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결혼은
사랑이 아니었다
태어나자마자 약혼이 결정되던 시대의 이야기
저는 얼마 전에 결혼을 했어요. 사내연애를 하다가 3년을 만나고 결혼했거든요. 결혼 준비하면서 즐겁기도 했지만 이 사람이랑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대화를 하고 맞춰나갔던 것 같아요. 그게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중세 유럽 결혼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그 당연함이 사실 당연하지 않은 거였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중세엔 결혼이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가문과 가문의 계약이었거든요. 특히 귀족 집안에서 결혼은 땅과 권력을 연결하는 정치적 수단이었어요. 당사자가 상대방을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어요.
평민들도 비슷했어요. 부모가 집안 형편이나 마을 내 관계를 보고 결혼을 정했어요.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랑 결혼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저라면 정말 이해가 안 될 것 같아요.
귀족 집안에서는 더 극단적이었어요. 태어나자마자, 심지어 태어나기 전에 약혼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두 가문이 동맹을 맺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결혼시키자"고 약속하는 거예요.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를 고르는 건데 가문을 위해 어릴 때부터 희생해야 했다는 게 진짜 이해가 안 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거잖아요.
사랑은 결혼 전에 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 후에 오길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 중세 유럽 결혼 문화의 본질
지금은 결혼식을 교회 안에서 하는데, 중세엔 달랐어요. 교회 문 앞에서 했거든요. 결혼을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나중에 취소하기 어렵게 하려는 목적이었어요.
신부가 흰 드레스를 입지 않았어요. 흰 웨딩드레스는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할 때 유행이 된 거예요. 중세엔 그냥 가장 좋은 옷을 입었어요. 파란색이나 빨간색도 많이 쓰였고요.
공개 선언이 목적. 드레스 색깔 제한 없음. 하객보다 증인이 중요했어요
흰 드레스는 19세기부터. 형식보다 당사자의 감정이 중심이에요
태어나자마자 약혼 결정. 땅과 권력을 연결하는 수단이었어요
부모가 집안 형편 보고 결정. 그나마 당사자 의견이 조금 더 반영됐어요
다 그랬냐면 그건 아니에요. 교회법상으로 결혼은 당사자 두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유효했거든요. 이론적으로는 강제 결혼이 불법이었어요.
운이 좋아서 잘 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할 수 있었겠지만, 운 나쁜 경우에는 평생 사랑받는 느낌을 한 번도 못 느낀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 안타까움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제일 마음에 남는 부분 중 하나예요.
어느 시대든 규칙보다 강한 게 마음이었나 봐요.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겠죠.
— 중세 연애와 결혼 문화를 공부하면서
결혼했는데 맞지 않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거의 방법이 없었어요. 가톨릭에서 이혼을 금지했거든요. 헨리 8세 글에서 이혼하려고 교황한테 허락을 구하다가 거절당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그 시대의 현실이었어요.
마음에 안 든다고 이혼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으니까요. 평생을 사랑받지 못하면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면 진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세 교회법에서 결혼 무효가 가능한 경우는 근친결혼, 이미 결혼한 상대와의 결혼, 당사자 동의 없이 이루어진 결혼 등이었어요. 귀족들은 이 조건들을 교묘하게 활용해서 결혼 무효를 받아내려 했답니다.
결혼 준비하면서 이 사람이랑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 수없이 대화했던 게 떠올라요. 그 과정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중세엔 그런 과정 자체가 없었던 거잖아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랑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이었을지 생각하면 현대에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엔 중세 유럽의 시장 문화를 얘기해볼게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날이 얼마나 큰 행사였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