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중세 어른들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문득 궁금해진 게 있어요. 그 시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학교는 있었을까요? 장난감은요? 찾아보니까 진짜 놀라운 게, 중세엔 어린 시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7살이면 아직 뛰어놀면서 행복하게 지낼 나이인데 그때는 작은 어른 취급을 받았거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중세엔 아이를 지금처럼 보호하고 키우는 개념이 약했어요. 7살 정도 되면 그냥 작은 어른으로 봤거든요. 그림이나 초상화를 봐도 아이들이 어른 옷을 작게 줄여 입은 모습이에요. 아이만의 옷이나 문화가 따로 없었던 거예요.
평민 아이들은 5~6살부터 부모 일을 도왔어요. 들판에서 새를 쫓거나, 가축을 돌보거나, 물을 길어오는 게 아이들 몫이었어요. 지금이면 초등학교 갈 나이에 이미 일을 시작한 거예요. 물론 지금의 관점으로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그 시대에는 그게 자연스러운 삶이었으니까요. 다만 알고 나면 마음이 좀 무거워지는 건 사실이에요.
귀족 아이들은 평민 아이들이랑 완전히 달랐어요. 근데 그렇다고 편한 건 아니었어요. 7살 정도 되면 다른 귀족 집에 보내져서 교육을 받았거든요. 남자아이는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고, 여자아이는 다른 귀족 가문에서 예절과 가사 관리를 배웠어요.
부모한테 떨어져서 다른 집에서 자라야 했던 거예요. 7살인데요. 부모님을 떠나 낯선 곳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근데 당시엔 이게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어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려는 부모의 마음이었던 거예요. 표현 방식이 지금이랑 너무 다를 뿐이었죠. 그 시대에는 그 시대만의 문화가 있었을 테니까요.
7살 — 다른 귀족 집으로 보내짐
시종(Page)으로 예절·기초 무술 훈련
14살 — 종자(Squire)로 승격
기사 보좌하며 실전 훈련
21살 — 기사 서임식
7살 — 다른 귀족 가문으로 보내짐
자수·음악·예절 교육
12~14살 — 결혼 적령기
영지 관리 방법 배움
정치적 동맹을 위한 결혼
있었어요! 이 부분이 좀 귀여운데요. 나무로 만든 검, 말 모양 장난감, 인형, 팽이, 공 같은 게 있었어요. 귀족 아이들은 제대로 된 나무 장난감을 갖고 놀았고, 평민 아이들은 막대기나 돌멩이로 알아서 놀았어요. 귀족 아이와 평민 아이의 장난감 차이가 좀 마음 아프기도 하지만 또 돌멩이로 놀았다니 뭔가 귀엽기도 하고 ㅎㅎ
특히 나무 검으로 싸움 놀이 하는 건 남자아이들한테 정말 인기 있었어요. 나중에 기사가 되기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 같은 거였던 셈이에요. 지난 글에서 얘기한 돼지 방광 축구도 아이들이 많이 즐겼고요. 스마트폰이나 게임기 없어도 아이들은 알아서 놀 거리를 찾는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무 검, 말 모양 막대 장난감(지금도 있는 그거요!), 헝겊 인형, 팽이, 돌멩이 던지기, 구슬 놀이 등이 있었어요. 귀족 아이들은 체스도 어릴 때부터 배웠고요. 장난감 자체는 소박했지만 아이들은 어느 시대든 뭐든 갖고 놀더라고요.
있긴 했는데 지금이랑 완전 달랐어요. 정식 학교는 주로 교회나 수도원에서 운영했고, 라틴어, 성경, 기초 문법을 가르쳤어요. 근데 이런 학교에 갈 수 있는 아이는 극소수였어요. 대부분의 평민 아이들은 학교 근처에도 못 가봤고요.
귀족 아이들은 개인 교사한테 교육을 받거나 보내진 귀족 가문에서 배웠어요. 여성 편에서 얘기했듯이 수녀원도 교육 기관 역할을 했고요. 재밌는 건 당시 학교에서 체벌이 당연했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회초리 들고 수업하는 그림이 중세 문헌에 자주 등장해요. 이건 우리나라 옛날 서당이랑도 비슷한 것 같네요.
이 부분이 좀 마음 아픈 이야기인데요. 중세엔 아이들 사망률이 정말 높았어요. 태어난 아이 중 절반 가까이가 5살 이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추정도 있어요. 이전 글에서 중세 위생 관념이 지금과 너무 달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특히 더 위험했을 거예요. 간단한 병이나 감염으로도 쉽게 죽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부모들이 아이한테 정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는 않았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을 기록한 편지나 문헌이 남아있거든요.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고, 언제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키워야 했던 거예요.
중세 부모들이 아이를 덜 사랑한 게 아닙니다. 더 많이 잃을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에요.
— 중세 가족사를 연구하면서 느낀 점
귀족 집안에서는 정치적 동맹을 위해 아이들의 결혼을 일찍 정했어요. 약혼은 태어나자마자 하는 경우도 있었고, 실제 결혼은 여자아이 기준 12살부터 가능했어요. 합스부르크 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결혼이 사랑이 아니라 정치였던 시대였으니까요.
12살에 결혼해서 다른 나라로 시집가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말도 안 통하는 곳에 혼자 가야 하는 거예요. 엘리자베스 1세가 평생 결혼을 안 한 이유 중 하나가 어린 시절 이런 시대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어요.
중세 아이들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또 들었어요. 7살에 다른 집에 보내지고, 5살에 일을 시작하고, 12살에 결혼하는 시대였으니까요. 근데 그 속에서도 나무 검으로 싸움 놀이 하고 돌멩이 주워서 놀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묘하게 따뜻한 느낌도 들어요.
다음엔 중세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했는지 얘기해볼게요. 지도도 내비도 없는 시대에 순례길을 걸어서 다른 나라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흥미롭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