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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생애 이야기 (가족사, 종교음악, 후대 재발견)

by 미니55 2026. 6. 24.
역사덕후가 들려주는 유럽 역사 MUSIC · 바흐
독일 · 바흐

바흐 생애
이야기

가족사, 종교음악, 그리고 100년 만의 재발견

안녕하세요~! 모차르트랑 베토벤 이야기에 이어서 오늘은 바흐 생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바흐는 진짜 위대한 음악가죠!! 피아노 전공자 중에 바흐 연주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도 제일 많이 연주한 게 바흐예요! 인벤션, 평균율은 전공자라면 필수 코스잖아요ㅎㅎ 근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당 바흐는 살아있을 때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냥 독일 라이프치히의 평범한 교회 오르가니스트였어요. 죽고 나서 100년 가까이 거의 잊혀졌다가 후대에 재발견되면서 지금의 명성을 얻은 거예요. 그 곡들을 만든 사람이 살아있을 땐 그냥 동네 음악가 취급받았다는 게 신기했어요. 오늘 그 바흐 생애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볼게요!

 

 

18세기 독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 바흐가 음악감독으로 일했던 곳입니다
01바흐 생애 중 가장 파란만장했던 청년 시절

 

바흐 하면 다들 근엄하고 진지한 음악의 아버지 이미지를 떠올리시잖아요. 초상화도 보면 무뚝뚝하게 인상 쓰고 있고요. 저한테도 바흐는 교회에서 경건하게 음악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젊은 시절 바흐는 완전 반전이에요. 진짜 혈기 넘치는 청년이었거든요. 스무 살 때 아른슈타트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는데, 같이 일하던 바순 연주자한테 일부러 어려운 악보를 주고는 연주 실력을 대놓고 비웃었대요. 그 연주자가 빡쳐서 바흐한테 결투를 신청했다는 기록까지 있어요. 음악의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동료랑 몸싸움을 했다는 거예요ㅋㅋ 근데 다른 사람 연주 못한다고 비웃은 건 아무리 바흐여도 좀... 선넘은거같아요ㅋㅋ

 

더 웃긴 이야기도 있어요. 바흐가 18살 때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듣고 싶어서 4주 휴가를 냈어요. 근데 무려 450km를 걸어서 갔대요. 걸어서요! 저도 북스테후데 음악 좋아하는데 바흐도 저랑 같은 걸 좋아했구나 싶어서 반갑더라고요ㅎㅎ 그리고 그 연주에 푹 빠져서 4주가 아니라 4개월 만에 돌아왔어요. 당연히 교회에서 난리가 났겠죠. 돌아오자마자 징계위원회에 불려갔는데, 징계 사유가 다섯 가지나 기록돼 있어요. 휴가를 4주 냈는데 4개월이나 비웠다, 연주를 너무 화려하게 해서 신도들이 혼란스러워한다, 성가를 너무 길게 연주한다, 단원들이랑 자주 다툰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제일 웃겨요. 낯선 여자를 오르간 연주대로 불러서 사랑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거예요. 근데 그 여자가 나중에 바흐의 첫 번째 아내가 된 육촌 누이 마리아 바르바라였어요. 엄숙한 이미지랑 다르게 사랑에는 진짜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거죠ㅎㅎ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진짜 강렬하지 않나요?

02바흐 생애를 가득 채운 20명의 자녀 이야기

 

바흐 생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가족이에요. 바흐는 음악사를 통틀어서 정말 손에 꼽히는 다둥이 아버지였거든요. 자녀 많은 걸로 유명한 음악가를 꼽으라면 바흐가 거의 항상 1순위로 나올 정도예요. 앞에서 이야기한 마리아 바르바라랑 결혼해서 7명의 아이를 낳았어요. 근데 안타깝게도 마리아가 1720년에 세상을 떠나요. 바흐는 슬픔에 빠져있다가 다음 해에 궁정 소프라노였던 안나 막달레나랑 재혼을 해요. 그리고 안나한테서 또 13명의 아이를 낳았어요. 두 아내를 합쳐서 총 20명의 자녀를 둔 거예요. 20명이라니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도 안 되는 숫자잖아요.

근데 더 안타까운 건 이 20명 중에서 절반 가까이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는 거예요. 1713년에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둘 다 출생 직후에 사망했어요. 자녀가 20명이나 있었는데 살아남은 자녀들이 별로 없다니 마음이 아프네요ㅠㅠ 그땐 위생 관념도 없었고 의료도 발달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겠죠ㅠㅠ 당시 의료 수준을 생각하면 흔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그래도 살아남은 자녀들 중에 몇 명은 아버지를 이어서 음악가가 됐어요. 그중에서도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흔히 CPE 바흐라고 부르는 아들이 제일 유명한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 레슨을 많이 하는데 CPE 바흐 곡도 지금까지 연주하거든요ㅎㅎ CPE 바흐는 고전파 음악의 문을 연 인물로 평가받을 정도로 유명해졌어요. 흥미로운 건 바흐가 살아있을 때는 오히려 이 아들 덕분에 더 유명했다는 거예요.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그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니라 아들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를 칭찬한 거라는 설이 일반적이래요. 아버지보다 아들이 더 유명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거예요.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됐지만 그땐 아들이 더 유명했다니 진짜 신기하네요.

바흐가 살아있던 시대에 음악의 아버지를 알아본 건, 정작 그의 아들이었다.

— 바흐와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의 명성을 비교하며
03바흐 생애와 떼어놓을 수 없는 종교음악

 

바흐 생애를 이야기할 때 종교음악은 정말 핵심이에요. 바흐는 1723년부터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거의 매주 새로운 칸타타를 작곡해서 예배에 사용했어요. 바흐 하면 진짜 교회음악이랑 떼놓을 수가 없잖아요! 매주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찬양했다는 건 진짜 충격적이에요... 얼마나 천재인 건지 싶어요. 한 주에 한 곡씩 새 음악을 만든다는 게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한 작업량이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진 칸타타가 200곡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어요. 게다가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B단조 미사 같은 대작들도 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거예요. 특히 마태수난곡은 연주 시간이 거의 3시간에 달하는 대작인데, 예수의 수난을 음악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부활절 시즌마다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어요.

 

거기다가 바흐 곡들은 다 너무 좋아요ㅠㅠ 낭만시대를 지나가면서 곡이 화려해지고 멋있어졌지만 바흐 시대에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근데 바흐 곡을 들으면 너무 좋더라고요. 살짝 수도사들의 그레고리안 성가 들을 때같이요ㅎㅎ 제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나봐요. 근데 흥미로운 건 바흐가 이렇게 종교음악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는데도 173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 음악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갔다는 거예요. 교회 측이랑 갈등도 많았고 음악감독으로서의 권한이 자꾸 제한당하는 상황에 지쳤던 것 같아요. 진짜 바흐도 너무 고생했죠. 바흐도 사람인데 말년에 지칠 만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반부에는 콜레기움 무지쿰이라는 시민 음악 모임을 직접 이끌면서 종교음악이 아닌 기악곡에 더 집중하게 돼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나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 전후로 나온 거예요. 평생 신앙과 음악을 함께한 사람이었지만 말년에는 교회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더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다는 게 의외이면서도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고전 시대 오르간 — 바흐 음악의 정교함을 가장 잘 담아내는 악기였습니다
04바흐 생애 이후 100년 만의 재발견

바흐 생애에서 가장 의외인 부분이 바로 이거예요. 1750년에 바흐가 시력 악화와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이후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거의 잊혀진 작곡가가 됐어요. 당시는 음악 스타일이 빠르게 바뀌던 시기였거든요. 바흐의 복잡하고 정교한 대위법 음악은 점점 유행이 지난 스타일로 여겨졌고, 모차르트나 하이든 같은 고전파 음악가들이 더 단순하고 화려한 곡들로 인기를 끌게 돼요. 그래서 일반 대중들은 바흐를 거의 잊어버렸지만 흥미로운 건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모차르트도 바흐의 악보를 따로 구해서 연구했다는 기록이 있고, 베토벤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까 대중적으로는 잊혔지만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은밀하게 계속 전수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1802년에 포르켈이라는 음악학자가 바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를 출간하면서 재조명이 시작돼요.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1829년에 일어나요. 작곡가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거의 100년 만에 다시 공개 연주회로 올린 거예요. 와 진짜 멘델스존 대박이에요! 멘델스존이 아니었으면 저는 바흐같이 위대한 음악가의 음악을 연주해볼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잖아요ㅠㅠ 이 연주회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바흐 부흥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이후로 바흐의 작품들이 하나씩 재발굴되고 출판되면서 지금의 음악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게 된 거예요.

 

저는 학부생 때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바흐를 왜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됐거든요. 다른 음악가들은 음악사 안에서 함께 묶어서 공부했는데 바흐는 바흐만 따로 빼서 공부했어요. 그만큼 음악사에서 없으면 안 될 사람이라는 거예요!! 근데 그걸 멘델스존이 살려낸 거라니 진짜 신기방기하네요ㅎㅎ 바흐 생애를 끝까지 들여다보면 진짜 천재가 살아있을 때 항상 인정받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돼요.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평가받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부분이에요.

바흐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보니 음악의 아버지라는 거창한 칭호 뒤에 정말 인간적인 삶이 있었다는 게 느껴지네요. 혈기 넘치던 청년 시절, 20명의 자녀를 둔 가정사, 평생 바친 종교음악, 그리고 100년 만의 재발견까지. 다음에 바흐 곡 들으실 때 이 이야기들이 떠오르시면 좋겠어요!

다음엔 다른 음악가 이야기로 또 찾아올게요. 클래식 작곡가들 인생이 생각보다 다 드라마틱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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