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들고 왔어요! 지난번에 고대 로마 검투사 이야기 재밌게 읽으셨나요? 오늘도 고대 로마 이야기인데요. 저는 고대 로마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접해도 진짜 흥미롭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역시 로마 하면 목욕 문화잖아요! 오늘은 고대 로마 목욕탕을 규모와 사교 그리고 위생 이렇게 세 갈래로 자세하게 이야기할 생각에 저도 너무 설레요ㅎㅎ 혹시 사우나 좋아하세요? 저는 가끔 피곤할 때 사우나 가서 땀 빼고 오면 진짜 개운하거든요. 그리고 사우나에서 옆 사람이랑 대화하다 보면 처음 본 사람인데도 친해지는 그 느낌 있잖아요. 근데 고대 로마 목욕탕은 우리가 생각하는 목욕탕이랑 차원이 달랐어요. 그냥 씻는 곳이 아니라 카페 헬스장 도서관 사교 클럽이 다 합쳐진 공간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요즘 복합 문화 공간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이게 무려 2000년 전에 이미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오늘 같이 들여다봐요!

고대 로마 목욕탕 테르마에의 규모
고대 로마 목욕탕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요. 동네에 있던 작은 유료 목욕탕을 발네아라고 불렀고 황제가 세운 초대형 국책 목욕탕을 테르마에라고 불렀어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동네 목욕탕이랑은 규모 자체가 완전 달랐어요. 대표 주자인 카라칼라 욕장은 서기 212년 무렵 착공해서 216년에 문을 열었는데 중앙 건물만 가로 228미터 세로 116미터에 천장 높이가 약 38미터였고 전체 부지는 25헥타르에 달했어요. 한 번에 16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었고 하루 이용객은 6000명에서 8000명 수준으로 추정돼요. 냉탕인 프리기다리움 미온탕인 테피다리움 열탕인 칼다리움이 다 갖춰져 있었고요. 엄청나죠? 거기다 그리스어 책과 라틴어 책을 따로 둔 도서관 두 개 미술관 식당 그리고 팔라이스트라라고 부르는 야외 운동장까지 있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복합 쇼핑몰이랑 스파가 합쳐진 느낌이에요. 심지어 건물 한쪽 벽면 전체가 상점가였다고 해요.
저는 대형 쇼핑센터에 찜질방 있는 곳 진짜 좋아하거든요ㅎㅎ 가서 데이트하기에도 좋고 친구들이랑 놀러가기에도 좋고 맛있는 것도 먹고 피곤하면 잠깐 쉬기도 하고요. 근데 그 복합 문화공간이 2000년 전에 이미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믿을 수가 없어요ㅋㅋㅋㅋ 입장료도 거의 무료에 가까웠는데 폼페이 목욕탕 발굴에서 실제 요금함이 나왔고 요금은 콰드란스 딱 한 닢이었어요. 콰드란스는 로마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돈으로 치면 몇백 원 수준인 거죠. 황제가 시민들한테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 개념이었고 명절에는 아예 공짜로 풀기도 했어요.
그럼 로마에 목욕탕이 몇 개나 있었을까요. 4세기에 작성된 로마 지역지 기록을 보면 대형 테르마에가 11개 동네 목욕탕인 발네아가 856개로 나와요. 856개라니 지금 서울에 편의점이 856개정도 있나요..? 엄청 많네요;; 그만큼 로마 시민들한테 목욕탕은 일상 그 자체였던 거예요. 진짜 그 시대에 어땠는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죠ㅠㅠ
| 공간 | 어떤 곳이었나요 |
|---|---|
| 아포디테리움 | 탈의실이에요. 벽에 옷 넣는 벽감이 파여 있었어요 |
| 팔라이스트라 | 야외 운동장이에요. 레슬링 권투 공놀이로 땀부터 뺐어요 |
| 테피다리움 | 미온탕이에요. 몸을 서서히 데우는 준비 단계 |
| 칼다리움 | 가장 뜨거운 열탕이에요. 오일 바르고 때를 긁어냈어요 |
| 프리기다리움 | 냉탕이에요. 찬물로 마무리하고 나왔어요 |
이 정도 규모를 굴리려면 어마어마한 자원이 필요했어요. 카라칼라 욕장은 아쿠아 안토니아나라는 전용 수도교를 새로 끌어와야 했을 정도예요. 물을 끊임없이 데우는 방식도 정교했는데 이걸 하이포코스트라고 불러요. 바닥을 통째로 띄워서 그 아래 40에서 60센티미터 높이의 벽돌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그 빈 공간으로 뜨거운 공기를 흘려보내는 구조예요. 그리고 벽 속에도 투불리라는 속이 빈 점토관을 심어서 열기가 벽을 타고 올라가게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바닥 난방과 벽 난방을 동시에 돌린 거죠. 열원은 프라이푸르니움이라는 지하 화덕이었고 그 위에 놓인 청동 가마 세 개가 각각 뜨거운 물 미지근한 물 찬물을 만들어서 다른 욕탕으로 보냈어요. 이 배관 설계를 2000년 전에 해냈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진짜 누가 처음 이런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운영비는 부유한 시민들이나 황제가 후원금을 내서 감당했어요. 자기 이름을 목욕탕에 새기는 방식으로 명예를 얻는 거였죠. 지금으로 치면 건물에 기부자 이름 새기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실제로 로마 지역지에 남은 목욕탕 이름들을 보면 대부분 세운 사람이나 소유주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어요. 근데 이 화로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노동 환경은 정말 열악했어요. 불을 때는 담당자를 포르나카토르라고 불렀는데 좁고 뜨거운 지하 공간에서 하루 종일 장작을 때야 했으니까요. 이야기 듣기만 해도 노예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돼요. 얼마나 덥고 힘들었을까요. 화려한 목욕탕 위층에서 시민들이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는 동안 지하에서는 누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도 로마 시대의 토목 기술은 언제 봐도 신기한 것 같아요. 로마 시대 목욕탕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한번 가보고 싶어요. 2000년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고대 로마 목욕탕의 사교 문화
고대 로마 목욕탕에서는 단순히 씻는 게 끝이 아니었어요. 목욕탕 안에서 정치 사업 인맥까지 다 이루어졌거든요. 정치랑 사업이면 진짜 중요한 이야기인데 그걸 목욕탕에서 했다니 신기하죠ㅎㅎ 로마 사람들은 보통 오후 늦게 일이 끝나면 목욕탕으로 향했어요. 그러니까 목욕탕은 하루 일과의 마침표이자 저녁 약속 장소였던 셈이에요. 로마 귀족들은 여기서 만나서 중요한 거래를 결정했고 심지어 정치인들이 표를 얻으려고 목욕탕에서 유세를 하기도 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골프장에서 사업 이야기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목욕탕 안에는 노예가 따라다니면서 몸에 오일을 발라주고 마사지도 해줬는데 노예를 몇 명이나 데리고 다니느냐가 그 사람의 부를 나타냈거든요. 어느 시대나 자기 지위를 보여주는 방법은 다양했나봐요! 향수로 나타내는 시대도 있었고 옷감으로 나타내기도 했는데 고대 로마 시대에는 목욕탕에서 노예를 몇 명 데리고 다니는지였다니ㅋㅋㅋ 뭔가 웃기네요.
이 분위기를 생생하게 남긴 사람이 있어요. 철학자 세네카인데요. 하필 목욕탕 바로 윗집에 살았거든요.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56번째 편지에서 그는 아령 드는 남자들의 신음 소리 마사지사가 어깨를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 공놀이하면서 점수 외치는 소리 물에 첨벙 뛰어드는 소리 그리고 과자랑 소시지 파는 상인들의 고함까지 전부 나열하면서 투덜거려요. 이거 읽는데 진짜 웃겼어요ㅋㅋㅋ 2000년 전 사람이 층간소음으로 빡쳐서 편지 쓴 거잖아요. 사람 사는 거 어디나 똑같구나 싶은 거 있죠. 근데 덕분에 우리는 그날 그 목욕탕이 어떤 소리로 가득했는지 알게 된 거니까 세네카님 고맙습니다ㅎㅎ
—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편지 56
그리고 여기서 진짜 흥미로운 게 있는데요. 남녀가 같이 목욕탕을 쓰던 시기가 있었어요. 처음엔 남녀가 따로 시간을 나눠서 사용했어요. 폼페이 유적 연구를 보면 남자들이 일하러 나간 오전에 여자들이 목욕탕을 쓰고 남자들은 이른 오후부터 해질 때까지 썼다고 해요. 근데 서기 1세기부터 혼욕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해요. 혼탕이라니 그건 좀 상상이 안 되는데요ㅋㅋ 이게 시대에 따라 금지되기도 하고 다시 허용되기도 했는데 황제 개인 취향에 따라 정책이 바뀌었다는 게 진짜 웃긴 부분이에요.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남녀 혼욕을 금지했는데 헬리오가발루스 황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즐겼다고 전해지니까요. 황제 취향에 따라 만들었다 없앴다 했으니 아래 관리하는 사람들은 진짜 고생했겠어요ㅠㅠ
고대 로마 목욕탕의 위생 문제
이렇게 화려했던 로마 목욕탕인데 사실 위생 문제가 꽤 심각했어요. 어? 목욕탕인데 위생 문제가 있었다니 이게 같이 언급될 수 있는 단어들인가 싶죠ㅋㅋㅋㅋ 물이 계속 순환되는 게 아니라 한 번 채운 물을 여러 사람이 계속 사용하는 방식이었거든요. 수백 명이 같은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는 거예요. 게다가 당시 사람들이 몸의 때를 벗기는 도구로 스트리길리스라는 청동 도구를 썼는데 이걸로 기름과 먼지를 긁어내고 그 찌꺼기가 물속에 그대로 섞였어요. 심지어 로마인들은 비누를 거의 쓰지 않았어요. 올리브 오일을 바르고 긁어내는 게 세정 방식의 전부였거든요. 점점 보다 보니 웩.. 이거 음식 먹으면서 보고 있는 분들도 있을 텐데ㅠㅠ 읽기만 해도 속이 안 좋아져서 더 상상하기 싫네요.
그냥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연구 결과가 있어요. 2016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피어스 미첼 박사가 학술지 파라시톨로지에 발표한 연구인데요. 로마 제국 전역의 화장실 유적 무덤 화석화된 배설물 그리고 빗과 직물까지 싹 모아서 기생충 흔적을 조사했어요. 그런데 결과가 충격적이에요. 로마가 상하수도와 목욕탕을 보급했는데도 편충 회충 그리고 이질을 일으키는 아메바가 오히려 이전 철기 시대보다 늘어났다는 거예요. 심지어 목욕을 거의 안 하던 바이킹이나 중세 사람들이랑 비교해도 로마인의 이와 벼룩 감염률이 별로 낮지 않았어요. 유적에서 머리카락에서 이를 훑어내는 전용 빗까지 나왔다고 하니까요. 최악이네요...
미첼 박사가 원인으로 지목한 게 바로 그 미지근한 공용 욕조 물이에요. 물을 자주 갈지 않아서 사람의 때와 화장품이 섞인 막이 수면에 떠 있었다는 거죠. 기생충한테는 따뜻하고 축축한 최적의 환경이었던 거예요. 터키의 사갈라소스 유적에서는 목욕탕에 딸린 화장실에서 기생충 알이 직접 검출되기도 했어요. 화려한 시설에 비해 실제 위생 상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깨끗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중세시대처럼 아예 안 씻는 것보다는 청결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지금 제 눈에는 둘 다 너무 더러워요ㅠㅠ 그거 아니야!! 비누로 빡빡 깨끗하게 씻어야지!! 하고 외치고 싶네요. 중세 유럽 위생 글에서 로마 멸망 이후 사람들이 씻지 않게 됐다고 했는데 이렇게 화려하고 체계적이었던 목욕 문화가 사라진 게 진짜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카라칼라 욕장도 537년 고트 전쟁 때 수도교가 끊기면서 문을 닫았어요. 결국 로마가 무너지면서 이런 인프라도 같이 무너진 거예요.
목욕탕 하나에 규모 사교 위생 노동까지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줄 몰랐어요. 단순히 씻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로마 사회를 보여주는 축소판 같은 공간이었네요. 화려함 뒤에 숨겨진 노동의 이야기까지 같이 알게 되니까 역사를 더 균형 있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다음엔 고대 로마 시민들의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해볼게요. 목욕탕 다음엔 또 어디로 향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자주 묻는 질문
출처 · Britannica, Baths of Caracalla / Platner & Ashby, A Topographical Dictionary of Ancient Rome / Seneca, Epistulae Morales ad Lucilium 56 / Piers D. Mitchell, Human parasites in the Roman World, Parasitology, 2016 / Williams et al., Intestinal parasites from the Roman Baths at Sagalassos, 2017 / Vitruvius, De Architect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