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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의 유래 (기원, 남성, 반전)

미니55 2026. 8. 26. 21:25

목차


    하이힐의 유래
    기원 · 남성 · 반전

    반짝이는 드레스에 또각또각 굽 소리. 하이힐 하면 떠오르는 이 이미지가 사실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라면 믿어지세요. 불과 몇백 년 전만 해도 하이힐은 전쟁터를 누비던 남자 군인의 신발이었어요. 여자 신발의 대명사가 어쩌다 남자의 것에서 넘어온 건지 그 반전의 역사를 따라가 볼게요.

    하이힐이 시작된 기원

    하이힐 하면 지금 떠오르는 이미지는 굉장히 여성스러운 패션이잖아요. 여자들이 더 예쁘고 날씬해 보이려고 신는 신발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그래서 요즘은 오히려 불편함을 참고 신기보다 편한 신발을 찾으면서 예전만큼 자주 신지 않는 신발이 된 것 같기도 해요ㅎㅎ 그런데 이 하이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지금 이미지랑 완전히 정반대였다는 거 알고계시나요?? 오늘 그 의외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하이힐의 뿌리는 놀랍게도 전쟁터예요.  정말 의외죠!! 시간을 10세기 페르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지금의 이란 땅이죠. 이 시절 페르시아는 강력한 기병을 자랑하는 나라였는데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게 기병들의 핵심 전투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달리는 말 위에서 두 손으로 활시위를 당기려면 두 발이 등자에 단단히 고정돼 있어야 하거든요. 발이 흔들리면 활을 제대로 쏠 수가 없으니까요.

    바로 이 문제를 풀려고 나온 게 굽이 있는 신발이에요. 신발 뒤축에 굽을 달면 그 굽이 등자에 딱 걸려서 발이 미끄러지지 않았어요. 덕분에 기병들은 말 위에서 몸을 세우고 안정적으로 활을 쏠 수 있었죠. 그러니까 하이힐은 원래 여자를 아름답게 보이려고 만든 게 절대 아니었어요. 남자 군인이 전투에서 살아남으려고 신은 군화였던 거예요. 지금은 불편한 신발의 대표주자인데 원래는 전투를 더 잘하려고 만든 신발이라니 완전 반대라 신기하지 않나요. 사실 하이힐 한 번쯤 신어본 사람이라면 누가 이렇게 불편한 신발을 만들었어 하고 속으로 원망해본 적 있을 거예요~ 저만 그런거 아니죠? 다들 신고 걸어가다 굽 부러져본적도 있고ㅠㅠ 그쵸? 근데 그게 알고 보니 말을 안정적으로 타기 위한 아주 실용적인 물건이었던 거죠.

    재밌는 건 이 굽 있는 신발이 페르시아 안에서 점점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는 거예요. 말을 탄다는 건 그 자체로 아무나 못 하는 일이었어요. 말은 비쌌고 기병은 엘리트 부대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굽 있는 신발을 신었다는 건 내가 말을 탈 수 있는 신분이라는 표시가 됐어요. 나중엔 말에서 내려서도 이 신발을 신고 다녔대요. 신발만 봐도 저 사람이 상류층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던 거죠. 예전에 남자들이 굽 있는 신발을 신었다는 건 저도 알았는데 그게 기병한테서 시작됐다는 건 몰랐어요. 생각해보면 지금도 가방이나 시계 같은 물건이 그 사람의 경제력이나 취향을 은근히 보여주잖아요. 그 시대에는 딱 그 역할을 굽이 했던 셈이라 흥미로워요ㅎㅎ

    여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 다른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페르시아에서는 굽 있는 신발을 남자만 신은 게 아니라 신분 높은 여자들도 함께 신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하이힐은 남녀를 가르는 물건이 아니라 신분을 가르는 물건이었던 거예요. 이 부분을 기억해두세요. 나중에 완전히 뒤집히는 지점이거든요. 이렇게 시작된 하이힐이 대체 어쩌다 여성성의 상징이 되어버린 걸까요. 그 이야기를 다음에서 풀어볼게요.

    남성이 즐겨 신던 하이힐

    앞에서 페르시아 기병의 군화로 시작된 하이힐을 봤잖아요. 이 신발이 드디어 유럽으로 건너와요. 17세기 초에 페르시아에서 유럽으로 사절단이 오갔는데 이때 유럽 귀족들이 페르시아 사람들의 굽 있는 신발에 완전히 반해버려요. 페르시아는 당시 강한 군사력으로 유명했으니까 그 나라 군인들이 신던 신발이 멋있어 보였던 거죠.

    그래서 유럽 귀족 남자들이 이 굽 있는 신발을 앞다퉈 신기 시작해요. 재밌는 건 이들이 하이힐을 신은 이유예요. 더 남자답고 더 군인 같고 더 용맹해 보이려고 신었어요. 그러니까 이 시절 하이힐은 여성스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남성성을 뽐내는 물건이었던 거예요. 지금 우리 생각이랑은 정반대죠. 지금은 남자가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 살짝 독특한 패션 취급을 받기도 하잖아요. 근데 당시엔 더 강해 보이려고 일부러 신었다니 상상이 잘 안 돼요ㅎㅎ 하이힐이랑 남자다움이라니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매치가 안 되거든요. 근데 이렇게 안 어울린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제가 이미 현대의 편견에 갇혀 있다는 증거인가 봐요ㅠ 여성적이라는 느낌도 원래부터 정해진 게 아니라 나중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텐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몇백 년 뒤엔 하이힐이 남자 신발일지 여자 신발일지 궁금해지네요ㅎㅎ

    이 하이힐 사랑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루이 14세예요. 태양왕이라 불린 그 유명한 왕이죠. 루이 14세는 키가 163센티 정도로 그리 큰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굽 높은 신발이랑 높은 가발로 키를 키웠어요. 다만 단순히 키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봐요. 굽 있는 신발 자체가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걸 과시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는 거죠.

    왕이 인정한 사람만 신을 수 있던 빨간 굽. 별것 아닌 신발 한 켤레가 왕의 총애를 발밑으로 보여주는 특권의 상징이 된 거예요.

     

    여기서 루이 14세의 진짜 영리한 부분이 나와요. 바로 빨간 굽이에요. 루이 14세는 궁정에서 자기가 특별히 인정한 귀족만 빨간 굽을 신을 수 있게 정했어요. 저는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긴하지만ㅎㅎ 어쨌든 아무나 못 신는 거니까요. 왕의 눈에 든 사람만 신을 수 있으니까 빨간 굽은 곧 왕의 총애를 받는다는 증표가 됐어요. 이거 진짜 웃기면서도 영리하지 않나요ㅋㅋ 빨간 굽이라고 하면 사실 그게 뭐 대수인가 싶은데 왕에게 인정받아야만 신을 수 있다고 하니까 갑자기 엄청 특별한 물건처럼 보이잖아요. 요즘도 한정판이라거나 아무나 못 사는 물건이라고 하면 더 갖고 싶어지는 거랑 똑같은 심리인 것 같아요. 왕의 총애를 발밑으로 한눈에 보여주는 물건이었던 셈이죠.

    이 빨간색이 왜 그렇게 특별했냐면 염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쌌거든요. 당시 빨간 염료는 멀리 멕시코에서 수입한 코치닐이라는 벌레를 말려서 으깨 만들었어요. 벌레를 잡아다 색을 냈으니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죠. 그러니까 빨간 굽을 신었다는 건 이 비싼 색을 신발 밑에 깔고 다닐 만큼 부유하다는 뜻이기도 했어요. 오죽하면 평발이라는 뜻의 단어가 천한 신분의 남자를 가리키는 속어로 쓰였을 정도예요. 굽이 없으면 신분이 낮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여자만 남게 된 놀라운 반전

    앞에서 봤듯이 17세기까지만 해도 하이힐은 상류층이라면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신는 신발이었어요. 그런데 18세기로 넘어오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남자들이 갑자기 하이힐을 벗기 시작한 거예요. 1730년대쯤 되면 남자들 발에서 굽이 슬슬 사라져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 하이힐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반전이 숨어 있어요. 이 시기 유럽에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이 퍼지거든요. 계몽주의는 남자란 신분이 높든 낮든 본래 이성적인 존재라고 봤어요. 그러니까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시민이 되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남자다움의 핵심이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이성과 실용으로 옮겨간 거예요.

    그러자 남자 패션이 확 바뀌어요. 화려한 옷이랑 굽 높은 신발 대신 수수하고 실용적인 정장에 낮고 편한 구두를 신기 시작해요. 사실 오늘날 남자 정장의 뿌리가 바로 이때예요. 그럼 벗어던진 하이힐은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여자에게 넘겨졌어요.

    18세기 남성 패션

    이성과 실용의 상징으로 이동. 화려한 굽을 벗고 수수한 정장과 낮은 구두를 선택. 오늘날 남성 정장의 뿌리가 됨.

    18세기 여성 패션

    장식과 비이성의 상징으로 밀려남. 남자가 벗어던진 화려하고 불편한 하이힐을 넘겨받아 여성성의 상징이 됨.

    문제는 그 넘겨진 방식이에요. 같은 시기에 여자는 남자와 정반대로 여겨졌거든요. 여자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이며 교육받기 어려운 존재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하이힐이 여자에게 남은 건 여자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여자를 비이성적이고 장식적인 존재로 봤기 때문이에요. 솔직히 이 대목에서 좀 화가 났어요. 여자가 비이성적이라서 화려하고 불편한 신발이 어울린다니.. 니네 잘났다 흥!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남자들은 화려한 옷이랑 높고 불편한 굽을 벗고 실용적인 쪽으로 갈아탈 때 여자들은 오히려 그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신발을 넘겨받았다는 게 씁쓸하고 속상해요. 이성을 상징하는 실용적인 신발은 남자가 갖고 비합리적이고 화려하기만 한 신발은 여자에게 넘긴 셈이죠.

    18세기 후반이 되면 이 구분이 아예 굳어져요. 높고 가는 굽은 여성성과 여자의 사치스러움을 상징하게 됐고 심지어 아름다운 여자는 발이 아주 작아야 한다는 미의 기준까지 생겨났어요. 그러다 프랑스 혁명이 터지면서 하이힐은 잠깐 위기를 맞아요. 남녀 할 것 없이 왕정이나 귀족과 엮이는 게 위험해지니까 다들 화려한 굽을 벗어던졌거든요. 하지만 19세기에 하이힐은 다시 돌아와요. 이번엔 완전히 여자만의 신발로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하이힐은 여자 신발이라는 생각은 사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에요. 불과 300년 전만 해도 하이힐은 전쟁터의 군화였고 왕의 권위였고 남자의 것이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하이힐뿐만 아니에요. 옷의 모양이나 색만 봐도 이건 여성적이다 저건 남성적이다 딱 느껴지는데 이런 이미지도 다 언제 누구한테서 시작된 걸까 궁금해져요. 제가 지금 임신 중이라 아기 물건을 사야 하는데요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무늬랑 색이 확 다르더라고요. 이런 구분도 알고 보면 생긴 지 얼마 안 된 이미지일지 몰라요.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 여기는 것들도 몇백 년 뒤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무엇이 여성스럽고 무엇이 남성스러운지는 원래 정해진 게 아니라 그 시대가 만들어낸 이야기였던 거예요.

    한눈에 보는 하이힐 연표

    10세기
    페르시아 기병의 전투용 군화로 등장
    17세기 초
    사절단 통해 유럽 귀족 남성에게 전파
    17세기 후반
    루이 14세의 빨간 굽 그리고 권력의 상징
    18세기
    계몽주의로 남성은 굽을 벗고 여성에게 넘어감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잠시 자취를 감춤
    19세기
    완전히 여성만의 신발로 자리 잡음

    자주 묻는 질문

    Q. 하이힐은 원래 누구를 위한 신발이었나요

    10세기 페르시아 기병이 말 위에서 활을 쏠 때 발을 등자에 고정하려고 신은 남자 군화가 시작이었어요.

    Q. 루이 14세의 빨간 굽은 무슨 의미였나요

    왕이 인정한 귀족만 신을 수 있던 특권의 상징이에요. 빨간 염료가 무척 비싸서 부와 권력을 함께 뽐낸 셈이죠.

    Q. 남자들은 왜 하이힐을 벗었나요

    18세기 계몽주의가 남자를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존재로 보면서 화려한 굽 대신 수수한 정장과 낮은 구두로 옮겨갔어요.

    Q. 하이힐이 여성 신발이 된 게 언제인가요

    18세기에 남자들이 벗은 뒤 여자에게 넘어갔고 19세기에 완전히 여자만의 신발로 굳어졌어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죠.

    Q. 페르시아에서는 여자도 굽을 신었나요

    네 신분 높은 여자들도 함께 신었어요. 이때 굽은 남녀를 가르는 게 아니라 신분을 가르는 물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