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초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 아저씨들 머리가 왜 이래? 다들 대머리였나?" 저는 한참 뒤에 그게 가발이었다는 걸 알고 진짜 신기했거든요. 지금 보면 소라빵 같아서 그냥 웃기기만 한데, 그 시대엔 저게 최고의 패션이었던 거예요. 근데 왜 갑자기 다들 저런 가발을 쓰기 시작한 걸까요. 출발점이 진짜 황당해요. 한 왕의 탈모 콤플렉스에서 시작됐거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시작은 프랑스 루이 13세예요. 그는 20대 초반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당시 왕에게 외모는 권위의 상징이었거든요. 머리가 빠진다는 건 그냥 외모 문제가 아니라 왕의 위엄 문제였던 거예요. 그래서 선택한 게 가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가발을 쓰니까 신하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당연히 다 따라 썼어요. 왕보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건 무례한 일이 됐거든요. 이게 프랑스 궁정에서 시작해서 유럽 전역으로 퍼진 거예요. 한 왕의 콤플렉스가 대륙 전체의 패션을 바꾼 셈이죠.
왕이 쓰면 신하도 써야 했다. 그게 궁정의 법칙이었으니까요.
— 17세기 유럽 궁정 문화의 특징
루이 13세가 시작했다면 아들 루이 14세가 완성했어요. 루이 14세도 일찍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어요. 아예 전담 가발 제작자를 48명이나 고용한 거예요. 매일 다른 가발을 쓰는 게 일과였고 상황에 따라 가발을 교체했어요. 전쟁에 나갈 때, 사냥할 때, 연회에 참석할 때 쓰는 가발이 다 달랐답니다.
그러다 보니 가발이 단순한 헤어스타일이 아니라 신분과 권력의 상징이 됐어요. 가발이 크고 풍성할수록 고귀한 신분이라는 인식이 생긴 거예요. 가발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가발 제작자는 왕실에서 가장 대우받는 장인 중 하나가 됐답니다.

가발 재료 얘기가 또 흥미로운데요. 당시 가발은 주로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들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머리카락을 팔았거든요. 특히 농촌 여성들의 머리카락이 많이 쓰였어요. 귀족이 쓴 저 화려한 가발 안에 가난한 농부의 머리카락이 들어있었던 거예요.
말 털이나 염소 털, 심지어 철사를 쓰는 경우도 있었어요. 고급 가발일수록 사람 머리카락 비율이 높았고, 저렴한 가발은 동물 털을 주로 썼답니다. 당시 가발 하나 가격이 지금으로 치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시기 가발은 그냥 패션이 아니라 일종의 명품이었던 셈이에요.
18세기엔 가발에 흰 분을 뿌리는 게 유행이었어요. 이 분이 밀가루나 녹말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었는데, 당시 식량 부족으로 서민들이 굶주리던 시기에 귀족들이 가발에 밀가루를 뿌리고 다니자 민중의 분노가 쌓였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맥락 중 하나예요.
그럼 이 유행은 왜 끝났을까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결정적이었어요. 귀족 문화 자체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가발도 같이 사라졌거든요. 혁명 이후 가발을 쓰는 건 구체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일이 됐어요. 살아남으려면 가발을 벗어야 했던 거예요.
영국에선 좀 다른 이유로 줄어들었어요. 1795년에 가발 분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거든요. 세금을 내기 싫어서 가발을 안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예요. 이게 귀족 사회에서 가발 문화가 빠르게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답니다.
루이 13세의 탈모 콤플렉스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혁명으로 끝난 가발의 역사.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황당한 출발점을 가진 문화들이 진짜 많아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알고 보면 누군가의 콤플렉스나 우연에서 시작된 경우가 꽤 있거든요.
왕의 탈모 콤플렉스가 150년 넘게 유럽 패션을 지배했다는 게 좀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지금 우리 눈엔 소라빵처럼 보이는 그 가발이 그 시대엔 권력과 품위의 상징이었다니요. 권력이 있으면 자기 콤플렉스도 유행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였던 거죠.
다음엔 귀족 여성들의 화장이 왜 위험했는지 얘기해볼게요. 더 하얗게 보이려고 바른 화장품이 사실은 천천히 자신을 죽이는 독이었거든요. 독살 글이랑 연결되는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