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면 살면서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낭만의 나라잖아요. 에펠탑, 센강,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 근데 이번 글을 읽고 나면 베르사유를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미리 사과드립니다 ㅎㅎ 지난 글에서 루이 14세가 향수 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오늘은 그 이유를 제대로 파보려고 합니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저도 홀딱 깨는 느낌이었는데요. 베르사유 궁전에는 수천 명이 살았습니다. 루이 14세 시절엔 귀족과 하인을 포함해서 많게는 2만 명 가까이 거주하거나 출입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근데 그에 비해 화장실 수가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귀족들이 어떻게 했냐면요. 궁전 복도 구석, 계단 아래, 심지어 정원 한쪽에서 그냥 해결했어요. 당시 기록에는 베르사유를 방문한 외국 귀족들이 복도에서 나는 냄새에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 아름다운 정원도 사실 그냥 야외 화장실이었던 셈이에요. 환상이 좀 깨지시나요 ㅎㅎ
베르사유의 복도와 계단, 안뜰에서도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향수는 그것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 당시 방문객 기록을 토대로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혹시 하이힐이 왜 생겼는지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당시 파리 거리에는 오물이 넘쳐났는데 그걸 피하려고 굽을 높인 신발이 발달했다는 설이 있어요. 물론 여러 기원설이 있긴 한데 당시 파리 거리 위생 상태를 생각하면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예요. 낭만의 도시 파리의 이면이 이런 거였다니 뭔가 씁쓸하기도 하죠.
하이힐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어요. 오물을 피하기 위해 굽을 높였다는 설 외에도 승마할 때 발이 등자에 고정되도록 굽이 생겼다는 설도 있습니다. 루이 14세 본인도 키가 작아서 굽 높은 신발을 즐겨 신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어느 설이 맞든 당시 유럽의 위생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근데 여기서 궁금한 게 생기는데요. 루이 14세는 그냥 파리에 있으면 됐잖아요. 왜 굳이 파리 외곽에 이 거대한 궁전을 짓고 수천 명을 데려다 살게 했을까요. 이게 사실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권력의 전략이었습니다.
루이 14세가 어릴 때 프롱드의 난이라는 귀족 반란을 직접 겪었어요. 어린 루이 14세는 파리를 탈출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됐고 왕이 된 후에 내린 결론이 귀족들을 자기 눈앞에 모아두는 거였어요. 베르사유에 살게 하면서 서로 경쟁시키고 왕의 총애를 받으려고 아등바등하게 만든 거죠.
귀족들이 베르사유에 살려면 왕의 허락이 필요했고 베르사유를 떠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어요. 영지로 돌아가서 힘을 키울 틈을 안 준 거예요. 그 아름다운 베르사유가 사실은 귀족을 가두는 황금 새장이었던 셈입니다. 화려함 뒤에 이런 냉혹한 계산이 있었다는 게 루이 14세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다시 냄새 이야기로 돌아오면요. 수천 명이 한 공간에 모여 살고 화장실은 부족하고 씻는 문화는 없으니 향수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어요. 베르사유 왕실의 엄청난 향수 수요가 프랑스 남부 도시 그라스를 세계 향수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프랑스 향수 브랜드들의 뿌리가 여기서 시작된 겁니다.
루이 14세는 매일 아침 다른 향수를 몸에 뿌리는 게 일과였고 방문객이 들어오기 전 방에 향수를 뿌리게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향수 왕이라는 별명이 그냥 생긴 게 아닌 거죠. 근데 생각해보면 그게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그만큼 냄새가 심했다는 반증이기도 한 거예요. 화려한 베르사유와 지독한 냄새가 공존했던 그 아이러니, 역사 덕후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진짜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베르사유가 마냥 멋있게만 보이지 않게 됐다면 그게 역사를 제대로 본다는 증거 아닐까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될 때가 역사 공부의 가장 재미있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다음엔 왕들이 독살을 그렇게 무서워했던 이유를 얘기해볼게요. 베르사유에서 벌어진 독살 사건도 연결이 되거든요.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