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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
사랑에 미쳤던 여왕이 40년을 검은 상복으로 산 이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사랑
빅토리아와 앨버트는 사실 사촌 사이예요. 빅토리아 엄마랑 앨버트 아빠가 남매였거든요. 헉 사촌 사이에 결혼이라니 현대 감성으로는 역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네요. 근데 그때는 그런 경우가 꽤 많았다고 해요. 왕실이나 귀족 집안은 가문끼리 세력을 묶으려고 일부러 친척끼리 결혼하는 게 흔했거든요. 두 사람은 나이도 딱 세 달 차이라 양쪽 집안이 아기 때부터 얘네 둘 결혼시키면 딱이겠다 하고 점찍어놨어요. 앨버트가 두 살이던 1821년에 벌써 할머니 편지에 이 결혼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처음 만난 건 1836년 5월이었어요. 빅토리아가 열일곱 살 생일을 맞을 즈음이었죠. 삼촌 레오폴드가 앨버트 형제를 켄싱턴으로 초대해서 일부러 만남을 주선했어요. 그런데 첫 만남부터 빅토리아가 완전히 반해버려요. 일기에 앨버트를 이렇게 묘사했어요. 굉장히 잘생겼고 머리색은 자기랑 비슷하고 눈은 크고 파랗고 코가 예쁘고 치아가 고운 입매를 가졌다고요. 근데 진짜 매력은 그 표정이라고 적었어요. 앨버트가 떠날 때는 눈물까지 흘렸고요.
오 잘생겨서 첫눈에 반했다니ㅋㅋㅋ 사실 저도 지금 남편 보고 딱 내 스타일이라서 첫눈에 호감이 갔었거든요. 빅토리아처럼 첫눈에 반했다 이 정도까지는 좀 오바지만ㅎㅎ 처음 보자마자 오 저 사람 내 스타일인데 괜찮다 이랬었어요. 빅토리아랑 저랑 똑같네요ㅋㅋㅋ 웃기당. 열일곱이면 잘생긴 사람한테 반할 수밖에 없죠!
여기서 반전 하나 있어요. 우리는 보통 왕실 결혼이라고 하면 정략결혼 즉 서로 얼굴도 모르고 정치적으로 엮인 사이를 떠올리잖아요. 근데 이 둘은 정반대예요. 예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처음엔 서로 안 좋아했다가 나중에 사랑에 빠진다는 식으로 그렸는데 실제 역사학자들은 이걸 각본상 창작으로 봐요. 일기를 보면 빅토리아는 처음부터 앨버트한테 푹 빠져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이 진짜 핵심이에요. 청혼을 빅토리아가 했어요. 여왕이 신하 신분인 앨버트한테 먼저 프러포즈한 거예요. 1839년 10월이었고요. 당시 관습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여왕은 신분이 더 높으니까 앨버트가 먼저 청혼할 수가 없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빅토리아가 직접 나선 거죠. 앨버트는 가장 큰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빅토리아는 이 순간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적었어요.
오 먼저 청혼을 했다니 이것마저 저랑 비슷한데요? 저는 청혼은 아니지만 먼저 인사하고 밥 먹자고 이야기했었거든요ㅎㅎ 그렇게 밥 먹으면서 친해지고 사귀고 결혼까지 온 거라 빅토리아랑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빅토리아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여왕이 먼저 청혼이라니 멋지당.
결혼식은 1840년 2월 10일이었어요. 이것도 파격이었죠. 원래 왕실 결혼은 밤에 조용히 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빅토리아가 백성들이 볼 수 있게 낮에 행진하면서 하겠다고 우겼거든요. 지금 우리가 아는 화이트 웨딩드레스 문화 그러니까 신부가 흰 드레스를 입는 게 바로 이 결혼식에서 유행이 퍼진 거예요. 부케에서 은매화 가지를 하나 떼어다 정원에 심었는데 그 뒤로 영국 왕실 신부들은 다 그 나무 가지를 부케에 넣는 전통이 생겼고요.
첫날밤에 대해 빅토리아가 일기에 남긴 게 유명해요. 두통이 있었는데도 이런 저녁은 처음이었다면서 감격에 겨워 적어놨어요. 앨버트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다정한지 이런 남편을 가진 게 얼마나 감사한지 느낌표를 잔뜩 붙여가면서요. 다음 날 아침엔 옆에서 자는 앨버트 얼굴을 보고 천사 같다고 셔츠 차림의 그 모습이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아름답다고 썼어요ㅋㅋ
빅토리아가 남편 앨버트를 굉장히 좋아했구나 싶어요ㅋㅋㅋ 일기에까지 적을 정도라니 너무 귀여워요. 사랑에 빠진 여왕님이라니! 여왕님 진짜 콩깍지 제대로 씌었죠ㅎㅎ

빅토리아 여왕이 40년간 애도한 이유
1840년의 그 행복은 21년밖에 가지 못했어요. 1861년 12월 14일 밤 10시 50분 앨버트가 윈저성 블루룸에서 눈을 감아요. 겨우 마흔둘이었어요.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이 한창 나이에 갑자기 떠난 거예요. 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니 읽기만 해도 너무 슬퍼요. 빅토리아 여왕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아니까 더 공감이 되고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여기서 정확하게 짚고 갈 게 있어요. 앨버트 사인은 공식적으로는 장티푸스로 기록됐어요. 사망진단서에 장티푸스 21일 경과라고 적혀 있고요. 근데 이게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당시 담당 의사 제너가 장티푸스 최고 권위자여서 진단 자체는 무게가 있는데 문제는 앨버트가 죽기 전 몇 주간 머물던 윈저나 케임브리지 어디에서도 장티푸스 환자 보고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 학자들은 크론병이나 신부전 심지어 위암일 수도 있다고 봐요. 앨버트는 죽기 몇 달 전부터 계속 배가 아프고 잠을 못 자고 입맛이 없다고 호소했거든요. 만성질환이 서서히 그를 갉아먹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거죠.
아 예전이라서 사인은 정확하게는 모르는구나 싶어요. 그냥 마흔둘에 세상을 떠났다니 굉장히 일찍 떠났다는 것만 아는 거네요ㅠㅠ
앨버트가 죽은 순간 빅토리아는 그야말로 무너져요. 여왕 본인의 말이 소름 돋는데 처음 3년 동안은 매일 밤낮으로 죽고 싶은 갈망이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고 했어요. 잠깐 자살까지 생각했다가 그래도 견뎌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고 이 견뎌내야 한다는 말이 이후 여왕의 좌우명처럼 됐어요.
그렇게 사랑하던 남편이 없어졌으니 저 같아도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지금 상상해봤는데 남편이 없는 삶이라니 진짜 상상조차 안 되거든요. 이미 제 생활 깊숙하게 들어와 있어서 남편을 빼놓고는 일상생활이 상상이 안 돼요. 빅토리아 여왕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래도 여왕이니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참고 살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유명한 애도 의식이 시작돼요. 빅토리아는 앨버트가 쓰던 방을 살아있을 때 그대로 보존시켜요. 그리고 하인들한테 매일 아침 앨버트 방에 뜨거운 물을 갖다놓으라고 지시해요. 살아있을 때 면도하라고 갖다주던 그대로요. 어떤 기록에는 저녁마다 앨버트 옷을 침대에 새로 꺼내놨다는 얘기도 있어요. 마치 그가 여전히 살아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을 것처럼요. 이 방은 여왕이 1901년 자기가 죽을 때까지 40년간 그대로 유지돼요.
아이고 하인들을 시켜서 앨버트가 살아있을 때의 루틴을 반복했다는 거 보니까 너무 마음이 아파요. 40년간 유지했다니 얼마나 사랑했던 건지 짐작도 안 되네요ㅠㅠ
주목할 부분이 있어요. 사실 그 시대에도 장례와 애도 문화는 화려했지만 보통은 기간이 정해져 있었어요. 배우자가 죽고 얼마 뒤에 재혼하는 것도 흉이 아니었고요. 실제로 여왕이 슬픔을 딛고 재혼할 거라는 소문도 초반에 돌았어요. 근데 빅토리아한테는 그게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앨버트를 대신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면서 공식 애도 기간을 근대 역사상 가장 길게 하라고 명령했거든요. 남들이 몇 달이면 끝낼 애도를 40년을 한 거예요.
사실 여왕이니까 금방 재혼을 했어도 누가 뭐라고 안 했을 것 같은데 애도를 40년이나 했구나 싶어요. 얼마나 사랑했던 건지 짐작도 안 되네요.
문제는 여왕이 슬픔에 빠져서 아예 공식석상에 안 나왔다는 거예요. 의회 개회식도 1866년까지 안 나갔고 그것도 마지못해 나간 거였어요. 1년쯤 지나자 국민들 사이에서 여왕의 애도가 너무 집착적인 거 아니냐 여왕 정신상태가 괜찮은 거냐 하는 불안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여왕이 계속 안 보이니까 이럴 거면 왕정이 왜 필요하냐는 공화주의 운동까지 커졌고요. 세금 들여서 여왕을 두는데 여왕이 일을 안 하니까요. 이때 여왕한테 붙은 별명이 윈저의 미망인이에요.
근데 슬픔에 빠져서 본인의 할 일을 안 했다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좀 화가 날 만해요. 진짜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여왕이 왜 필요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네요. 빅토리아 여왕 입장에서는 슬픈 일은 맞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여왕이 저렇게 슬픔에만 빠져있으면 든든하지 못하긴 하죠.
빅토리아 여왕과 존 브라운의 진실
앨버트를 잃고 폐인처럼 지내던 여왕을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사람이 있어요.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브라운이에요.
브라운은 원래 발모럴성에서 일하던 하인이었어요. 앨버트가 1848년 발모럴을 빌렸을 때부터 있었으니까 사실 부부가 둘 다 알던 사람이었죠. 처음엔 마구간 일이나 야외 수행을 맡던 사람이었는데 앨버트가 죽고 나서 여왕 곁으로 오게 돼요. 1866년쯤부터 둘은 거의 붙어 지냈어요. 브라운은 여왕보다 일곱 살 어렸고요.
이 남자가 특이했던 게 여왕한테 다들 벌벌 기던 시대에 얘는 안 그랬어요. 여왕한테 직설적으로 툭툭 말하고 때로는 명령하듯 하기도 했대요. 근데 신기하게 여왕이 그걸 좋아했어요. 앨버트 잃고 껍데기만 남았던 여왕이 브라운 덕분에 다시 말을 타고 바깥바람을 쐬기 시작했거든요. 여왕은 브라운을 내 마음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까지 불렀어요.
잠깐만요 이거 어디서 본 건데요ㅋㅋㅋㅋ 모두가 벌벌 기는 여왕한테 직설적으로 툭툭 말하듯이 했다고요? 그걸 여왕은 좋아했고요? 이거 완전 로맨스소설 클리셰잖아요. 나한테 이렇게 대한 남자는 니가 처음이야 이거요ㅋㅋㅋㅋ 보통 인기 많고 돈 많은 남주한테 여주인공이 틱틱거리고 나한테 이렇게 막 대한 사람은 니가 처음이라고 반하고 그러는 거요ㅋㅋㅋ 이 소설 그대론데요. 물론 진짜 연인이었는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문제는 궁정이랑 세간의 시선이었어요. 여왕이 하인 하나한테 이렇게까지 의지하니까 별별 소문이 다 돌았어요. 사람들은 여왕을 대놓고 브라운 부인이라고 불렀고요. 심지어 1866년에 스위스 신문에서 둘이 비밀 결혼을 했다고 보도하기까지 했어요.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조심해서 다뤄야 할 부분이에요. 둘 사이가 대체 뭐였냐 이건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에요. 어느 쪽도 확정된 게 아니에요.
크게 두 갈래예요. 하나는 그냥 깊은 우정이자 충직한 신하였다는 쪽이에요. 1997년 주디 덴치 주연 영화 미세스 브라운도 둘 관계를 플라토닉하게 그렸고요. 많은 역사학자들이 여왕의 독실한 앨버트 애도를 생각하면 연인설은 근거가 약하다고 봐요. 다른 하나는 단순한 우정 이상이었다는 쪽이에요. 2014년 줄리아 베어드 최근 2025년 펀 리델 같은 역사학자들이 새 사료를 근거로 둘이 연인이었거나 심지어 비밀 결혼까지 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리델은 여왕의 개인 사제가 임종 때 둘의 결혼식을 집전했다고 고백했다는 기록을 제시했고요. 스코틀랜드 법에서는 이런 비공식 결혼도 법적으로 유효했거든요.
빅토리아 여왕 입장에서 안 그래도 슬픈 와중에 다들 자기 눈치만 보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런 상황이니까 더 힘들고 답답했을 것 같아요. 근데 누군가가 나서서 편하게 이야기하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것 같네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 맥락이 있어요. 왜 아직도 진실을 모르냐면 왕실이 브라운 관련 자료를 대거 없애버렸기 때문이에요. 여왕이 죽은 뒤 자식들이 엄마와 하인의 관계를 부끄러워해서 편지며 일기며 기록을 태워버렸어요.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지금도 퍼즐 조각을 겨우 주워 모으는 상황인 거죠.
빅토리아 여왕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브라운을 싫어할 만하죠. 자기 엄마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 남자랑 무슨 관계다 이런 소문이 있는 것 자체가 싫었을 것 같아요.
브라운은 1883년 피부 감염으로 쉰여섯에 죽어요. 그리고 여기서 마지막 반전이 나와요. 앨버트를 40년간 애도한 그 여왕이 브라운이 죽었을 때도 엄청나게 슬퍼했어요. 브라운 전기를 쓰라고 작가한테 의뢰까지 했고요. 더 놀라운 건 1901년 여왕이 죽었을 때예요. 여왕은 자기 관에 앨버트의 손수건이랑 손 모형을 넣게 했는데 동시에 존 브라운의 사진이랑 머리카락 한 줌 그리고 브라운 어머니의 결혼반지도 같이 넣게 했어요. 앨버트와 브라운을 둘 다 관 속으로 데려간 거예요.
근데 브라운마저도 빅토리아 여왕을 먼저 떠났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앨버트와 브라운 두 명 모두에게 진심이었구나 싶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