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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유럽의 화장실 (성, 거리, 하이힐)

미니55 2026. 8. 13. 21:04

목차


    옛날 유럽의 화장실 (성, 거리, 하이힐)

    화려한 드레스와 웅장한 성으로 기억되는 중세 유럽. 근데 그 시대 화장실은 어땠을까요. 알고 보면 우리가 아는 이야기엔 잘못 퍼진 오해가 꽤 많아요. 하이힐의 기원부터 베르사유의 진실까지 하나씩 풀어볼게요.

    옛날 유럽의 화장실이 성 안에 있던 모습

    성이라고 하면 화려한 홀이랑 드레스만 떠오르는데 화장실은 어땠을까요. 중세 성에는 가데로브라는 화장실이 있었어요. 성벽에 작은 방을 만들고 바닥에 구멍을 뚫어둔 구조예요. 그 구멍 아래로는 성을 둘러싼 해자나 벽 아래 구덩이로 오물이 그냥 떨어졌고요. 예전이니까 아무래도 요즘처럼 깨끗한 화장실을 기대하긴 힘든 게 당연하긴 해요. 아래 구덩이로 오물이 그대로 떨어졌다는 건 옛날 우리나라 시골 화장실도 비슷한 거 아닌가 싶어요. 구덩이로 떨어지게 해놓은 거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찔한데 그 시대엔 이게 나름 갖춘 시설이었어요.

    재밌는 건 이 가데로브라는 말이에요. 원래 이 단어는 옷이나 귀중품을 넣어두는 방을 가리켰어요. 그러다 화장실을 점잖게 부르는 말로도 같이 쓰였고요. 지금 영어에서 옷장을 뜻하는 워드로브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에요.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옷장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기보다 원래 옷 넣는 방이라는 뜻이 먼저였고 화장실은 그걸 점잖게 에둘러 부른 이름이었던 거죠.

    실제로 옷을 이 방에 걸어두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암모니아 냄새가 좀이나 벌레를 쫓아준다고 믿었거든요. 아니 근데 화장실에 옷을 놔뒀다고요..? 저는 지금 옷방에 향기 나는 제품들을 넣어놨거든요~ 그래서 옷에 향이 배어서 어딜 가든 좋은 향기 난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요. 근데 화장실에 옷을 걸어놨다니 옷에서 안 좋은 냄새 나는 거 아니에요?ㅠㅠ 좀 많이 찝찝한데요.. 그땐 또 좀이나 벌레를 쫓기 위해 그랬던 거라니까요..ㅠㅠㅠㅠ 아무리 그래도 옷에서 냄새났을 것 같아요~ㅠㅠ 사실 여부를 떠나서 냄새나는 곳에 아끼는 옷을 걸어뒀다니 지금 감각으론 좀 놀랍죠.

    그리고 의외로 가장 좋은 화장실을 가진 곳은 왕궁이 아니라 수도원이었어요. 큰 수도원에서는 근처 개울물을 돌로 만든 물길로 끌어와 공동 화장실을 씻어 내리는 방식을 쓰기도 했거든요. 왕보다 수도사들이 더 좋은 배관을 갖췄다는 게 재밌는 반전이에요. 왕궁보다 수도원 화장실이 더 좋았다는 게 의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수도원의 힘이 강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맞아요 그 시대 수도원은 돈도 사람도 조직력도 갖춘 곳이라 이런 시설에 오래 공들일 여유가 있었던 거예요.

    옛날 유럽의 화장실과 거리 위생

    자 이제 성 밖으로 나가볼게요. 흔히 중세 도시 하면 오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아무 데나 볼일을 보는 더러운 곳으로 상상하잖아요. 오 저 완전 중세 도시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봐요! 제가 상상한 건 진짜 길마다 오물이 발에 치이고 완전 더러웠을 거라고 상상했거든요. 약간 영화 향수에서 봤던 그 지저분한 도시 풍경.. 그게 중세 도시의 평균 모습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과장된 그림이에요. 그 시대 사람들도 더러운 걸 싫어했고 나름의 방법으로 관리했거든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관리가 되고 있었던 거구나 싶죠.

    우선 집집마다 분뇨 구덩이가 있었어요. 그냥 판 게 아니라 돌로 벽을 대서 만든 구덩이였고요. 재밌는 건 이 구덩이를 이웃집에서 얼마나 떨어뜨려 놔야 하는지까지 법으로 정해뒀다는 거예요. 실제로 어떤 사람은 이웃의 구덩이가 자기 집 벽에 너무 가까워서 오물이 스며든다고 정식으로 항의한 기록도 남아 있어요. 지금으로 치면 층간소음 민원 넣듯이 오물 민원을 넣은 거죠. 이거 보면 우리나라 옛날 화장실이랑 비슷한 느낌인데요? 그때도 오물 퍼가는 직업이 있었던 거랑 비슷해 보여요!

    맞아요 그 구덩이가 차면 전문으로 퍼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법으로 밤 아홉 시부터 새벽 다섯 시 사이에만 일할 수 있었어요. 낮에 다니면서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말라는 거였죠. 대신 워낙 힘들고 꺼려지는 일이라 보수는 오히려 아주 좋았어요. 힘든 만큼 보수가 좋았다는 거 보면 요즘이랑 비슷한 점도 많네요.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직업이 보수가 좋죠! 그리고 이렇게 모은 오물은 그냥 버린 게 아니라 농사용 거름으로 팔았어요. 오 그런 오물들을 거름으로 썼다니 나름 체계적인데요?! 그냥 가져다 버리는 게 아니라 계획이 있었구만요ㅎㅎ 맞아요 더럽긴 해도 나름 순환이 되는 구조였던 거예요.

    도시 차원의 노력도 있었어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을 따로 두기도 했고 창밖으로 오물을 함부로 버리면 벌금을 물리는 규정도 있었어요. 특히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 뒤로는 이런 규정이 훨씬 엄격해졌고요. 청소부도 있고 벌금도 있고 제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관리했는데 왜 중세 시대는 더럽다고 소문이 났던 거죠?? 사실 이 더러운 이미지는 중세 당대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면이 커요. 훗날 사람들이 자기 시대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돋보이게 하려고 앞선 시대를 실제보다 더 어둡고 지저분하게 그린 거죠. 게다가 중세보다 오히려 더 뒤인 시대의 훨씬 붐비고 더러웠던 도시 모습이 중세 이미지로 뭉뚱그려진 탓도 있고요. 참고로 창밖으로 오물을 버리며 물 조심하라고 외쳤다는 그 유명한 이야기도 사실 중세 전체라기보다 한참 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쪽에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중세 도시가 완벽했다는 건 아니에요. 규칙이 늘 잘 지켜진 것도 아니고 비가 오거나 홍수가 나면 구덩이가 넘쳐서 엉망이 되곤 했으니까요. 비가 와서 구덩이가 넘친 건 그 시대를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ㅠㅠ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더럽게만 산 게 아니라 나름 애를 쓰며 살았다는 건 분명해요.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더러운 이미지는 의외로 잘못됐던 거네요.

     

    옛날 유럽의 화장실이 남긴 하이힐 이야기

    이제 이 글에서 제일 유명한 두 가지 오해를 풀어볼게요. 첫 번째가 하이힐이에요. 흔히 하이힐이 길거리 오물을 피하려고 생겼다고들 하잖아요. 발이 오물에 안 닿게 굽을 높였다는 이야기요. 근데 이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니 하이힐이 사실이 아니었다고요...? 저 너무 배신감 들어요! 길거리 오물 피하려고 하이힐 생긴 거 아니었어요? 저 왜 그렇게 알고 있었지.....? 뭐야 뭐야....

    하이힐의 기원으로 학계가 인정하는 건 10세기 무렵 페르시아의 기병이에요. 말을 타고 활을 쏠 때 발이 등자에서 빠지지 않게 굽 높은 신발을 신은 거였어요. 철저히 실용적인 군사 장비였던 거죠. 아니 진짜 하이힐이 기원이랑은 아예 비슷하지도 않잖아요? 이게 뭐람이에요ㅠㅠ 저 나름 역사에 관심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너무 배신감 들어요ㅠ.ㅠ 이게 17세기에 유럽 귀족 남성들 사이에서 멋과 신분의 상징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 유명한 루이 14세도 빨간 굽 신발을 즐겨 신었고요. 루이 14세가 하이힐을 즐겨 신었다는 것도 많이 들어본 거 같아요ㅎㅎ 그러니까 하이힐은 오물이 아니라 말 등자에서 시작된 셈이에요. 오물을 피하려고 굽을 높인 신발이 따로 있긴 했는데 그건 하이힐이 아니라 신발 위에 덧신는 통굽 덧신이었어요. 아 오물 피하려고 높은 신발을 신은 건 맞긴 하구나 싶어요. 이 두 개가 섞이면서 하이힐 오물 기원설이 퍼진 거죠.

    두 번째 오해는 베르사유예요. 그 화려한 궁전에 화장실이 아예 없어서 사람들이 아무 데나 볼일을 봤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이것도 좀 과장이에요. 베르사유엔 이동식 변기가 수백 개 있었고 나중엔 물을 내리는 수세식 화장실까지 몇 개 생겼어요. 문제는 궁전에 드나드는 사람이 수천 명이라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거예요. 게다가 궁전이 물이 잘 흐르지 않는 습지 위에 지어져서 오물을 흘려보내기가 어려웠고요. 그래서 냄새가 났던 건 맞지만 화장실이 통째로 없었던 건 아니에요. 맞아요 베르사유는 지난번에 자세하게 알아볼 때 봤었어요. 저는 아예 화장실이 없었던 건가 했더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근데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화장실이 부족하긴 했다고요..

    재밌는 건 베르사유가 온통 오물 천지였다는 그 지독한 이미지도 사실은 후대에 부풀려진 면이 있어요. 프랑스 혁명 뒤에 왕정을 깎아내리려는 분위기 속에서 옛 궁정을 실제보다 더 더럽고 타락한 곳으로 그린 거죠. 아 길마다 오물 천지였다는 건 과장된 거였구나 싶어요~ 제가 상상하던 길에 오물 덩어리들이 쌓여 있고 하이힐을 신은 사람들이 겨우겨우 피해 다니는 냄새나는 거리는 많이 과장된 거였네요ㅎㅎ 아까 중세 도시가 억울하게 더러운 누명을 썼다고 했잖아요. 베르사유도 비슷하게 필요 이상으로 더러운 이미지를 뒤집어쓴 셈이에요. 사실은 그 시대 사람들 나름의 관리를 하고 있었다니ㅎㅎ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배웠어요. 우리가 아는 화장실 이야기엔 이렇게 잘못 퍼진 부분이 생각보다 많은 거예요.

    우리가 당연하게 알던 이야기 하나가 사실은 오해였어요. 역사는 늘 우리가 아는 것보다 한 겹 더 깊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하이힐이 오물을 피하려고 생겼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이 아니에요. 하이힐의 기원은 10세기 페르시아 기병이 말 등자에 발을 고정하려고 신은 신발이에요. 오물을 피하던 건 하이힐이 아니라 통굽 덧신 쪽이었어요.

    가데로브가 옷장의 어원인가요?

    네 맞아요. 원래 옷을 넣어두는 방을 뜻하던 말인데 화장실을 점잖게 부르는 말로도 쓰였어요. 여기서 영어 워드로브가 나왔답니다.

    중세 도시는 정말 더럽기만 했나요?

    생각보다 과장된 이미지예요. 돌로 만든 분뇨 구덩이와 오물을 퍼내는 전문 인력이 있었고 창밖 투기를 금하는 규정도 있었어요.

    베르사유엔 화장실이 아예 없었나요?

    아니에요. 이동식 변기가 수백 개 있었고 후엔 수세식 화장실도 생겼어요. 다만 수천 명이 드나드는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거예요.

    오물을 퍼내던 사람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밤에만 일하도록 정해져 있었지만 워낙 꺼려지는 일이라 보수는 아주 좋았어요. 모은 오물은 농사용 거름으로 팔기도 했답니다.

    화장실 하나로 시작한 이야기가 하이힐과 베르사유까지 이어졌네요. 당연하게 믿던 이야기가 사실은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되면 역사가 더 재밌어져요. 다음엔 또 어떤 오해를 뒤집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