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니입니다. 저는 역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오늘은 중세 유럽의 목욕 문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중세 유럽 하면 냄새나고 지저분한 시대였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시죠? 저도 그랬어요. 근데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다가 진짜 깜짝 놀랐어요. 중세 사람들이 안 씻었다는 게 사실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중세 도시에는 목욕탕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주말마다 목욕탕 가는 걸 낙으로 삼았대요. 그럼 대체 안 씻는 유럽 이미지는 어디서 온 걸까요. 이게 진짜 반전인데 목욕을 끊은 건 중세가 아니라 그 이후 시대였어요. 오늘 그 오해와 진실 그리고 목욕탕이 사라진 진짜 이유까지 같이 파헤쳐봐요!

중세 유럽 목욕 문화에 대한 오해
먼저 중세 이전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로마 제국 시절엔 공중목욕탕 문화가 대단했던 거 다들 아시죠? 카라칼라 욕장 같은 경우는 한 번에 16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뜨거운 탕 미지근한 탕 차가운 탕이 다 있었고 도서관이나 운동 시설까지 붙어 있었다고 해요. 저 시대에 누가 저렇게까지 생각하고 만들었을지 상상하면 너무 재밌지 않나요ㅎㅎ 저는 이런 점 때문에 역사가 재밌더라구요~ 역사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그 시대에 누가 언제 가장 처음으로 생각하고 만들어냈을지를 상상하면서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정말 끝이 없어요!
그러다 476년에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이 인프라가 통째로 무너져버려요. 수도 시스템 관리가 안 되고 거대한 욕장을 유지할 행정력도 사라진 거죠.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다들 중세는 안 씻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반전이 시작돼요. 로마식 초대형 욕장이 사라진 건 맞지만 목욕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거든요. 11세기 이후 유럽에 도시가 다시 커지면서 목욕탕도 우르르 돌아왔어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숫자로요.
기록을 보면 진짜 놀라워요. 1292년 파리에는 공중목욕탕이 최소 26곳 있었어요. 당시 파리 인구를 생각하면 주민 2600명당 하나꼴이에요. 13세기 런던에는 13곳 14세기 빈에는 29곳 아우크스부르크에는 17곳 15세기 뉘른베르크에는 14곳 크라쿠프에는 12곳이 있었고요. 연구자들은 13세기부터 15세기 사이 유럽 도시에 대체로 주민 2000명에서 5000명당 목욕탕 하나가 있었다고 봐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었다는 거예요. 저는 중세 하면 진흙탕 골목만 떠올렸는데 목욕탕이 편의점처럼 깔려 있었다니 완전 상상이 깨지네요ㅋㅋ
| 도시 | 시기 | 공중목욕탕 수 |
|---|---|---|
| 파리 | 1292년 | 최소 26곳 |
| 빈 | 14세기 | 29곳 |
| 아우크스부르크 | 14세기 | 17곳 |
| 뉘른베르크 | 15세기 | 14곳 |
| 런던 | 13세기 | 13곳 |
| 크라쿠프 | 중세 후기 | 12곳 |
가격도 놀라울 만큼 쌌어요. 1480년 밤베르크의 목욕탕 규정 기록을 보면 농민은 증기탕 한 번에 1헬러를 냈는데 헬러는 당시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었어요. 부유한 시민은 그 두 배인 1페니히를 냈고 나무통에 몸을 담그는 고급 코스는 6페니히였어요. 신분에 따라 요금이 달랐다는 것도 흥미롭죠. 더 재밌는 건 14세기 로흐스부르크 기록인데요. 그 도시 석공들은 주급과 별도로 목욕비 명목의 돈을 매주 6페니씩 받았어요. 독일어로 바데겔트라고 하는데 그대로 옮기면 목욕돈이에요. 회사에서 목욕비를 복지로 챙겨준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ㅋㅋㅋ 회사에서 이런것까지 챙겨주다니 복지가 좋았네용ㅎㅎ
중세 유럽 목욕 문화의 진실
여기서 많이들 잘못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어요. 교회가 목욕을 금지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랍니다. 교회에서 직접 씻지 못하게 한 건 아니였어요. 다만 나체와 혼욕을 경계했다고 해요. 남녀가 함께 쓰는 공중목욕탕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중세 성인들의 기록을 보면 평생 목욕을 하지 않은 걸 미덕처럼 남긴 경우도 있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진짜 더럽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 당시에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평생 씻지 않았다니.. 신기한 이야기죠. 다만 이건 극단적 금욕을 실천한 소수의 기록이지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전혀 아니었어요.
비누도 멀쩡히 있었어요. 서기 800년쯤 샤를마뉴가 왕실 영지 운영 지침으로 낸 문서에 관리인이 챙겨야 할 물품으로 비누가 딱 적혀 있어요. 12세기에는 아랍권에서 단단한 고체 비누 기술이 들어왔고 13세기에 마르세유가 유럽 비누 생산의 중심지가 됐어요. 스페인의 카스티야 비누도 이때 유명해졌고 십자군은 시리아 알레포 비누를 유럽으로 들여왔고요. 1200년경 리처드라는 수도사는 브리스틀에 비누 만드는 사람이 아닌 자가 없다고 기록할 정도였어요. 씻고 싶어도 비누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었던 거예요.
중세 목욕탕이 어떤 곳이었는지 들으면 더 재밌어요. 영어로는 스튜라고 불렀는데 물을 데우는 화덕에서 나온 말이에요. 여기서는 씻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발 면도 마사지를 받고 부항이나 사혈 같은 치료까지 받을 수 있었어요. 약초를 넣고 우린 탕에 몸을 담그는 처방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목욕탕과 미용실과 한의원이 한 건물에 있는 셈이에요. 게다가 커다란 나무통 위에 판을 걸쳐놓고 물속에 앉은 채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기도 했어요. 목욕하면서 안주 먹는 거잖아요ㅋㅋㅋ 파리 목욕탕들은 손님을 끌려고 아예 외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기도 했어요. 근데 약간 적다보니까 좀 부럽네요..? 목욕하면서 밥도 먹고 좋아보여요!
그 호객에도 규칙이 있었어요. 파리 목욕탕 주인들은 길드를 만들어서 규정을 지켰는데 해가 뜨기 전에는 목욕탕 열렸다고 외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어요. 아직 어두울 때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나오면 위험하다는 이유였어요. 일요일에는 물을 데우면 안 된다는 규정도 있었고요. 1200년대에 이미 영업시간 규제와 안전 규정을 만들어서 운영했다는 게 진짜 체계적이지 않나요. 저는 목욕탕 호객꾼이 새벽부터 소리치는 장면 상상하니까 좀 웃겼어요ㅎㅎ 골목에서 목욕탕 물 데웠어요 하고 외치는 거잖아요.
목욕탕은 보통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열었어요. 나머지 날은 청소하고 장작 모으고 비누 만드는 데 썼거든요. 그래서 목욕하는 날이 정해져 있었는데 기록을 보면 장인들이 토요일에 일을 일찍 마치고 목욕탕으로 향했다고 해요. 약간 우리나라도 예전에 이런 비슷한 문화 있지 않았나요? 막 주말에 목욕탕가고 그런거ㅎㅎ 그리고 이 부분이 저는 제일 좋았는데요. 어떤 도시들은 목욕탕 주인이랑 협약을 맺었어요. 도시가 장작을 대주고 세금 일부를 면제해주는 대신 일주일에 하루는 가난한 사람들을 공짜로 받게 한 거예요. 중세에 이미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게 진짜 따뜻한것같아요.
중세 유럽 목욕 문화의 몰락
그럼 이 많던 목욕탕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가 오늘의 진짜 핵심이에요. 목욕탕이 사라진 건 중세가 아니라 중세가 끝나가던 15세기 말부터 16세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더러운 시대라고 부르는 그 중세가 끝난 다음에 사람들이 씻기를 멈춘 거예요.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였던 거죠.
첫 번째 이유는 의외로 돈이었어요. 목욕탕을 돌리려면 물을 데워야 하고 그러려면 장작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중세 후기로 갈수록 유럽의 숲이 계속 줄어들면서 장작값이 올랐어요. 도시가 커질수록 나무는 더 필요한데 숲은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었던 거예요. 결국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게 점점 비싼 일이 되어버렸어요. 게다가 목욕탕 화덕은 화재 위험도 컸어요. 불이 번지면 동네 집 몇 채가 통째로 타버렸으니까요. 저는 이게 좀 의외였어요.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난방비 때문이었다니ㅠㅠ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돈문제는ㅠㅠ 해결이 쉽지 않았나봐요..
두 번째는 병이었어요. 흑사병 이후로도 역병은 계속 유럽을 찾아왔고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과 한 물에 몸을 담그는 걸 점점 무서워하게 됐어요. 결정타는 1490년대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진 매독이었고요. 목욕탕은 원래 사람들이 몸을 맞대고 어울리는 공간이었으니까 이런 병 앞에서는 가장 먼저 지목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세 번째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을 거치며 강해진 도덕적 분위기였어요. 남녀가 벗고 함께 있는 공간을 사회가 더 이상 못 견디게 된 거예요.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몰려왔으니 목욕탕이 버틸 수가 없었죠.
이 부분은 정말 안타까운 부분인데요ㅠㅠ 이 변화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의 기록이 남아 있어요. 네덜란드 인문학자 에라스뮈스가 1526년에 남긴 문장인데요. 25년 전만 해도 브라반트 지방에서 공중목욕탕만큼 유행한 게 없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새로운 역병이 우리에게 목욕탕을 피하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내용이에요. 한 세대 만에 도시의 목욕 문화가 통째로 증발한 거예요. 동네마다 있던 목욕탕이 사람들 눈앞에서 하나씩 문을 닫는 걸 지켜봤다는 거잖아요. 너무 안타깝죠.
— 에라스뮈스가 1526년에 남긴 기록의 요지
목욕탕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대체 수단을 찾았어요.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마른 천이나 식초에 적신 천으로 몸을 닦았고 리넨 속옷을 자주 갈아입는 게 청결의 새로운 기준이 됐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하얀 속옷 깃이 깨끗하면 그 사람은 청결한 사람으로 통했던 거예요. 그리고 남은 냄새는 향으로 덮었어요. 사실 안씻고 향수만 뿌렸다니ㅠㅠ 너무 더러워요....상상하기 싫네요... 귀족들이 향수에 그렇게 집착했던 이유가 사실 여기서 시작되었어요. 나중엔 향수 관련된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이래요. 중세 유럽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잘 씻었고 오히려 그 다음 시대 사람들이 씻기를 멈췄어요. 우리가 중세에 뒤집어씌운 누명이었던 셈이죠. 저는 이번에 자료 찾으면서 제일 크게 뒤통수 맞은 부분이 이거예요. 목욕탕에서 밥 먹고 이발하고 토요일마다 친구들이랑 모이던 사람들을 더럽다고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지금 우리보다 더 자주 어울리고 더 잘 놀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다음엔 그 향수 문화 이야기를 해볼게요. 귀족들이 향수에 집착했던 게 단순한 취향이 아니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출처 · Medievalists.net, Did people in the Middle Ages take baths? / Elizabeth Archibald, Did Knights Have Baths? / Bamberger Baderordnung 1480 / Le Livre des Métiers, 파리 목욕탕 길드 규정 / Erasmus, 1526 / Capitulare de Villis, c.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