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하면 전쟁, 흑사병, 마녀사냥 같은 무거운 이야기들이 먼저 떠오르는데요. 근데 그 시대 사람들도 매일매일 평범하게 살았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일하고, 잠들고. 그 하루가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사실 제일 궁금하더라고요. 오늘은 전쟁이나 사건이 아닌, 그냥 중세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달랐어요. 시간 개념 자체가 달랐거든요. 지금은 24시간을 똑같이 나눠서 쓰는데, 중세엔 해가 뜨는 시간부터 지는 시간까지를 12등분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니까 여름엔 낮 한 시간이 길고, 겨울엔 짧아지는 거예요. 시간 자체가 계절마다 달라지는 셈이죠.
하루의 시작도 달랐어요. 지금은 자정이 하루의 시작이지만, 중세엔 해가 뜨는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교회 종소리가 시계 역할을 했어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하루에 여덟 번 울렸는데, 사람들은 그 종소리를 기준으로 하루를 보냈답니다.
귀족들은 하루 종일 맛있는 거 먹고 파티하면서 쉬었을 것 같잖아요. 근데 막상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어요. 물론 육체노동은 안 했지만, 사회적 역할이 있었거든요.
아침 미사 참석
사냥 · 매사냥
손님 접대 · 연회
전쟁 훈련 · 마상 시합
저녁 만찬과 음악 감상
아침 기도와 성경 읽기
자수 · 직물 감독
영지 관리 · 하인 지휘
손님 접대
저녁 만찬과 음악 · 독서
특히 귀족 여성들 얘기가 흥미로운데요. 사회적으로 맡은 역할이 없었을 것 같지만 사실 영지 관리에서 엄청난 역할을 했어요. 남편이 전쟁이나 사냥에 나가있는 동안 성 전체를 혼자 운영해야 했거든요. 식량 비축, 하인 관리, 방문객 접대, 분쟁 조정까지. 지금으로 치면 중소기업 CEO 같은 역할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이 없었다고 하면 좀 억울하지 않을까요 ㅎㅎ
이게 진짜 흥미로운 사실인데요. 중세 사람들은 지금처럼 밤새 쭉 자지 않았어요. 밤을 두 번으로 나눠서 잤어요. 해지고 나서 몇 시간 자다가 자정 무렵에 한 번 깨는 거예요. 그리고 한두 시간 동안 기도하거나 명상하거나 이웃과 대화를 나눈 뒤에 다시 잠들었답니다.
역사학자 로저 에키르치가 오래된 문헌들을 분석했더니 첫 번째 잠, 두 번째 잠이라는 표현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대요. 산업혁명 이후 인공조명이 생기면서 이 수면 패턴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새벽에 잠 못 자고 깨는 게 사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수면 패턴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주식은 빵과 포리지(귀리죽)였어요. 채소는 양파, 순무, 콩 같은 것들이었고 고기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먹었습니다. 소금은 엄청 비쌌는데, 소금이 있고 없고가 식탁의 수준을 나타냈어요. 식탁 위쪽에 소금을 두면 귀한 손님, 아래쪽에 두면 그냥 손님이라는 뜻이었답니다.
평민들 삶이 고달프기만 했냐면 그것도 아니에요. 중세엔 종교 축일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연간 공식 휴일이 약 100일에서 150일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어요. 생각보다 쉬는 날이 많았던 거예요. 물론 농번기엔 쉬기 어려웠지만요.
축제 날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춤추고 먹고 마셨어요. 평소엔 고기를 못 먹어도 큰 축제 날엔 먹을 수 있었고요. 힘든 일상 속에서 이 축제들이 사람들한테 정말 큰 의미였을 것 같아요.
중세 평민의 하루를 상상해보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새벽에 일어나 들판으로 나가고, 정오에 죽 한 그릇 먹고, 해지면 잠드는 그 삶이요.
— 중세 유럽 일상사를 공부하면서역사 속 사람들을 숫자나 사건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하루 단위로 들여다보면 갑자기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피곤하면 일찍 자고 싶었을 거고, 축제 날엔 신났을 거고. 그런 게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묘하게 친근하게 느껴지거든요.
다음엔 중세 귀족들이 뭘 먹고 살았는지 더 자세히 얘기해볼게요. 귀족들의 식탁이 생각보다 훨씬 화려했거든요. 근데 또 생각보다 이상한 음식들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