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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여왕 (임신, 우정, 외로움)

미니55 2026. 8. 18. 21:58

목차


    앤 여왕

    잊혀진 여왕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엘리자베스 1세 하면 화려한 처녀 여왕 그리고 빅토리아 하면 대영제국의 어머니. 이렇게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근데 그 사이에 낀 앤 여왕은 이름조차 낯선 분이 많을 거예요. 저도 사실 잘 몰랐거든요. 근데 이 여왕의 삶을 들여다보면 어느 드라마보다 애틋하고 슬퍼요. 열일곱 번의 임신 끝에 남은 아이가 하나도 없고 평생을 함께한 단짝과는 원수로 갈라서요. 그렇게 외롭게 살다 간 여왕이 사실은 지금의 영국을 만든 사람이라면 믿어지세요? 오늘은 화려한 여왕들 틈에서 잊혀버린 앤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앤 여왕을 평생 따라다닌 임신의 비극

    앤은 1683년 열여덟 살에 덴마크 왕자 조지와 결혼해요. 그리고 결혼하자마자 거의 쉬지 않고 임신을 반복해요. 여기서 나오는 숫자가 진짜 충격적인데 앤은 평생 열일곱 번을 임신했어요. 근데 그중에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헐 임신을 열일곱 번이나 했다고요? 저 지금 임신 중이잖아요ㅋㅋ 첫 번째 임신인데 너무너무 힘들거든요ㅠㅠ 입덧 때문에도 힘들고 하루 종일 젖은 휴지처럼 기운도 없고 화장실도 자주 가고 배도 허리도 너무 아파요. 근데 이걸 열일곱 번이나 경험했다고요? 너무 대단하네요.

    숫자를 좀 풀어볼게요. 열일곱 번의 임신 중에 절반이 넘는 열두 번 정도가 유산이나 사산으로 끝났어요. 살아서 태어난 아이는 다섯 명 정도인데 그중 넷이 두 살도 되기 전에 죽었고요. 어떤 아이는 태어나서 몇 시간 어떤 아이는 몇 분만 살고 세례만 겨우 받고 떠났어요. 더 끔찍한 건 사산아 하나가 뱃속에서 한 달이나 죽어있었던 적도 있다는 거예요.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죠.

    그렇게 고생하면서 임신했던 아이들이 성인까지 살아남은 아이가 없다니 너무해요ㅠㅠㅠ 저도 아직 아이가 태어난 게 아니라서 완벽하게 공감은 못 할 수도 있지만 아이를 열일곱 번이나 잃었다는 거잖아요. 너무 잔인하다ㅠㅠ

    여기서 딱 한 명 유일하게 오래 살아남은 아이가 있어요.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이에요. 1689년에 태어나서 이 아이만은 유년기를 넘겼어요. 앤 부부한테는 그야말로 하나뿐인 희망이었죠. 근데 이 아이도 몸이 약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고 뇌에 물이 차는 병을 앓았을 거라고 봐요. 결국 윌리엄은 열한 번째 생일을 맞은 지 며칠 뒤인 1700년에 죽어요. 앤과 남편은 완전히 무너졌고 앤은 매년 아이가 죽은 날마다 하루를 애도의 날로 지키라고 명령했어요.

    아이고 겨우 살아남은 아이마저도 약했다니 앤은 막 다 자기 탓인 것 같고 너무 마음이 아팠겠어요ㅠㅠ 예전이라 아이들이 많이 죽은 건 사실이지만 역시 약하게 태어나긴 했구나 싶네요.

    여기서 중요한 반전 포인트가 있어요. 우리는 보통 옛날에는 의학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고 뭉뚱그려 생각하잖아요. 물론 그것도 맞아요. 근데 앤의 경우는 단순히 시대 탓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커요. 현대 의학자들이 앤의 기록을 분석해보니 앤은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이라는 자가면역 질환을 앓았을 걸로 추정돼요. 이건 몸의 면역체계가 자기 몸을 공격해서 반복적인 유산과 사산을 일으키는 병이에요. 여기에 전신 홍반성 루푸스까지 겹쳤을 거라는 견해도 있고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현대의 추정이고 확진은 불가능해요. 당시엔 이런 병 이름조차 없었으니까요.

    한 가지 더 짚고 갈 게 있어요. 이 임신의 비극은 앤 개인의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앤한테 후사가 없다는 건 곧 스튜어트 왕조가 끝난다는 뜻이었거든요. 그래서 앤의 몸 앤의 임신 하나하나가 국가적인 사건이었어요. 매번의 유산이 개인의 아픔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불안이었던 거죠. 실제로 앤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스튜어트 왕조는 막을 내리고 왕위는 독일 하노버 가문으로 넘어가요.

    그냥 일반 시민이어도 열일곱 번이나 아이를 잃으면 슬펐을 텐데 왕족이니까 더 그랬겠어요. 다들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요. 에휴 아무튼 너무 안타깝네요.

    앤 여왕과 세라의 우정 이야기

    앤한테는 평생을 함께한 단짝이 있었어요. 세라 처칠이에요. 둘이 처음 만난 건 앤이 다섯 살에서 여덟 살 무렵이니까 진짜 어릴 때부터 붙어 자란 사이예요. 세라가 다섯 살쯤 언니였고요. 앤이 1683년에 결혼하면서 세라를 자기 시녀로 데려왔고 그때부터 둘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돼요.

    이 우정에서 제일 귀여운 포인트가 있어요. 둘은 서로를 가짜 이름으로 불렀어요. 앤이 여왕이고 세라가 신하니까 신분 차이 때문에 늘 격식을 차려야 했는데 앤이 그걸 답답해했거든요. 그래서 둘만의 별명을 만들어요. 앤은 몰리 부인 세라는 프리먼 부인. 이 이름을 쓸 때만큼은 여왕과 신하가 아니라 그냥 친구 대 친구로 대할 수 있었던 거죠. 앤이 세라한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애정 표현이 진짜 뜨거워요.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마음을 네가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둘만의 애칭이 있었다니 너무 귀여워요. 아무리 여왕이어도 편하게 털어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는 필요하죠. 주변에 다 아랫사람들만 있으니 답답했을 거 아니에요ㅎㅎ 이해된당.

    여기서 꼭 짚고 갈 게 있어요. 이 편지들이 워낙 애틋하다 보니 후대에 둘이 동성 연인이었다는 얘기가 퍼졌어요. 영화 더 페이버릿도 이걸 소재로 삼았고요. 근데 역사적으로는 근거가 없어요. 17세기와 18세기에는 여자들끼리 편지에서 사랑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격정적인 표현을 쓰는 게 그냥 관습이었거든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연애편지 같지만 그 시대엔 친한 친구 사이의 평범한 말투였던 거예요. 실제로 앤과 세라 둘 다 남편과 금슬이 좋았고 자식도 많이 뒀고요. 그러니까 이건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연인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가 정확한 표현이에요.

    꼭 동성애가 아니어도 진짜 친한 친구들끼리 애정 표현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건데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동성애로 엮는 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인 것 같아요. 앤 여왕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을 텐데 성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거 아니에요. 이건 후대에서 이런 관계다 하고 정의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NOTE 앤과 세라가 동성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영화 더 페이버릿으로 유명해졌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어요. 17세기와 18세기 여성들은 친구 사이에도 사랑이니 그리움이니 하는 격정적인 표현을 편지에 즐겨 썼거든요. 지금 눈으로 보면 연애편지 같아도 그 시대엔 평범한 우정의 언어였던 거예요.

    문제는 이 완벽해 보이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유는 정치였어요. 세라는 휘그당을 열렬히 지지했어요. 그래서 앤한테 계속 휘그당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라고 밀어붙였죠. 근데 앤은 교회를 중시하는 토리당 쪽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어요. 세라는 친구라는 이유로 정치에까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앤을 가르치려 들었어요. 마치 훈계하듯이요. 여왕 입장에서 이게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어릴 때부터 친구니까 더 만만하게 봤을 수도 있고요.

    아이고 여기서 비극이 일어나는구나 싶어요. 역시 이럴 때는 정치적으로 관련이 없을 수 있죠. 친한 친구가 여왕이라면 자기가 미는 사람들을 더 좋은 자리에 앉혀주고 싶고요ㅠㅠ 근데 사실 사적인 친분을 공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거긴 하죠.

    여기에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더 겹쳐요. 세라가 궁정을 자주 비운 사이에 앤 곁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은 세라가 직접 데려온 자기 사촌이었어요. 이름은 애비게일이에요. 가세가 기울어서 하녀 일까지 하던 친척을 세라가 불쌍히 여겨서 궁에 자리를 마련해준 거였는데 이 애비게일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앤의 마음을 서서히 파고들어요.

    세라 처칠
    어릴 때부터의 단짝. 직설적이고 드센 성격으로 여왕을 가르치려 들었어요. 정치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휘그당을 밀어붙였죠.
    애비게일 마샴
    세라가 데려온 가난한 사촌. 조용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지친 여왕을 다독였어요. 다그치지 않는 다정함으로 마음을 파고들었죠.

    세라가 직설적이고 드센 성격이었던 것과는 정반대였죠. 지친 여왕한테는 다그치지 않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애비게일이 훨씬 편했던 거예요.

    이건 진짜 무슨 삼각관계처럼 새로운 친구가 나타났구나 싶어요. 실제로 친구들끼리도 이런 관계가 많죠ㅎㅎ 내가 소개시켜준 친구들끼리 더 친해지고 이런 거요. 학창시절에 셋이 놀다 보면 꼭 이런 경우 있다니까요!

    앤 여왕이 외로움 속에 남긴 것

    세라와 앤의 40년 우정은 결국 파국으로 끝나요.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건 1710년이었어요. 세라가 여왕한테 왜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냐고 매달렸는데 앤은 차갑게 선을 그었어요. 예전의 그 몰리 부인과 프리먼 부인은 이제 없었던 거죠. 이듬해 세라는 궁정의 모든 직위를 잃고 쫓겨나요. 떠나면서 자기가 쓰던 방의 값비싼 물건들을 죄다 뜯어갔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 빈자리는 애비게일이 차지했어요.

    아 40년 우정이 결국 끝을 맞이했구나 싶어서 너무 안타깝다ㅠㅠ 서로 그렇게 애틋했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공격하는 사이가 되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이렇게 보면 진짜 니편 내편은 한끝 차이인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들이랑 싸우면 죽고 못 살던 사이에서 이런 식으로 서로 욕하고 다니고 졸업할 때까지 미워하고 이런 경험 있거든요. 근데 앤이랑 세라도 그랬던 거네요.

    여기서 좀 씁쓸한 얘기가 있어요. 세라가 앤한테 밀려나는 과정에서 복수하듯 못된 짓을 벌였거든요. 앤과 애비게일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저속한 노래를 퍼뜨려서 여왕 이미지에 흠집을 냈어요. 앞에서 말한 동성애 소문의 진원지가 바로 세라였던 거예요. 40년 우정이 이렇게 무기가 되어 돌아온 거죠.

    세라의 복수는 앤이 죽은 뒤에도 이어져요. 앤은 세라한테 보낸 편지들을 읽고 나면 태워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세라는 그걸 안 태우고 30년이나 보관했어요. 그리고 앤이 죽고 한참 뒤에 회고록을 내면서 그 편지들이랑 함께 앤을 우둔하고 나약한 여왕으로 깎아내렸어요. 문제는 이 회고록이 워낙 생생하다 보니 후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걸 진짜 앤의 모습으로 믿었다는 거예요.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학자들이 앤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고요. 친구였던 사람의 원한 어린 기록 하나가 한 여왕의 이미지를 수백 년 동안 규정해버린 거예요.

    근데 앤 여왕이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복수했다니 그건 좀 너무하다ㅠㅠ 아무리 그래도 자기랑 40년을 함께한 친군데요. 니편 내편은 한끝 차이라지만 이건 좀 심했어요.

    앤의 말년은 쓸쓸했어요. 남편 조지도 1708년에 먼저 떠났고 하나뿐이던 아들도 40년 친구도 다 잃었어요. 앤 자신도 평생 병약했는데 말년엔 통풍이 너무 심해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어요. 몸이 퉁퉁 부어서 나중엔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관에 묻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고요. 1714년 8월 1일 마흔아홉에 앤은 눈을 감아요. 한 의사는 앤의 죽음을 두고 지친 나그네한테 잠이 찾아오듯 죽음이 그녀한테 축복처럼 왔다고 적었어요. 살아남은 자식 하나 없이 스튜어트 왕조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요.

    앤 여왕의 말년이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진작 없었을 거고 남편도 먼저 가버리고 그 소중한 친구와도 틀어졌다니ㅠㅠ

    여기서 이 글의 진짜 반전이 나와요. 이렇게 외롭고 병약하고 후대에 저평가까지 당한 이 여왕이 사실은 영국 역사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일을 해냈다는 거예요. 앤의 치세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로 합쳐지는 1707년 통합법이 통과됐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그레이트브리튼 대영제국의 출발점이 바로 앤의 시대였던 거예요. 개인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했지만 여왕으로서의 앤은 두 나라를 하나로 묶어 대국의 기틀을 놓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앤을 그레이트브리튼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이렇게 외로웠던 여왕이 통합법을 남겼다니 멋지네요. 친구의 복수로 후대에까지 저평가당한 앤 여왕이 안타까워요.

    앤 여왕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앤 여왕은 아이가 몇 명이었나요
    평생 열일곱 번 임신했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어요. 유일하게 오래 산 아들도 열한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앤 여왕과 세라는 정말 연인이었나요
    확실한 증거는 없어요. 당시엔 여자끼리 편지에 애정 표현을 쓰는 게 흔한 관습이었고 둘 다 남편과 사이가 좋았거든요.
    동성애 소문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사이가 틀어진 세라가 복수하듯 퍼뜨린 저속한 노래가 진원지였어요. 40년 우정이 무기가 되어 돌아온 셈이에요.
    앤 여왕이 저평가된 이유가 뭔가요
    세라가 앤이 죽은 뒤 회고록에서 앤을 우둔한 여왕으로 깎아내렸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걸 믿었어요. 20세기 후반에야 재평가됐어요.
    앤 여왕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은요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하나로 합친 통합법이에요. 지금의 그레이트브리튼이 앤의 시대에 탄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