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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슬픈 삷과 시 (천재 시인, 불행, 사후 반전)

미니55 2026. 9. 16. 21:03

목차


    허난설헌 슬픈 삶과 시 (천재 시인, 불행, 사후 반전)

    허난설헌이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조선 최고의 여성 시인으로 꼽히지만 정작 그 삶은 눈물로 가득했던 인물이에요. 오늘은 여덟 살에 신동 소리를 듣던 이 천재 시인이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짓눌렀는지 그리고 스스로 태우라 했던 시가 어떻게 400년을 살아남았는지 하나씩 따라가 볼게요.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허난설헌이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조선 최고의 여성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이에요. 저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사실 자세히는 몰랐는데요. 홍길동전을 쓴 남동생 허균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저는 은근히 허균의 누나로 더 기억하고 있었어요. 본명은 허초희이고 난설헌은 호예요. 호란 본명 대신 편하게 부르려고 지은 별칭 같은 건데 난초처럼 고결하고 눈처럼 맑다는 뜻을 담았어요. 1563년 강원도 강릉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죠.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 허성 그리고 허균까지 온 가족이 글로 이름을 날려서 세상 사람들이 허씨 다섯 문장이라 불렀을 정도예요.

     

    이 집안이 특별했던 건 딸에게도 공부를 시켰다는 점이에요. 조선 시대에 여자아이한테 한문을 가르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 할머니가 떠오르더라구요. 우리 할머니 나잇대만 해도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면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분이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그나마 우리 할머니는 부모님이 공부를 시켜주셔서 고등학교까지 나오셨는데 동네에서 할머니랑 그 여동생 둘만 학교를 다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조선 시대 사람인 허난설헌이 제대로 공부를 했다니 얼마나 깨어있는 부모님이셨나 신기해요. 실제로 허난설헌은 오빠들 어깨너머로 배운 정도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시인 이달에게 직접 시를 배웠어요.

     

    그리고 그 재능이 진짜 남달랐어요. 여덟 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글을 지었는데요. 상량문이란 원래 건물을 새로 지을 때 그 완성을 축하하며 짓는 격식 있는 글이에요. 여덟 살 아이가 하늘의 신선 궁궐이 완성됐다고 상상하며 그 축문을 지었다는 거죠. 이걸 본 선비들이 신동이 나타났다며 감탄했어요. 어른들한테도 어려운 격식 있는 글을 여덟 살에 지었다니 진짜 타고난 천재였나 봐요. 똑똑한 재능에 그걸 지지해주는 가족까지 있었으니 그 시절 허난설헌에게는 그게 참 큰 복이었겠구나 싶어요.

     

    허난설헌의 시는 단순히 예쁘고 곱기만 한 게 아니었어요. 가난한 여인이 밤새 옷을 지어도 정작 그 옷은 남의 차지가 된다는 시 빈녀음에서는 세상의 불평등을 날카롭게 꼬집었어요. 신선이 사는 세계를 그린 유선시도 즐겨 썼는데 현실이 답답할수록 상상 속 신선 세계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거였죠. 실제로 지금 남아있는 그녀의 시 213수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8수가 이런 신선시예요.

     

    저는 이 숫자를 보고 마음이 좀 그랬어요. 그 시대에 허난설헌처럼 똑똑하고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살기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현실은 본인 생각과 너무 다른데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ㅠㅠ 그 답답함을 신선 세계를 그리는 시로 달랬나 싶어서요. 얼마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면 시의 절반 이상을 그렇게 채웠을까 싶었어요.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던 오빠 허봉조차 두보의 소리를 너에게서 듣는구나 하며 여동생의 재능에 감탄했어요. 두보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이에요. 친오빠의 칭찬이라 쳐도 이건 보통 극찬이 아니었죠. 이렇게 허난설헌은 태어난 재능만 놓고 보면 시대를 통틀어 손꼽히는 천재였어요. 시대에 안 맞게 너무 빨리 태어난 천재였지만 그래도 그 재능을 알아주는 가족이 곁에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요. 그런데 바로 이 눈부신 재능이 오히려 그녀를 더 아프게 만드는 시대였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었어요.

    허난설헌의 삶을 짓누른 불행들

    천재로 태어난 허난설헌이었지만 삶은 그 재능을 조금도 편들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오히려 그녀가 너무 천재라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불행은 결혼에서부터 시작됐죠. 열다섯 살 무렵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혼인했는데 이 결혼이 영 순탄치 않았어요. 남편은 과거 공부를 핑계로 밖으로만 돌았고 부부 사이는 데면데면했어요. 시어머니와의 고부 갈등도 깊었죠. 고부 갈등이란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불화를 말하는데 허난설헌의 경우는 그 골이 유독 깊었던 걸로 전해져요. 남편이랑 시어머니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것같네요ㅠㅠ

     

    문제는 그 시대가 이런 여성을 바라보는 잣대였어요. 조선 중기 사대부 사회에서 여성이 시를 짓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건 곱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심지어 밖으로만 도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시조차 여인이 감히 속마음을 드러냈다며 음란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니 솔직히 이건 너무하지 않나요? 남편은 정작 밖으로 나도는데 그런 남편을 그리워한 시가 음란하다니 말이에요. 지금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여성의 재능 자체가 흠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죠. 조선 중기 여성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답답하게 살았을까요.

    내 인생에는 세 가지 한이 있다. 하나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태어난 것 둘은 여자로 태어난 것 셋은 하필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다.

    여기에 감당하기 힘든 상실이 연달아 찾아왔어요.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허난설헌에게 딱 그랬어요. 그녀는 어린 딸과 아들을 잇따라 먼저 떠나보냈고 뱃속의 셋째 아이마저 지키지 못했어요.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심정을 그녀는 곡자라는 시에 담았어요. 곡자란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노래라는 뜻이에요. 두 아이를 나란히 묻고 그 무덤 앞에서 밤마다 운다는 이 시는 지금 읽어도 가슴이 먹먹해져요.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아버지 허엽이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녀를 누구보다 아껴주던 오빠 허봉마저 귀양살이 끝에 눈을 감았죠. 자식들만으로도 무너질 것 같았을 텐데 자기를 그렇게 사랑해주던 아버지와 오빠까지라니 읽기만 해도 답답하고 슬퍼지더라고요.

     

    그녀의 재능을 알아주고 지지해주던 울타리가 하나둘 무너져 내린 거예요. 이 무렵 허난설헌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자신의 인생에 세 가지 한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태어난 것 둘은 여자로 태어난 것 그리고 셋은 하필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라고요. 재능은 하늘이 내렸는데 그 재능을 펼칠 무대도 시대도 짝도 갖지 못했다는 깊은 절망이 이 한마디에 다 담겨 있어요. 본인 스스로도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느끼고 있었다니 마음이 더 안 좋았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 재능을 훨훨 펼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재능 있는 여자를 더 아니꼽게 보던 시대에 태어나 너무 외롭게 지내다 생을 마감한 것 같아서요.

     

    결국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요. 눈을 감기 전 그녀는 방 안 가득했던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어요. 평생을 바쳐 쓴 시를 스스로 재로 돌리라 할 만큼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있었을지 짐작조차 어려워요. 사실 저는 허난설헌을 보면서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삼 참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부모님이 공부하도록 지지해주신 것도 피아노를 전공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다 당연한 게 아니었는데 저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하며 살았더라고요ㅠㅠ

    죽어서 빛을 본 허난설헌 시의 사후 반전

    작품을 다 태우라는 유언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정말 슬프기만 했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시작돼요. 그 주인공은 바로 남동생 허균이었죠. 누나의 재능을 누구보다 아까워했던 그는 친정에 남아있던 시들을 차마 태우지 못하고 몰래 모아뒀어요. 자신이 외우고 있던 누나의 시까지 보태서요. 죽음과 함께 사라질 뻔한 시들이 동생의 손에서 겨우 살아남은 거예요. 이 대목에서 저는 그나마 마음이 좀 놓였어요. 허난설헌의 멋진 글들이 재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허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누나의 시를 세상에 알릴 기회를 노렸죠. 그 무대는 뜻밖에도 국경 너머 중국이었어요. 1606년 명나라에서 사신 주지번이 조선에 왔을 때 허균은 누나의 시를 그에게 건넸어요. 사신이란 나라를 대표해 다른 나라에 보내는 외교 관리를 말해요. 주지번은 시를 읽고 깜짝 놀랐어요. 조선의 어느 여인이 이런 시를 썼단 말인가 하며 감탄했죠. 그렇게 그녀의 시는 난설헌집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간행돼 큰 격찬을 받았어요. 정작 고향 조선에서는 음란하다며 저평가받던 시가 국경을 넘자마자 극찬받은 거예요. 재능을 인정받아 다행이다 싶다가도 그 무대가 하필 중국이라니 저는 기분이 좀 묘하더라고요ㅎㅎ

     

    1563 강릉 명문가에서 출생 여덟 살에 신동 소리를 듣다
    결혼과 불행 열다섯에 혼인 자식과 부모 형제를 잇따라 잃다
    1589 스물일곱에 요절 작품을 태우라는 유언을 남기다
    1606 동생 허균이 시를 중국에 전해 난설헌집 간행
    1711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세 나라가 사랑하는 시인이 되다

    인기는 중국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난설헌집이 간행돼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됐어요. 애송이란 시나 글을 사랑해서 즐겨 외우고 읊는 것을 말해요. 중국에 이어 일본에서까지라니 이건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ㅎㅎ 살아서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의 한 여인이었던 그녀가 죽은 뒤에는 조선 중국 일본 세 나라가 사랑하는 시인이 된 거죠. 그런데 정작 조선에서의 상황은 좀 어이가 없어요. 동생 허균이 훗날 역모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손을 거친 누나의 시집마저 조선에서 한동안 금기가 됐거든요. 그래서 그녀의 시는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역수입되는 얄궂은 길을 걷기도 했어요. 재능을 못 알아보고 음란하다 한 것도 모자라 금기까지 시키다니 저는 조선이 참 야속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명성이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그림자도 따라왔어요. 인기가 많아지면 안티가 생기는 법이잖아요. 바로 표절 논란이에요. 중국에서 그녀의 시가 워낙 유명해지자 청나라의 여성 시인 유여시가 난설헌의 시 가운데 일부가 옛 중국 시를 베낀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거든요. 실제로 빈녀음 같은 작품은 당나라 시인의 시와 상당히 닮았다는 점이 확인되기도 했어요. 다만 이걸 두고 오늘날 학자들의 해석은 갈려요. 그래서 표절이냐 아니냐를 두고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솔직히 저는 학자들의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요. 그때는 그게 흔한 방식이었다고 하고 본인이 직접 정리한 것도 아닌데 다른 작품이 섞였을 수도 있잖아요. 모든 작품이 논란에 휩싸인 것도 아니고요.

     

    NOTE 표절 논란을 보는 두 시선이 있어요. 하나는 당시 한시 창작에서 옛 명시의 구절을 빌려 변주하는 게 흔한 방식이었다는 관점이에요. 다른 하나는 허난설헌이 살아서 시를 직접 정리하지 못한 탓에 후대에 시를 모으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작품이 섞였을 수 있다는 관점이죠. 어느 쪽이든 그녀의 시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국한된 논쟁이에요.

     

    분명한 건 허난설헌이라는 이름이 스물일곱에 스러진 뒤에도 4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에요. 그것도 스스로 태우라 했던 시를 통해서요. 살아서는 시대와 불화했지만 죽어서는 시대를 뛰어넘어 기억되는 시인이 된 셈이죠. 시대를 잘못 타고나 고통만 받다 생을 마감한 것 같아 저는 너무 아쉬워요.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세상에서 못다 펼친 재능을 마음껏 펼치며 살면 좋겠어요.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꿈꾸던 신선의 세계란 현실 너머 어딘가가 아니라 400년 뒤 자신의 시를 읽어줄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