었던 거예요.

겨우 스툴 하나에 온 궁정이 들썩였어요. 앉는 것 옷 입는 것 볼일 보는 것까지 전부 서열이 매겨진 특권이었죠.

이 의자 하나 때문에 벌어진 신경전이 어마어마했어요. 이 스툴이 얼마나 강력한 신분의 상징이었냐면 루이 14세의 어머니가 공작부인이 아닌 두 여성에게 이걸 허락했다가 엄청난 항의를 받고 결국 철회해야 했을 정도예요. 겨우 스툴 하나에 온 궁정이 들썩였던 거죠.

유명한 일화도 하나 있어요. 새로 공작부인이 된 방타두르 부인이 왕의 살롱에 들어갔는데 정작 그녀가 앉을 타부레가 준비돼 있지 않았어요. 시종들이 우물쭈물하자 편지 작가로 유명한 세비녜 부인이 그냥 갖다주라고 저 사람 충분히 비싸게 값을 치렀으니까라고 쏘아붙였다고 해요. 남편이 못생기고 방탕하기로 소문났던 걸 콕 집어 비꼰 거예요ㅋㅋ 이런 촌철살인은 또 시대를 안 가리네요.

이런 신경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로판 웹툰에서 보던 장면이 딱 떠올랐어요. 누가 어디에 앉느냐 누가 먼저 인사를 받느냐로 벌어지는 그 팽팽한 기 싸움 있잖아요. 근데 그게 소설 속 설정이 아니라 실제 역사였다니 좀 소름이었어요. 오히려 실제가 소설보다 더한 느낌이랄까요. 솔직히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저는 하루도 못 버티고 눈 밖에 났을 것 같아요ㅠㅠ

가장 총애받았다고 알려진 몽테스팡 부인조차 정작 타부레를 끝내 못 받았어요. 남편이 불륜에 대한 앙심으로 그 권리를 한사코 거부했거든요. 왕의 여자인데도 남편의 몽니 하나 때문에 앉을 권리를 못 얻었다니 이것도 참 드라마 같은 이야기예요.

정리하면 베르사유에서는 앉는 것 옷 입는 것 심지어 볼일 보는 것까지 전부 서열이 매겨진 특권이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게 사실은 루이 14세의 계산이었어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왕의 총애로 결정되게 만들어서 귀족들이 왕 곁을 절대 떠나지 못하게 묶어둔 거예요. 화려한 궁전 안에서 벌어진 이 촘촘한 서열 놀이가 결국 절대 권력을 지탱한 진짜 장치였던 셈이죠.

자주 묻는 질문

베르사유 궁전에 정말 화장실이 없었나요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셰즈 페르세라는 변기 의자가 약 300개 있었지만 수천 명이 드나드는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복도나 정원에서 볼일을 보는 일이 잦았던 거예요.
루이 14세는 정말 평생 세 번만 목욕했나요
전문가마다 의견이 갈려요. 그렇게 보는 학자도 있지만 궁전에 목욕 시설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는 쪽도 있어요. 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이 드물었던 건 맞지만 매일 다른 방식으로 몸을 닦긴 했어요.
그 시대에는 왜 물로 씻는 걸 꺼렸나요
물이 병을 옮긴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목욕이 모공을 열어 병균이 들어오게 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당시 물이 오염된 경우가 많아서 아주 틀린 걱정만도 아니었어요.
왕의 볼일을 지켜보는 게 왜 특권이었나요
왕의 가장 사적인 순간에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총애의 증거였기 때문이에요. 사소한 순간까지 왕과 가까운 사람이 곧 권력자였던 거죠.
베르사유 궁전은 지금도 갈 수 있나요
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박물관으로 운영돼요. 파리에서 기차로 약 40분 거리라 여행 때 많이들 들르는 곳이에요. 물론 지금은 냄새 걱정 없이 구경할 수 있답니다ㅎㅎ

출처 : This is Versailles(베르사유 위생 및 좌석 예법 관련) / Offbeat France 베르사유 냄새 관련 기록 / Etiquipedia 궁정 예법 자료 / Early Modern France 루이 14세 기상 의식 연구 / 생시몽 회고록 인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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