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향수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샤넬, 디올, 겔랑 같은 유럽 브랜드들이 향수 시장을 지금도 꽉 잡고 있잖아요. 근데 유럽 향수 문화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난 글에서 중세 유럽 사람들이 잘 씻지 않았던 이유를 얘기했는데요. 그 글 마지막에 향수가 위생의 대체 수단이었다고 했었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려고 해요.
향수 하면 요즘은 세련되고 럭셔리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중세 귀족들한테 향수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훨씬 더 현실적이고 절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부터 얘기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지난 글에서 다뤘듯이 중세엔 목욕이 위험하다는 의학적 믿음이 퍼져 있었거든요. 모공이 열리면 독기가 들어온다는 독기설 때문이었는데요. 씻는 대신 냄새를 덮을 방법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향수였던 겁니다.
근데 그냥 냄새 가리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당시엔 좋은 향기가 실제로 병을 막아준다고 믿었습니다. 독기설의 논리를 그대로 뒤집은 거죠. 나쁜 냄새가 병을 일으키니까 좋은 냄새가 병을 막아준다는 거예요. 향수가 일종의 의학적 도구였던 셈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스크 쓰는 느낌이랑 비슷했던 거예요. 방법이 완전히 틀렸을 뿐이지만요.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요. 안 씻은 채로 향수까지 뿌렸으니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체취랑 향수 냄새가 섞인 그 향이 지금 우리 코에는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졌을 텐데요. 그 시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환경에서 살았으니 후각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됐던 게 아닐까 싶어요. 악취에 대한 감각 기준 자체가 지금이랑 달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향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퍼퓸(Perfume)은 라틴어 per fumum에서 왔는데요. 뜻이 연기를 통해서입니다. 원래 향을 태워서 연기로 냄새를 내는 방식에서 시작된 거예요. 중세엔 향을 태워 공기 중의 독기를 정화한다고 믿었답니다.
씻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향수가 줬다면 귀족들이 왜 그렇게 고가의 향수에 집착했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비싼 향수를 쓴다는 건 그냥 냄새가 좋다는 게 아니라 신분의 표현이었거든요.
당시 향수의 원료는 대부분 동방에서 들여오는 향신료였어요. 사향 · 용연향 · 몰약 · 침향 같은 것들인데 지금도 상당히 비싸지만 당시엔 금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걸 온몸에 뿌리고 다닌다는 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부의 과시였던 거예요.
향기로운 사람이 곧 고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중세 귀족 사회에서 냄새는 곧 계급이었어요.
— 중세 유럽 향수 문화의 핵심
실제로 프랑스 왕실 기록을 보면 루이 14세가 매일 다른 향수를 썼다는 내용이 있어요. 베르사유 궁전에서 향수 소비량이 어마어마했는데 씻지 않는 문화와 향수 소비가 정비례했던 겁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냄새가 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고요.
그럼 왜 그 재료들이 그렇게 비쌌을까요. 용연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향유고래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인데 고래가 대왕오징어 같은 걸 소화시키면서 생기는 부산물이에요. 이게 바다에 떠다니다가 발견되는 건데 당시엔 그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바다에서 떠온 귀한 덩어리 정도로만 알았던 거죠. 지금도 향수 원료로 쓰이는데 가격이 어마어마해요.
사향은 사향노루의 향낭에서 추출하는데 노루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극히 적어요. 침향은 특정 나무가 곰팡이균에 감염됐을 때 만들어내는 수지인데 수백 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실크로드와 향신료 무역로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왔으니 가격이 얼마나 됐을지는 짐작이 가시죠.
그러고 보면 지금 유럽 향수 브랜드들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게 우연이 아니에요. 왕실 문화에서 시작된 향수 집착이 수백 년을 거치면서 정교한 산업으로 발전한 거거든요. 샤넬이나 겔랑 같은 브랜드가 파리를 본거지로 두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된 셈입니다. 역사 덕후 입장에서는 향수 하나에서 이렇게 긴 이야기가 나온다는 게 진짜 흥미롭더라고요.
영화 향수를 보셨다면 이 맥락이 더 잘 느껴지실 것 같아요. 그 영화 배경이 중세가 아니라 18세기 파리인데요. 중세보다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위생 상태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시대예요. 주인공 그르누이가 집착했던 그 냄새의 세계가 사실 이런 문화적 배경 위에 있는 거거든요. 영화를 봤을 때 충격적이었던 장면들이 사실 과장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 향수 원료 | 원산지 및 특징 | 당시 가치 |
|---|---|---|
| 용연향 | 향유고래 장내 생성물 · 바다에서 채취 |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음 |
| 사향 | 사향노루 향낭 추출 · 한 마리당 극소량 | 귀족만 사용 가능한 수준 |
| 몰약 | 중동 · 아프리카산 수지 | 성경에도 등장할 만큼 귀한 물품 |
| 침향 | 동남아산 · 수백 년 숙성 | 현재도 세계 최고가 향료 중 하나 |
중세 주요 향수 원료와 가치
향수 하나에서 중세 사람들의 위생 문화 · 의학 이론 · 계급 사회가 다 보이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이 주제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좋아하는 향수 브랜드가 이런 역사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향수 하나 뿌릴 때도 왠지 다른 느낌이 날 것 같지 않으세요.
다음엔 베르사유 궁전에서 냄새가 심했다는 이야기를 더 깊게 파볼게요. 루이 14세 얘기를 잠깐 했는데 사실 그 이야기가 훨씬 더 충격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