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역사를 보다 보면 내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게 되는데요. 오늘 주제는 특히 그 상상이 잘 안 됐어요.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루 종일 카톡하고 심심하면 전화하잖아요. 근데 그걸 못했던 시대였으니 서로 보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요 ㅠㅠ 거기다가 글까지 모르면 편지도 못 쓰고 진짜 답답하기도 했겠다 싶었어요. 오늘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전했는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연애편지 얘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게 있어요. 중세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드물었어요. 귀족이라도 글을 못 읽는 경우가 있었고, 평민들은 거의 대부분이 문맹이었어요. 그러니까 연애편지를 쓴다는 건 일단 그 사람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거예요. 그 자체가 엄청난 능력이었던 거죠.
그래서 등장한 게 대필 서비스예요. 하고 싶은 말을 전문 필경사한테 전달하면 예쁜 라틴어 시 형식으로 써주는 거예요. 자기 마음을 남이 대신 써준 편지를 보낸 거예요. 어떻게 보면 좀 웃기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그만큼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거니까 귀엽기도 하고요 ㅎㅎ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게 아니었어요. 중세 연애편지엔 정해진 형식이 있었거든요. 인사말·본론·요청·마무리 순서가 딱 정해져 있었는데, 거기에 시적인 표현이 가득 들어갔어요. 내용은 주로 상대방을 꽃이나 별, 태양에 비유하는 식이었어요.
지금 들으면 오글거리기도 한데 ㅎㅎ 그 시대엔 이게 진지하고 격식 있는 고백이었던 거예요. 라틴어로 쓸수록 더 고급스러운 편지로 여겨졌고요. 그 시대에 살았으면 이런 편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설렜을지 상상이 가기도 해요.
장미꽃이 피고 지듯 세월은 흘러가지만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변치 않으리.
그대는 나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니.
연애편지를 쓴다고 다 보낼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신분 차이가 걸림돌이었거든요. 자기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한테 연애편지를 보내는 건 엄청난 무례가 될 수 있었어요. 잘못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생긴 게 궁정 연애(Courtly Love) 문화예요. 기사가 귀족 여인을 멀리서 흠모하지만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시나 노래로 마음을 표현하는 거예요. 닿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한 짝사랑을 예술로 승화하는 문화였어요. 답답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또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게 참 로맨틱하기도 해요. 직접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시와 노래로 남긴다는 게요. 지금 우리 눈엔 그게 오히려 더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중세 남프랑스에서 활동한 트루바두르(Troubadour)는 귀족 여인을 향한 사랑 노래를 짓고 공연하는 시인이자 음악가였어요. 이들이 만든 사랑 노래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로맨틱한 사랑의 개념이 만들어졌답니다. 현대 팝송의 원조라고 볼 수 있어요.
신분 차이를 무릅쓰고 몰래 마음을 전하는 경우엔 암호를 쓰거나 꽃과 물건에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방식도 있었어요. 특정 꽃을 보내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이고, 다른 꽃은 "기다리겠습니다" 같은 식으로요. 들키지 않으려고 발전시킨 언어였던 거예요.
꽃말 문화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는 설도 있어요. 지금도 꽃다발 받으면 꽃말이 뭔지 찾아보잖아요. 그게 중세 연인들이 들키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비밀 언어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 얘기 들으면 꽃다발이 달라 보이지 않나요 ㅎㅎ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달라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시대가 달라도 똑같았던 것 같아요.
— 중세 연애 문화를 공부하면서
현존하는 중세 연애편지 중 가장 유명한 게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편지예요. 12세기 프랑스 철학자 아벨라르와 그의 제자 엘로이즈가 나눈 편지인데, 두 사람은 신분 차이와 종교적 제약 때문에 결국 헤어져야 했어요. 아벨라르는 수도사가 되고 엘로이즈는 수녀원으로 들어갔는데, 그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거든요.
그 편지들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읽어보면 진짜 마음이 느껴져서 시대가 달라도 감동이 오는 게 있어요. 역사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두 사람의 이야기로 읽히거든요. 수백 년 전 사람인데 갑자기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요. 이런 게 역사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카톡도 전화도 없이 꽃 한 송이, 편지 한 장으로 마음을 전해야 했던 시대. 답답하기도 하지만 또 그게 오히려 더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저 시대에 살았으면 어땠을까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요.
다음엔 중세 시대 여성들은 정말 자유가 없었는지 얘기해볼게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 이야기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