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행 갈 때 굉장히 계획적인 편이에요. 블로그로 미리 공부해보고, 네비도 미리 찾아보고, 어디서 어떻게 가야 하나 다 생각해두거든요. 인터넷 검색하고 네비 찍고 따라가기 누르면 한국이든 해외든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근데 그게 없었던 중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다녔을까요? 상상이 잘 안 가서 찾아봤는데, 나름의 방법이 있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도가 없으면 어떻게 길을 찾냐고요. 중세 사람들은 교회 첨탑을 보고 방향을 잡았어요. 중세 유럽 어디를 가도 교회가 있었거든요. 멀리서도 보이는 높은 첨탑이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한 거예요. "저 첨탑 보이는 데까지 가면 다음 마을이야" 하는 식으로요. 지금 우리가 네비 찍고 따라가는 것처럼, 그 시대엔 첨탑을 보고 따라갔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진짜 신기하지 않나요 ㅎㅎ
강이나 산 같은 지형지물도 중요한 기준이었어요. 그리고 타번 글에서 얘기했듯이 타번에서 여행자들한테 길을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금 우리가 낯선 곳에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길 묻는 것처럼요. 방법은 다르지만 길을 찾으려는 마음은 똑같았던 거예요.
중세 여행 속도를 기록한 문헌들이 있어요.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00km니까 걸어서 가면 대략 2주 정도 걸리는 셈이에요. KTX로 2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를 2주 동안 걸었던 거죠. 중세 유럽에서 로마까지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은 몇 달씩 걸어갔어요. 그 마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상상이 잘 안 가요. 미리 계획 세우고 가도 여행이 쉽지 않은데, 지도도 없이 몇 달을 걸어갔다니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이건 처음 알았을 때 진짜 신기했어요. 중세에도 일종의 여권이 있었거든요. 교회가 발급해주는 통행 증명서였어요. 순례자라는 걸 증명하는 문서였는데, 이게 있으면 숙박이나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왕이나 귀족이 발급해주는 통행증도 있었어요. "이 사람은 우리 사람이니까 통과시켜 줘"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게 없으면 다른 영주의 땅을 지날 때 통행료를 내야 했어요. 지금도 국경에서 여권 보여주는 것처럼, 그 시대엔 영주의 경계마다 이런 절차가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걷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중세에 시작됐어요.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가는 길이에요. 중세엔 수백만 명이 이 길을 걸었고, 그 길을 따라 타번과 수도원이 생겨났어요. 지금도 연간 30만 명 이상이 걷는 세계적인 도보 여행길이에요.
중세 여행의 가장 큰 위험이 강도였어요. 마을과 마을 사이 숲이나 산길에 강도가 숨어 있다가 여행자를 습격하는 일이 빈번했거든요.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은 무장 호위대를 데리고 다녔어요. 평민 여행자들은 무리를 지어 함께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었고요.
순례자들이 무리를 지어 걷는 문화도 여기서 나온 거예요. 혼자 걷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걷는 게 안전했으니까요. 로판웹툰이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혼자 여행하는 장면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게 엄청 위험한 일이었던 거예요 ㅎㅎ
길 위의 위험은 도착했을 때의 기쁨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 중세 순례 문화의 본질
타번에서 묵는 것 말고도 숙박 방법이 있었어요. 수도원이 여행자한테 숙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특히 순례길을 따라 수도원들이 있었는데, 순례자들한테 무료로 하룻밤 재워주고 음식도 줬어요.
귀족들은 다른 귀족의 성에서 묵기도 했어요. 당시엔 손님을 대접하는 게 중요한 덕목이었거든요. 낯선 귀족이 와도 하룻밤 재워주고 식사를 대접하는 게 예의였어요. 지금 우리가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재워주세요" 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시대엔 그게 자연스러운 문화였던 거예요.
지도도 내비도 없는 시대에 몇 달씩 걸어서 순례를 떠났던 사람들이 진짜 대단해요. 지금 우리는 배터리 떨어지면 길을 못 찾는데 말이에요 ㅎㅎ 중세에 살았으면 저도 여행을 했을까, 아니면 그냥 마을에만 있었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이야기예요.
다음엔 중세 유럽의 시장 문화를 얘기해볼게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날이 얼마나 큰 행사였는지, 거기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