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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유럽의 하루 (휴일, 음식, 수면)
중세 하면 암흑기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죠. 어둡고 비참하고 고달픈 시대요. 근데 그 시대에도 사람들은 매일 평범하게 하루를 살았어요. 오늘은 그 하루를 휴일과 음식과 잠 이렇게 세 조각으로 들여다보려고 해요. 알고 보면 생각보다 살 만했거든요.

천 년 전 유럽의 하루에 숨어 있던 휴일
천 년 전 유럽의 하루 하면 보통 이런 그림을 떠올려요. 해 뜨자마자 들판에 나가서 해 질 때까지 쉬지도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는 비참한 삶이요. 저도 그랬어요. 중세 하면 뭔가 암흑기 같고 어두운 이미지가 가득해서 실제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진짜 하루 종일 일만 하고 그렇게 일해도 막 피해만 보고 그랬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과장된 거였구나 싶어요. 요즘 역사학자들도 이 그림이 꽤 부풀려졌다고 봐요.
우선 시간 개념부터가 지금과 완전히 달랐어요. 지금은 하루를 스물네 시간으로 똑같이 나누잖아요. 근데 그때는 해가 떠 있는 동안을 열두 조각으로 나눴어요. 그러니까 낮이 긴 여름엔 한 시간이 늘어나고 낮이 짧은 겨울엔 한 시간이 줄어드는 식이었죠. 시간이 계절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 거예요. 신기하죠. 시계도 따로 없었어요. 교회 종이 그 역할을 했거든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하루의 리듬을 잡아줬어요.
그리고 해가 지면 그냥 하루가 끝났어요. 아아 해가 떠 있으면 낮이고 해 지면 끝이었구나 싶은데 뭔가 좀 아쉽기도 해요. 촛불이나 기름 등불이 워낙 비싸서 밤늦게까지 뭘 하기가 어려웠거든요. 하긴 저도 어렸을 때 집에 정전돼서 촛불 켜본 적 있는데 촛불 켜도 진짜 어둡더라고요.. 뭘 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럼 하루 종일 일하다가 해 지면 그냥 잤나 싶기도 하고 하루가 도파민 없이 심심했을 것 같기도 해요ㅠㅠ 근데 사실 이 밤 시간에도 나름의 사연이 있었어요. 그 얘기는 뒤에서 마저 할게요.
제일 의외인 건 쉬는 날이에요. 아 쉬는 날이 많았다고요? 이건 진짜 좋아요!! 중세는 종교 축일이 정말 많았거든요. 지역이랑 시대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한데 많게는 일 년에 백 일 가까이 쉬었다는 추정도 있을 정도예요. 일요일은 기본이고 성인들 기념일마다 마을이 통째로 쉬면서 축제를 벌였어요. 저 요즘 임신까지 해서 진짜 쉬는 날만 기다리고 있거든요.. 달력 폈는데 빨간 날 없으면 진짜 우울하고요ㅠㅠ 맨날 언제 쉬나 그것만 기다려요. 근데 일 년에 백 일 가까이 쉬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으아 진짜 부러워요. 당장 저는 내일도 출근해야 해서 우울한데 말이에요ㅠ.ㅠ 물론 농사가 바쁜 철엔 그렇게 못 쉬었지만요. 그래도 무조건 죽도록 일만 한 삶은 아니었던 거예요.
천 년 전 유럽의 하루를 채운 음식
중세 음식 하면 다들 이런 상상을 해요. 멀건 죽 한 그릇에 딱딱한 흑빵 한 조각. 맛도 없고 영양도 없는 초라한 밥상이요. 맞아요 저도 중세 하면 뭔가 음식도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ㅎㅎ 생각보다는 다양하게 먹었구나 싶어요~ 이것도 꽤 억울한 오해거든요.
2019년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옛날 문헌과 유물을 분석했어요. 그랬더니 평민들도 고기와 생선 유제품 과일 채소까지 두루 먹었다는 게 밝혀졌어요. 멀건 죽만 먹고 굶주렸다는 건 생각보다 사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였던 거예요.
물론 매일 고기를 먹은 건 아니에요. 근데 닭이나 돼지를 조금씩 키우는 집이 많아서 달걀이랑 돼지고기 정도는 생각보다 자주 상에 올랐어요. 오 달걀이랑 돼지고기 자주 먹은 거면 짱이죠ㅎㅎ 요즘 우리랑 비슷하잖아요! 치즈도 아주 중요했어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데다 단백질도 채워주니까요. 그래도 치즈도 먹고 한 거 보면 생각보다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나 봐요. 빵이랑 포리지라고 부르는 걸쭉한 곡물죽이 기본 끼니이긴 했지만 그 위에 이것저것 곁들여 먹었던 거죠. 향신료가 귀하긴 했어도 허브를 넣어서 나름 맛을 냈고요.
재밌는 건 끼니 수예요. 지금 우리는 하루 세 끼가 당연하잖아요. 근데 그때는 하루 두 끼가 기본이었어요. 정오 무렵의 큰 식사 하나랑 해질 무렵의 가벼운 저녁 하나요. 엥 두 끼만 먹었다고요?? 아니 어른들이야 자기 맘이니까 그렇다 쳐도 어린이들은 세 끼 잘 챙겨 먹여야 좋은데.. 저도 학생 때까지는 삼시 세 끼 잘 챙겨 먹었었고 어른 되고 나서는 바빠서 거의 두 끼만 먹고 있거든요. 근데 임신하고 나니까 아침 안 먹으면 입덧 때문에 너무 힘들더라고요...
더 놀라운 건 아침을 먹는 걸 좀 없어 보이는 행동으로 여겼다는 거예요. 특히 귀족이나 성직자들 사이에서요. 밤새 굶은 걸 아침부터 급하게 채우는 건 절제 없고 게걸스러운 짓이라고 봤거든요. 아침을 참는 게 오히려 품위 있는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근데 없어 보이는 행동이라고 했다고요? 뭘 모르는 사람들이네요!! 그리고 자기들은 힘들게 일 안 하니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죠 농민들은 진짜 잘 챙겨 먹어야죠! 실제로 종일 들에서 몸 쓰는 농민들은 이 체면을 차릴 여유가 없어서 간단하게라도 뭘 챙겨 먹긴 했어요.
그리고 이건 좀 신기한 포인트인데 물 대신 맥주를 물처럼 마셨어요. 애나 어른이나 다요. 물이 다 위험해서라기보단 곡물을 끓여 만든 약한 맥주가 열량도 채워주고 안전하기도 했거든요. 물 대신 맥주라니 싶죠. 저는 사실 술을 안 마시거든요ㅋㅋㅋ 근데 그때는 애기들도 맥주를 마셨다니 신기해요ㅋㅋ 지금으로 치면 식사 때마다 음료 한 잔 곁들이는 느낌이었던 거예요.

천 년 전 유럽의 하루를 끝낸 수면
자 아까 걸어둔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해 지면 그냥 잠들었으니 밤이 심심했겠다 싶었죠. 근데 여기에 진짜 흥미로운 반전이 있어요. 그 시절 사람들은 지금 우리처럼 밤새 한 번에 쭉 자지 않았거든요. 밤을 두 토막으로 나눠서 잤어요. 헐 해 지면 계속 쭉 자는 게 아니었네요. 보니까 생각보다 심심해 보이진 않네요ㅎㅎ
해가 지고 나면 일단 몇 시간 푹 자요. 이걸 첫잠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다 자정 무렵에 자연스럽게 한 번 깨요. 그리고 한두 시간쯤 깨어 있다가 다시 둘째잠에 드는 거예요. 놀라운 건 이 한밤중에 깨어 있는 시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여겼다는 거예요. 불면증이라고 스트레스받은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근데 그때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깨서 할 일을 하다 다시 잤다는 거죠?? 신기해요ㅎㅎ 왜 이렇게 중간에 깼다가 다시 잤을까요? 아마 인공조명이 없으니 밤이 워낙 길어서 그랬을 거예요. 해 지고 바로 누우면 밤이 열 시간 넘게 이어지니까 몸이 알아서 두 토막으로 나눈 셈이죠.
그럼 그 한밤중에 뭘 했을까요. 사람마다 달랐어요. 조용히 기도하거나 그날 꾼 꿈을 곱씹거나 옆에 누운 사람이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어요. 벽난로 불씨를 뒤적이거나 가축을 살피러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요. 저 같으면 옆 사람이랑 도란도란 누워서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진짜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일 것 같아요~ 맞아요 캄캄하고 고요한 그 시간이 오히려 하루 중 가장 사적이고 평온한 틈이었던 셈이에요. 심심하기는요. 나름 알찬 밤이었던 거죠.
이걸 밝혀낸 사람이 역사학자 로저 에키르치예요. 옛날 일기랑 재판 기록 문학 작품을 뒤졌더니 첫잠이랑 둘째잠이라는 표현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대요. 다만 이건 주로 중세 후기에서 근대 초 자료라 중세 전체가 다 이랬다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워요. 최근엔 그 깨어 있던 시간을 너무 부풀린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왔고요. 그래도 인공조명이 없던 시절 사람들이 지금이랑 다른 밤을 보냈다는 건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져요.
여기서 묘한 위로가 하나 생겨요. 혹시 새벽에 눈이 번쩍 떠져서 다시 잠들려고 뒤척인 적 있죠. 우리는 그걸 불면증이라고 자책하잖아요. 저도 요즘 임신하고 나서 화장실을 너무 많이 가서 새벽에 두세 번은 깨거든요ㅡㅡ 근데 어쩌면 새벽에 깨는 게 아주 오래전 우리 몸에 새겨진 자연스러운 리듬이 살짝 고개를 든 것뿐일지도 몰라요. 저도 요즘 계속 자주 깨는데 자연스럽게 쉬다가 더 자야겠어요ㅎㅎ
암흑기라고만 알았던 시대를 하루 단위로 들여다보니 묘하게 친근하죠. 쉬는 날을 기다리고 잘 먹고 싶어 하고 새벽엔 뒤척이던 사람들이요. 천 년이 지났어도 하루를 살아내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