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라는 이름 한 번쯤 들어보셨죠? 세계 3대 미녀로 꼽히는 인물인데요, 사실 예쁘다는 것만 알려져 있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오늘은 이 신비로운 미녀의 삶을 저랑 같이 차근차근 파헤쳐 봐요.
세계 3대 미녀 양귀비의 미모

여러분 세계 3대 미녀 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보통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동양에도 그에 버금가는 미녀가 있었어요. 바로 오늘 이야기할 양귀비예요. 클레오파트라 일본의 오노노 고마치와 함께 세계 3대 미녀로 꼽히고 중국에서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4대 미녀로 불리는 인물이죠. 사실 저도 이름은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예쁜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았지 뭘 했던 인물인지는 잘 몰랐거든요ㅎㅎ 오늘 저랑 같이 제대로 알아가 봐요.
그런데 재밌는 건 양귀비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날씬한 미인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기록을 보면 키는 155에서 165센티미터 정도에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이 넘는 통통한 체형이었다고 해요. 요즘 미의 기준으로 보면 좀 의외죠? 근데 이게 당나라 시절엔 오히려 최고의 미인상이었어요. 그 시대에는 풍만하고 건강한 몸매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봤거든요. 이런 걸 보면 역시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나 봐요ㅋㅋㅋ 저도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지금처럼 맨날 다이어트 안 해도 됐을 텐데 싶어서 살짝 부럽기도 하네요ㅠㅠ 시대마다 미의 기준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참 흥미롭지 않나요?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두고 전해지는 일화도 있어요. 양귀비가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궁궐 화원을 거닐다가 무심코 꽃 한 송이를 건드렸는데 그 꽃이 부끄러워서 잎을 오므렸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꽃도 부끄럽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수화라는 별명이 붙었대요. 근데 생각해보면 보통 사람이 꽃을 건드려서 잎이 오므라들었으면 어 저 꽃 뭐야 신기하네 하고 말았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걸 꽃이 부끄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니 주변에서 주접이 상당했나 봐요ㅎㅎ 물론 실제로는 함수초라는 식물이 원래 건드리면 잎을 오므리는 특성이 있었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만큼 미모가 대단했다는 뜻이겠죠.
본명은 양옥환이었어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 손에 자랐다고 하는데 미모뿐 아니라 재능도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특히 비파 연주 실력이 상당했고 춤과 노래에도 능했다고 해요. 아니 예쁜 데다가 음악까지 잘했다니 왜 이렇게 다 가지려고 하는 걸까요ㅎㅎ 저는 사실 이 대목이 좀 반갑더라고요. 그냥 예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음악적 재능까지 갖춘 사람이었다는 거잖아요. 제가 음악을 하다 보니 이런 부분에 자꾸 눈이 가네요.
당나라 시인 이백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활짝 핀 모란꽃에 비유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어요.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 시대 최고의 시인이 꽃에 빗대어 노래했을까요. 현대를 살아가는 저까지도 이렇게 양귀비 외모 칭찬을 듣고 있다니 대체 얼마나 아름다웠던 건지 점점 더 궁금해지네요. 실제 얼굴은 그림으로만 짐작할 수 있는데 중국 정부가 공식으로 인정한 초상화가 화청궁이라는 곳에 걸려 있다고 해요.
양귀비의 미모에 빠진 당현종

자 이제 양귀비 인생을 완전히 뒤바꾼 남자가 등장할 차례예요. 바로 당나라 6대 황제 현종이에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좀 충격적이에요. 왜냐하면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며느리였거든요. 네 맞아요 아들의 아내였어요. 양귀비는 처음에 현종의 아들인 수왕 이모의 부인이었어요. 며느리랑 시아버지라니 이쯤 되면 웬만한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겠죠?
그럼 어쩌다가 며느리가 황제의 여자가 됐을까요? 사연은 이래요. 현종이 그토록 아끼던 후궁 무혜비가 세상을 떠나면서 크게 상심해 있었어요. 그때 양옥환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게 된 거죠. 현종은 며느리를 한번 불러다 춤과 노래를 시켜봤는데 그 모습에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어요. 이때 현종의 나이가 쉰이 훌쩍 넘었고 양귀비는 스무 살 남짓이었으니 나이 차이도 어마어마했죠. 솔직히 저는 여기서부터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아무리 예전 사람이라지만 어떻게 며느리한테 반할 수가 있나 싶어서요ㅠㅠ
문제는 아무리 황제라도 며느리를 대놓고 데려올 수는 없었다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비도덕적인 일인지 현종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꾀를 냈어요. 양귀비를 잠시 도교 사원에 여도사로 보내서 신분을 한번 세탁한 거예요. 며느리라는 꼬리표를 지운 다음에 다시 궁으로 데려온 거죠. 그리고 원래 남편이었던 아들에게는 다른 여자를 새 아내로 맺어줬어요. 아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 아내를 데려오고 아들은 다른 여자랑 결혼시키다니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죠. 왕이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저는 솔직히 좀 아찔하더라고요. 그 시절 황제의 권력이란 게 이 정도였던 거예요.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백거이의 장한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어요.
이렇게 궁에 들어온 양귀비는 귀비라는 자리에 올랐어요. 당시 황후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후궁 중 최고 지위였고 황후나 다름없는 권세를 누렸다고 해요. 현종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양귀비가 좋아하는 여지라는 남방 과일을 신선하게 먹이려고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말을 쉬지 않고 달리게 해 실어 날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예요. 요즘으로 치면 좋아하는 사람한테 해외 특산품을 총알배송으로 매일 공수해준 셈이죠. 방식은 이해 안 되지만 사랑 하나만큼은 어마어마했나 봐요.
두 사람은 화청지라는 온천 궁전에서 겨울을 함께 보내며 음악과 춤을 즐겼어요. 양귀비도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현종 역시 음악을 무척 사랑한 황제라 둘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백거이라는 시인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장한가라는 긴 시로 노래했는데 이 작품 덕분에 양귀비와 현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연인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어요. 시작이 어땠든 후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애틋한 사랑으로 기억한다는 게 좀 묘하긴 하네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싹트기 시작해요. 현종이 양귀비에게 푹 빠져 지내는 동안 나랏일을 점점 뒷전으로 미루기 시작한 거예요. 게다가 양귀비의 친척들까지 줄줄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조정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죠. 사랑에 눈이 먼 황제와 그로 인해 기울어가는 나라. 이 이야기가 다음 파트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조금 뒤에 이어서 들려드릴게요.
양귀비가 맞은 최후
자 앞에서 나라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했죠? 이제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들려드릴게요. 결론부터 말하면 양귀비의 최후는 정말 안타깝고 씁쓸해요.
문제의 중심에는 안녹산이라는 인물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원래 변방을 지키던 장군이었는데 재밌는 건 양귀비가 이 안녹산을 수양아들로 삼았다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좀 놀라운 게 양귀비가 안녹산보다 스무 살 넘게 어렸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스무 살도 넘게 많은 사람을 아들로 들이다니 정말 그 시대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 참 많은 것 같아요ㅎㅎ 아무튼 안녹산은 이렇게 황실과 친분을 쌓으면서 점점 세력을 키워갔어요.
그런데 양귀비의 친척 오빠였던 양국충이 문제였어요. 양귀비 덕분에 재상 자리까지 오른 인물인데 이 사람이 안녹산을 견제하면서 둘 사이가 크게 틀어진 거예요. 결국 안녹산은 양국충을 없앤다는 명분을 내세워 755년에 반란을 일으켜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안사의 난이에요. 당나라를 뿌리째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죠.
| 안사의 난 핵심 인물 | 어떤 사람인가요 |
|---|---|
| 양귀비 | 현종의 총애를 받은 귀비 안녹산을 수양아들로 둠 |
| 당 현종 |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한 황제 |
| 양국충 | 양귀비의 친척 오빠 재상까지 오른 인물 |
| 안녹산 | 양국충과 대립하다 반란을 일으킨 장군 |
반란군이 수도 장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서둘러 피란길에 올라요. 그런데 마외파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일이 터져요. 황제를 호위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멈춰 서서 요구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 양씨 집안이니 양국충과 양귀비를 없애야 다시 움직이겠다고요. 병사들은 이미 양국충을 처단한 뒤였고 이제 화살은 양귀비를 향하고 있었어요.
현종은 정말 괴로웠을 거예요. 그토록 사랑하던 여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성난 병사들을 달래지 못하면 자기 목숨도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결국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를 포기하기로 해요. 자기가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내준 거죠. 생각해보면 참 씁쓸하지 않나요? 그렇게 온갖 걸 다 해주고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던 사랑이었는데 정작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그 사랑을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해버리네요. 저는 이 대목에서 마음이 참 복잡해지더라고요.
양귀비는 마지막 순간에 현종만 무사하다면 자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그리고 비단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요. 그때 나이가 서른여덟이었어요. 한쪽은 살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고 한쪽은 그 사람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같은 사랑인데 이렇게 다르다는 게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절세미인으로 온 나라의 사랑을 받던 여인의 마지막이라기엔 너무 쓸쓸하죠.
사실 저는 보통 얼굴이 예쁘면 왠지 행복하게만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최고로 아름답다던 양귀비의 결말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거라니 아름다움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구나 싶어서 마음이 짠해지네요.
그런데 재밌는 건 후대 사람들의 평가예요. 흔히 양귀비 때문에 나라가 기울었다고들 하잖아요. 경국지색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거고요. 하지만 요즘 학자들은 좀 다르게 봐요. 당나라가 흔들린 진짜 이유는 복잡한 정치 문제와 제도의 한계였는데 그 책임을 한 여인에게 몽땅 뒤집어씌운 면이 있다는 거죠. 솔직히 여자 한 명 때문에 나라가 통째로 기운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예쁜 여자가 나라를 망쳤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았던 것뿐이에요. 그렇게 보면 양귀비도 참 억울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ㅠㅠ
이름만 알고 지나쳤던 양귀비가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니 저는 이번에 정리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절세미인으로 온 나라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오히려 굴레가 되어버린 인생이었죠.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고 나니 양귀비라는 이름이 예전과는 좀 다르게 들리네요. 다음에도 이렇게 이름은 익숙하지만 속사정은 잘 몰랐던 인물들의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참고 자료
위키백과 양귀비 항목
ChineseWiki 양귀비 항목
디지틀조선일보 절세미녀 양귀비는 어떻게 생겼을까
한겨레 중국역사상 4대 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