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진실
우리가 아는 그 질투의 화신은 정말 실제 인물이었을까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진실 뒤 가려진 재능
사실 음악을 전공한 저도 살리에리라고 하면 곧바로 모차르트가 떠올라요.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지독하게 질투하면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으로 나오거든요. 그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저한테 살리에리는 오랫동안 그냥 모차르트에게 밀린 2인자였어요. 음악사를 공부할 때도 두 사람한테 크게 관심이 있진 않아서 가볍게 훑고 지나갔고 살리에리라는 인물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ㅠㅠ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찾아보니 이 사람 진짜 대단한 인물이더라고요. 살리에리는 1750년 이탈리아 레냐고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빈으로 건너가 궁정 음악가 가스만의 손에 자랐고 나중에는 당대 최고 작곡가였던 글루크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했어요.
스물넷이던 1774년에 궁정 작곡가가 됐고 1788년에는 궁정 악장 자리에 올랐어요. 이 자리를 무려 36년 동안 지켰는데 당시 빈에서 음악가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였어요. 궁정 악장까지 오른 사람이라니 단순히 모차르트에 밀린 2인자로만 평가하기엔 업적이 너무 굉장하더라구요ㅎㅎ 쉽게 말해 살리에리는 그 시대 빈 음악계의 정점에 서 있던 사람이에요.
작품도 어마어마했어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세 언어로 오페라를 40편 넘게 썼고 이 작품들이 빈뿐 아니라 파리 로마 베네치아 무대에 두루 올랐어요. 특히 1787년에 발표한 오페라 타라르는 같은 시기 빈 관객들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보다 더 좋아했을 만큼 인기가 높았어요.
살리에리도 분명 엄청나게 잘하는 음악가였던 거죠. 다만 하필 비교 대상이 모차르트였어요. 모차르트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천재잖아요. 예전에 베토벤이랑 비교했을 때도 얘기한 적 있는데 악보에 수정한 흔적도 없이 머릿속에서 완성된 음악을 그대로 옮겼다고 할 만큼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어요ㅋㅋㅋ 그런 괴물 같은 천재 옆에 서 있었으니 아무리 뛰어나도 2인자로 보일 수밖에요.
살리에리는 교육자로서도 대단했어요. 베토벤 슈베르트 훔멜 체르니가 다 그의 제자였고 그 유명한 리스트에게도 영향이 닿았어요. 이 이름들이 전부 한 사람 밑에서 배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더 놀라운 건 부유한 집 자식이 아니면 대부분 무료로 가르쳤다는 거예요. 자기도 예전에 스승에게 공짜로 배웠던 기억 때문이었대요. 저도 피아노를 가르치는 입장이라 이 대목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진짜 대단한 스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면 살리에리는 그저 모차르트의 라이벌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한 시대를 대표하던 거장이었어요. 1815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까지 받았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를 딱 한 가지로만 기억해요. 모차르트를 죽인 질투의 화신으로요.
모차르트의 죽음과 함께 퍼진 소문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에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빈의 교회 기록에는 사인이 급성 열병으로 남아 있어요. 지금 학자들은 대체로 바이러스나 감염 같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고요. 당시 빈에 비슷한 증상을 앓는 사람이 많았다는 기록도 함께 전해져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독살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이 다름 아닌 모차르트 본인이었다는 거예요. 세상을 떠나기 전 몸이 급격히 나빠지자 그는 아내에게 누군가 자신에게 독을 쓴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사실 몸이 아프고 예민해지면 누가 나를 해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 누군가를 대뜸 범인으로 모는 건 안 되는 일이죠. 아파서 예민해진 상태에서 나온 이 한마디가 훗날 엉뚱한 방향으로 불씨가 돼요.
정작 살리에리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건 모차르트가 떠나고 한참 뒤였어요. 기록상 처음 언급된 게 1803년쯤이니까 무려 12년이나 지난 시점이에요. 생각해보면 이것부터가 좀 이상해요. 살리에리가 정말 관련이 있었다면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의심을 받았을 텐데 한참 뒤에야 소문이 시작됐다는 건 앞뒤가 안 맞잖아요ㅎㅎ 그런데 가끔은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 일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도는 소문 수준이었는데 그때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야기가 옮겨다니던 시절이라 이 사람 저 사람 거치는 동안 온갖 각색이 섞여들었을 거예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결정적 계기는 살리에리의 말년에 있었어요. 나이가 들고 건강이 크게 나빠진 살리에리는 1823년 무렵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었어요. 이때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기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전해져요. 하필 흐린 정신으로 이런 말을 했으니 소문에 그대로 불을 붙인 셈이 됐어요ㅠㅠ 문제는 이 말이 순식간에 빈 전체로 퍼져나갔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신이 돌아온 살리에리는 이 이야기를 분명히 부인했어요. 제자였던 작곡가 모셸레스를 찾아가 그 소문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어요. 곁을 지키던 두 명의 간병인도 그가 그런 고백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고요. 그러니까 정신이 온전할 때의 살리에리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죄를 인정한 적이 없는 셈이에요.
그런데도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커졌죠. 이야기 속 악당이 이미 세상을 떠나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게 됐을 때 그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솔깃한 이야깃거리가 되거든요. 여기까지 따라오다 보면 살리에리가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살리에리가 안 그랬다에 한 표 던지고 싶네요.
모차르트가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남 (사인은 급성 열병)
살리에리의 이름이 소문에 처음 등장 (무려 12년 뒤)
노년의 살리에리가 흐린 정신으로 한 말이 퍼짐 (뒤에 본인이 부인)
푸시킨의 희곡이 독살 장면을 그려냄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같은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듦
영화 아마데우스가 악역 이미지를 굳힘
살리에리에게 씌워진 누명의 진짜 범인
그럼 살리에리에게 악당이라는 딱지를 붙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요. 흥미롭게도 그건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술 작품들이었어요.
시작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었어요. 살리에리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 지난 1830년에 그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짧은 희곡을 썼어요. 이 작품 속에서 살리에리는 질투에 사로잡혀 직접 모차르트의 잔에 독을 타는 인물로 그려져요.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였지만 사람들에게는 이게 마치 진짜처럼 다가왔어요.
이 희곡은 1898년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손에서 같은 제목의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어요. 그리고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게 바로 제가 학창 시절에 본 그 영화예요. 1979년 연극으로 먼저 나왔다가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진 아마데우스요. 여기서 살리에리는 신을 원망하며 모차르트를 파멸시키려는 비극적 악역으로 강렬하게 그려졌어요.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모차르트 앞에서 질투로 괴로워하는 살리에리의 얼굴만 머릿속에 가득 담아왔던 것 같아요ㅠㅠ
그런데 정말 뜻밖인 게 이 작품을 만든 극작가 본인이 처음부터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는 점이에요. 그는 아마데우스가 사실에 느슨하게 기댄 상상의 이야기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작가가 직접 지어낸 이야기라고 했는데도 저는 왜 그동안 그걸 몰랐을까요. 아마 재밌는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도 그게 만들어낸 거라는 정정은 그만큼 널리 퍼지지 않아서일 거예요. 다시 말해 우리가 진실로 믿어온 살리에리의 얼굴은 애초에 예술가들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빚어낸 캐릭터에 가까웠던 거죠.
그렇다면 진짜 두 사람 사이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기록이 보여주는 관계는 우리가 아는 것과 정반대예요.
우선 두 사람은 함께 곡을 쓴 적이 있어요. 1785년에 한 소프라노 가수의 회복을 축하하려고 만든 짧은 칸타타인데 여기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어요. 서로 원수지간이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협업이죠. 오랫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이 곡은 2016년에 프라하의 한 박물관에서 다시 발견되기도 했어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작품을 밀어준 일도 있어요. 궁정 악장이 된 뒤 그는 자기 오페라만 무대에 올린 게 아니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다시 공연 목록에 넣었어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해에는 그의 교향곡을 직접 지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요.
무엇보다 마음이 놓이는 건 모차르트가 떠난 뒤의 일이에요. 그의 아내는 어린 아들의 음악 교육을 다름 아닌 살리에리에게 맡겼어요. 남편을 해쳤다고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선택이잖아요. 오히려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살리에리를 깊이 인정했기에 아들을 맡길 수 있었을 거예요.
결국 살리에리는 자기 음악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짓지도 않은 죄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됐어요. 궁정 악장으로 수십 년을 일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제자들을 정성껏 길러냈는데도 말이에요. 솔직히 저조차 살리에리의 음악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질투 많은 2인자로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정작 독살당한 건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의 명예였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