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의 대명사 코코 샤넬 근데 그 화려한 이름 뒤에 고아원에서 자란 소녀가 숨어 있었다는 거 아세요? 오늘은 고아원에서 시작해 향수 제국을 세우고 지워지지 않는 논란까지 남긴 코코 샤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코코 샤넬이 자란 고아원 시절
코코 샤넬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에요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났는데 재밌는 건 출생증명서에 이름이 샤넬이 아니라 샤넬로 잘못 적혔다는 거예요 시작부터가 좀 삐끗했죠
집은 정말 가난했어요 아버지 알베르 샤넬은 이 마을 저 마을 떠도는 행상이었고 어머니 잔 드볼은 세탁부였어요 형제가 여섯이나 됐고 프랑스 시골을 전전하며 살았어요
가브리엘이 11살이던 1895년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들은 농장 일꾼으로 보내고 딸들은 중부 프랑스 오바진에 있는 수녀원 고아원에 맡겨버려요 문제는 아버지가 딸을 내려놓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가브리엘한테는 부자가 되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아이고 코코 샤넬의 어린 시절 진짜 불우하네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한테는 버림받고 어떻게 보면 이대로 내 인생은 망했어 하고 좌절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어요 근데 그걸 다 이겨내고 우리가 아는 그 코코 샤넬이 됐다는 거잖아요
💡 여기서 첫 번째 반전
우리가 아는 럭셔리 아이콘 샤넬의 미학이 사실은 이 고아원에서 만들어졌어요
오바진은 원래 900년 된 수도원이었어요 벽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고 기숙사 문은 검은색이었어요 수녀들은 검은 옷을 입었고 고아들은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었어요 샤넬 하면 떠오르는 그 흑백 대비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고 전기 작가들은 봐요 심플하고 절제된 스타일도 이 수도원의 미니멀한 분위기에서 왔고요
숫자 5도 마찬가지예요 오바진 바닥 모자이크에는 별 문양이 반복해서 새겨져 있었는데 이 별이 훗날 샤넬 주얼리에 계속 등장하고 5가 그녀의 행운의 숫자가 되면서 샤넬 No.5로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수도원 수녀들 옷을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니 진짜 천재였나 봐요 저 같으면 그 상황에서 뭘 더 해봐야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안 들었을 것 같거든요 그냥 현실에 순응하면서 그저 그런 삶을 살다가 죽었을 것 같아요 근데 코코 샤넬은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네요 이건 진짜 배워야겠어요
가브리엘은 여기서 7년을 보내면서 수녀들한테 바느질을 배워요 나중에 그녀를 먹여 살릴 결정적인 기술이었죠 18살이 되던 1901년 고아원을 나와 물랭이라는 마을로 가서 재봉사로 일하기 시작해요 우리가 아는 코코라는 별명도 바로 이 시절에 얻었어요 낮에는 바느질을 하고 밤에는 카바레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불렀는데 코코리코 같은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보고 관객들이 코코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근데 정작 샤넬 본인은 평생 이 고아원 시절을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대신 회색 옷만 입던 미혼 이모들 집에서 자랐다고 둘러댔어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싫었을 거예요 가난과 사생아라는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했던 거죠
코코 샤넬의 향수 No.5 탄생 비화
때는 1920년 샤넬은 남프랑스에서 러시아 망명 귀족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연애 중이었어요 이 대공이 좀 살벌한 이력이 있는데 러시아에서 그 유명한 괴승 라스푸틴 암살에 가담했던 인물이에요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도망 온 처지였죠
바로 이 대공이 샤넬한테 운명의 인물을 소개해줘요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예요 프랑스계 러시아인인데 원래 러시아 차르 궁정에서 향수를 만들던 사람이었어요 황실 조향사 출신이라는 거죠
샤넬이 보한테 던진 주문이 딱 샤넬다워요 장미 냄새 말고 여자 냄새가 나는 향수를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당시엔 이게 진짜 파격이었어요 그때 여자 향수는 딱 두 부류로 나뉘었거든요 정숙한 여자는 장미나 자스민 같은 꽃 한 송이 향을 뿌렸고 반대로 무겁고 진한 동물성 머스크 향은 밤의 여자들 향으로 여겨졌어요 냄새로 여자를 판단하던 시대였던 거죠 샤넬은 이 낡은 이분법을 깨고 싶었어요
🧪 알데하이드가 뭐예요
자연에 있는 향 분자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해낸 물질이에요 향에 넣으면 샴페인처럼 톡톡 튀는 반짝임을 주고 비누 깨끗한 리넨 갓 다린 옷 같은 청량한 느낌을 내요
알데하이드는 1835년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발견했는데 당시 조향사들은 자연 향료를 선호해서 이 인공 향료를 거의 안 썼어요 근데 샤넬과 보는 과감하게 이걸 전면에 내세웠죠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어요 보 아니면 그 조수가 실수로 알데하이드를 원래 넣어야 할 양보다 훨씬 많이 과다 투여했다는 거예요 근데 이 실수가 오히려 신의 한 수가 됐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던 향이 탄생한 거죠 이게 사실이라면 향수 역사상 가장 운 좋은 실수 중 하나예요
그리고 여기 소름 돋는 연결고리가 있어요 알데하이드가 내는 그 비누 냄새가 샤넬한테는 세탁부였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는 설이에요 파트1 기억나시죠 어머니가 세탁부였잖아요 진짜 비누 냄새 느낌인데 어머니를 추억하는 향에서 왔을 수도 있겠어요 어릴 때 잃은 어머니의 비누 냄새가 세기의 향수로 다시 태어난 셈이에요
이름이 정해진 과정도 재밌어요 보가 1번부터 5번 그리고 20번부터 24번까지 번호 매긴 샘플들을 쭉 내밀었는데 샤넬이 딱 5번째 병을 골랐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매년 5월 5일에 컬렉션을 발표하니까 5는 나한테 행운의 숫자다 그러니 이 5번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자 이렇게 샤넬 No.5가 탄생한 거예요
향수를 뿌리지 않는 여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 코코 샤넬
사실 넘버 파이브 향수 정말 좋죠 어릴 땐 살짝 진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뭔가 어른 여자 향기랄까 이거 뿌리면 나도 코코 샤넬처럼 될 것 같고 막 부자 된 느낌이 들어요 샤넬 향수들 다 좋지만 역시 클래식한 넘버 파이브가 짱이에요
1921년 5월 5일 향수가 세상에 나와요 처음엔 대량 판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딱 100병만 만들어서 VIP 고객들한테 공짜로 나눠줬어요 근데 반응이 폭발하면서 정식 판매로 이어졌죠
병 디자인도 혁명이었어요 당시엔 라리크나 바카라 같은 화려하고 장식 잔뜩 붙은 크리스탈 병이 유행이었는데 샤넬은 정반대로 갔어요 순수한 투명함 거의 보이지 않는 병을 원했어요 향수 자체가 주인공이 되게 한 거죠
코코 샤넬을 둘러싼 말년의 논란
화려한 성공 뒤에 샤넬한테는 평생 따라다닌 그림자가 있어요 바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행적이에요
1939년 전쟁이 터지자 샤넬은 갑자기 쿠튀르 하우스를 닫아버려요 지금은 패션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게 명분이었는데 이 결정으로 수천 명의 직원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어요 사실 저는 직원 입장이라 그런가 이 대목에서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요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거잖아요 근데 정작 본인은 조카도 살리고 리츠에도 계속 머물렀다니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좀 아쉽긴 하네요
그러고 나서 샤넬은 리츠 호텔에 머물러요 문제는 이 리츠 호텔이 당시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의 거점이기도 했다는 거예요 도시 사람들이 배급받고 통금에 시달리는 동안 샤넬은 이 호텔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지냈어요
여기서 논란의 인물이 등장해요 독일 정보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클라게예요 슈파츠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샤넬보다 열세 살이나 어렸어요 두 사람은 연인 관계였어요 이 관계 덕분에 샤넬은 점령기에도 리츠에 계속 머물 수 있었고 포로수용소에 잡혀 있던 조카 앙드레를 빼내기도 했어요
여기서부터가 지금도 학계에서 논쟁 중인 부분이에요 훗날 기밀 해제된 문서들을 보면 샤넬이 독일 군사정보부와 연결돼 있었다는 정황이 나와요 웨스트민스터라는 코드네임까지 언급되고요 심지어 1943년에는 영국 총리 처칠과 물밑 평화협상을 시도하는 작전에 동원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물론 이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어요 근데 이게 제대로 밝혀진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평가하기가 참 힘드네요 다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런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아니꼽게 봤을 것 같아요
전쟁 중에 샤넬은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져요 향수 사업 이야기예요 파트2에서 No.5가 대박 났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 향수 사업의 실질적 주인은 따로 있었어요 사업가 피에르 워트하이머 가문이었죠 원래 계약상 샤넬이 가져가는 몫은 수익의 10퍼센트뿐이었어요 마케팅이랑 유통이랑 온갖 궂은일을 워트하이머 쪽이 다 맡았으니까요 근데 이 워트하이머 가문이 유대인이었어요 샤넬은 당시 나치가 만든 유대인 자산 몰수법을 이용해서 이 향수 브랜드를 통째로 차지하려고 시도해요 남의 약점을 파고든 셈이죠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어요
전쟁이 끝나고 파리가 해방되자 샤넬은 체포돼서 조사를 받아요 근데 몇 시간 만에 풀려나요 처칠이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예요 아무튼 샤넬은 스위스로 훌쩍 떠나버려요
그리고 여기서 진짜 반전이 나와요 1954년 샤넬은 71세의 나이로 파리에 돌아와 화려하게 복귀해요 프랑스 언론은 그녀를 싸늘하게 대했어요 전쟁 때 일을 잊지 않았거든요 사실 그렇게 의혹을 남겨놓고 다시 돌아와 화려하게 복귀했으니 프랑스 입장에서는 너무 뻔뻔해 보였을 것 같아요 근데 미국이랑 영국은 달랐어요 샤넬 수트는 다시 불티나게 팔렸어요 사실 샤넬 수트 너무 예쁘긴 하잖아요 지금 봐도 예쁜걸요 미국이나 영국에서 열광할 만해요 재키 케네디가 입었던 그 유명한 핑크 수트도 샤넬이었죠
근데 진짜 아이러니는 따로 있어요 이 복귀를 재정적으로 도운 게 바로 그 워트하이머 가문이었어요 전쟁 때 샤넬이 몰아내려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요 와 워트하이머 가문 완전 대인배 아니에요 저 같으면 망하라고 괴롭혔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복귀를 도와줬다니 대단해요 이 사람들은 알았던 거예요 브랜드의 가치가 개인적인 원한보다 훨씬 크다는 걸요
샤넬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 과거를 세탁하려고 했어요 고아원 시절도 전쟁 때 행적도요 공식 전기에는 전쟁 내내 스위스에서 조용히 향수 로열티로 살았다고 적혀 있었죠 근데 진실은 사후에 하나씩 드러났어요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2011년 미국 작가 할 본이 쓴 책에서 베일이 크게 벗겨졌어요
1971년 1월 10일 샤넬은 자기 집이나 다름없던 리츠 호텔에서 눈을 감아요 87세였고 놀랍게도 죽기 전날까지 새 컬렉션을 손보고 있었어요 완벽주의자로 마지막 순간까지 일에 매달린 거예요
📌 한눈에 보는 코코 샤넬
버림받은 고아원 소녀에서 시작해 세기의 향수와 패션 제국을 세운 인물이에요 눈부신 성공과 지워지지 않는 논란이 함께 남았지만 죽기 전날까지 일에 매달린 그 집념 하나만큼은 확실히 남다르네요
자주 묻는 질문
Q. 코코라는 이름은 본명인가요
아니에요 본명은 가브리엘이고 코코는 젊은 시절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관객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Q. 왜 하필 숫자 5였을까요
샤넬이 매년 5월 5일에 컬렉션을 선보였고 5를 행운의 숫자로 여겨서 다섯 번째 샘플의 번호를 그대로 이름으로 정했어요
Q. 전쟁 때 스파이설은 사실인가요
기밀 문서 등으로 의혹이 제기됐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려요
Q. 샤넬은 결혼을 했나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어요 여러 연인이 있었지만 독립적인 삶을 택했어요
참고 자료: Britannica, Time, History.com, Wikipedia(Chanel No.5 / Ernest Beaux), The Perfume Society, France Today, Malay Mail, Tatler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