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8세 하면 뭔가 안 좋은 이미지만 잔뜩 떠오르지 않나요? 저도 그랬거든요. 부인을 여섯이나 두고 그중 둘은 처형까지 했다는 이야기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자료를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어라 싶은 부분이 계속 나왔습니다. 여자 한 명과 결혼하려고 나라의 종교를 통째로 갈아엎은 남자, 그리고 그 곁을 스쳐간 여섯 명의 왕비들. 오늘은 이 복잡하고도 얄궂은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보려 합니다.

여섯왕비를 맞이하게 된 사연
일단 헨리한테는 원래 형이 있었어요. 형 아서가 왕위 계승자였는데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죠. 그 바람에 둘째였던 헨리가 1509년 열여덟 나이에 덜컥 왕위에 오르게 됐어요. 근데 재밌는 게요 헨리는 형이 남긴 아내까지 그대로 물려받았어요. 그게 바로 첫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이에요. 스페인 왕녀 출신이라 스페인이랑 동맹을 이어가려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카드였거든요ㅎㅎ
여기서 잠깐 헨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짚고 갈게요. 키가 무려 188에 운동도 잘하고 머리도 좋고 심지어 작곡까지 하는 그야말로 다 가진 남자였어요. 이거 알고 좀 놀랐어요. 저는 그냥 뚱뚱하고 성질 사나운 왕인 줄만 알았거든요ㅋㅋ 근데 다 가지고 태어나다 보니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성격이 됐대요. 원하는 건 무조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요. 이 성격 꼭 기억해두세요.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훨씬 이해가 잘 되실 거예요.
아무튼 처음엔 캐서린이랑 사이가 진짜 좋았다고 해요. 서로 깊이 사랑하는 부부였대요. 이 부분 예전에 블로그에서도 한번 다뤘는데 다시 봐도 정말 의외예요. 이혼하겠다고 그 난리를 친 사건이 워낙 유명하니까 당연히 처음부터 데면데면한 사이였겠거니 했거든요. 근데 아니었어요.
문제는 아들이었어요. 캐서린이 임신을 여러 번 했는데 살아남은 건 딸 메리 하나뿐이었어요. 나머지는 다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요. 튜더 왕조는 이제 막 시작된 신생 왕조라 대를 이을 적법한 아들이 꼭 필요했는데 캐서린이 폐경을 맞으면서 아들 가능성이 사라진 거예요. 그놈의 아들이 뭐라고 사이좋던 부부가 그렇게 갈라섰나 싶어서 좀 답답해지네요ㅠㅠ
그러다 눈에 들어온 사람이 하필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이에요. 톡톡 튀고 매력 넘치는 여자였는데 헨리가 아주 홀딱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1527년 교황한테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고 요청해요. 명분이 좀 뻔뻔한데요 캐서린이 원래 형 아서의 아내였으니 성경 가르침에 어긋나는 잘못된 결혼이었다는 거예요. 처음부터 무효인 결혼이었다는 논리죠. 예전엔 형수랑 결혼하겠다고 교황 허락까지 받아놓고 이제 와서 말을 싹 바꾼 거라 참 어이없어요.
근데 교황이 딱 잘라 거절해요. 이유가 있었어요. 캐서린의 조카가 바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였거든요. 당시 교황은 이 카를 5세한테 사실상 붙잡혀 있는 신세라 그 심기를 건드릴 수가 없었어요. 결국 헨리는 아들 하나 얻겠다고 시작한 일 때문에 교황이랑 정면으로 부딪히게 돼요.
그래서 헨리가 내린 결정이 어마어마해요. 아예 로마 교황청이랑 갈라서기로 한 거예요. 1534년 수장령이라는 법을 만드는데요 이건 영국 교회의 우두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잉글랜드 국왕 자신이라고 못박은 법이에요. 이 한 방으로 영국은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성공회라는 새 교회의 길을 걷게 됩니다. 교황은 당연히 헨리를 파문해버렸고요. 여자 한 명이랑 결혼하겠다고 나라 종교를 통째로 갈아엎다니 이건 진짜 신기하지 않나요?
더 웃긴 건 헨리가 원래 종교개혁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교황한테 신앙의 수호자 칭호까지 받았던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랬던 사람이 이혼 한 번 하겠다고 이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ㅋㅋ
이쯤 되면 헨리는 금사빠 금사식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랑에 빠질 때는 정말 물불 안 가리고 최선을 다하거든요. 근데 아들을 못 낳는다? 그럼 그 순간 사랑이 뚝 식어버려요.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아들이든 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내치나 싶어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런데 이게 시작에 불과했어요. 앞으로 다섯 명이 더 남았거든요.
여섯왕비는 각각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자 이제 여섯 명을 한 명씩 만나볼 차례예요. 그런데 이름부터 좀 헷갈려요. 캐서린 앤 제인 앤 캐서린 캐서린이거든요ㅋㅋ 캐서린이 셋 앤이 둘이에요. 데칼코마니처럼 이름이 겹쳐서 헷갈리기 딱 좋아요.
| 순서 | 왕비 | 어떤 사람이었나 |
|---|---|---|
| 1 | 아라곤의 캐서린 | 스페인 왕녀 · 품위있고 조용함 |
| 2 | 앤 불린 | 캐서린의 시녀 · 재기발랄함 |
| 3 | 제인 시모어 | 앤의 시녀 · 순종적이고 영리함 |
| 4 | 클레페의 앤 | 독일 공녀 · 정략결혼 |
| 5 | 캐서린 하워드 | 앤 불린의 사촌 · 자유분방함 |
| 6 | 캐서린 파 | 두 번의 과부 · 인내심 강함 |
첫번째 아라곤의 캐서린은 앞에서 봤죠. 스페인 왕녀 출신에 품위 있고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셰익스피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미인이었대요. 대체 얼마나 예뻤길래 저런 소리를 들었을까요ㅎㅎ 18년이나 왕비 자리를 지켰는데 아들을 못 낳았다는 이유로 밀려났어요.
두번째 앤 불린은 정반대 스타일이에요. 캐서린의 시녀였는데 재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매력으로 왕을 사로잡았어요. 조용하고 품위 있는 왕비만 보다가 이런 여자가 나타났으니 홀딱 넘어갈 만도 해요. 근데 앤은 그냥 넘어가주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결혼 보장 없이는 안 된다고 버텼고 그 고집이 결국 나라 종교를 바꿔놨죠. 왕비가 된 뒤엔 다혈질에 질투도 많아서 헨리랑 자주 부딪혔고요. 낳은 딸이 나중의 엘리자베스 1세예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자기 부인의 시녀랑 눈이 맞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ㅠㅠ 더 얄궂은 건 앤도 결국 똑같은 방식으로 당한다는 거예요.
세번째 제인 시모어는 앤 불린의 시녀였거든요. 네 또 시녀예요ㅋㅋ 앤이 캐서린한테서 왕을 가져온 그 방법 그대로 자기 시녀한테 빼앗긴 셈이죠. 제인은 앤이랑 정반대로 순종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근데 이 사람 은근 영리했어요. 앤이 어떻게 왕비가 됐는지 다 지켜봤거든요. 그래서 왕이 보낸 선물을 돌려보내고 결혼 전엔 안 된다고 선을 그었어요. 그러니까 헨리가 더 안달이 났죠. 제인은 그토록 바라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아줘요. 근데 그 기쁨이 너무 짧았어요. 그래도 헨리한텐 진짜 아내였어요. 나중에 자기가 죽을 때 제인 옆에 묻어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보통 헨리가 가장 사랑한 아내는 제인이라고들 해요. 근데 저는 좀 갸웃해요. 정말 사랑해서일까요 아니면 아들을 낳아줘서일까요? 러브스토리만 놓고 보면 첫번째랑 두번째가 훨씬 격정적이거든요. 나라 종교까지 갈아엎은 게 앤 불린 때잖아요ㅎㅎ
네번째 클레페의 앤은 이야기가 좀 짠해요. 독일 공국의 공녀였는데 정략결혼이었어요. 궁정화가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를 보고 헨리가 반해서 결혼을 결심했거든요. 근데 실물을 본 순간 실망해버려요. 초상화가 실제보다 예쁘게 그려진 거였대요. 결국 결혼 6개월 만에 무효 선언을 받아요. 그림 보고 반했다가 실물 보고 무효를 외치다니 이건 너무 무례하잖아요. 왕이면 다인가요?ㅠㅠ 심지어 당대 다른 기록들은 클레페의 앤을 오히려 미인으로 묘사해요. 헨리 취향 문제였던 거죠. 이쯤 되면 이 사람을 부인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어요.
다섯번째 캐서린 하워드는 앤 불린의 사촌이에요. 심지어 클레페의 앤의 시녀였고요. 또 시녀에다 또 그 집안이라니 진짜 무슨 일인가 싶죠ㅋㅋ 열일곱 정도밖에 안 된 어린 나이였는데 헨리는 이미 오십 줄이었어요. 아버지뻘도 한참 아버지뻘이라 솔직히 좀 그래요. 헨리는 이 어린 왕비를 가시 없는 장미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했대요. 근데 캐서린 하워드는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자유분방하게 자란 아이였어요. 결혼 전 남자관계가 있었는데 그게 결국 밝혀지면서 파국을 맞아요. 생각해보면 여기서 처음으로 아들 문제가 아닌 이유로 결혼이 끝나요. 그동안은 오로지 아들 아들 아들이었잖아요ㅎㅎ
여섯번째 캐서린 파는 시골 귀족의 딸이자 두 번이나 남편을 잃은 과부였어요. 이해심 많고 인내심 강한 사람이었죠. 늙고 병든 헨리를 정성껏 돌봤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메리 엘리자베스 에드워드 세 남매를 한자리에 모아 교육까지 챙겼어요. 사실상 이 집안의 유일한 어른이었던 셈이에요. 평생 자극적인 것만 쫓아다니던 헨리가 마지막에 와서야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좀 신기해요.
마지막으로 소름 돋는 사실 하나요. 앤 불린과 캐서린 하워드는 사촌 사이고 제인 시모어는 이 둘 모두와 먼 친척이에요. 게다가 앤 불린은 캐서린을 섬겼고 제인은 캐서린과 앤 둘 다를 섬겼고 캐서린 하워드는 클레페의 앤을 섬겼어요. 왕비들이 서로의 시녀였다가 그 자리를 이어받은 거예요. 좁아도 너무 좁은 세상이죠. 아무리 왕의 연애사가 복잡하다지만 헨리8세는 진짜 대단해요ㅎㅎ
여섯왕비 각자의 운명 이야기
영국 사람들은 여섯 왕비의 운명을 외우는 방법이 따로 있어요. 순서대로 읊으면 저절로 외워진다니 참 얄궂은 암기법이죠ㅎㅎ
영국 학생들이 여섯 왕비를 외울 때 쓰는 여섯 단어
이제 하나씩 볼게요. 첫번째 아라곤의 캐서린은 이혼이에요. 근데 이 사람 마지막까지 정말 꼿꼿했어요. 자기는 잉글랜드의 정당한 왕비라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거든요. 결국 궁에서 쫓겨나 외딴 저택으로 밀려나고 딸 메리조차 못 만나게 됐어요. 그렇게 홀로 지내다 1536년 세상을 떠나요. 죽기 직전까지 헨리를 사랑한다는 편지를 썼다고 하니 마음이 아리네요ㅠㅠ 자기를 사랑하던 남편이 아들 못 낳는다고 확 변해서 자기 시녀랑 결혼하겠다고 종교까지 바꿔버리고 딸조차 못 보게 막았잖아요. 그 외딴 저택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두번째 앤 불린은 처형이에요. 그렇게 나라 종교까지 바꿔가며 얻은 자리였는데 딸 하나 낳고 아들을 못 얻자 상황이 급변해요. 간통과 반역이라는 죄목이 씌워지는데 증거는 사실상 없다시피 했어요. 1536년 5월 런던탑에서 생을 마감해요. 왕비가 된 지 3년 만이었어요.
솔직히 앤은 처음엔 악역처럼 보이잖아요. 멀쩡한 왕비 자리를 빼앗은 사람이니까요. 근데 결말을 보면 결국 똑같아요. 아들 못 낳았다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까지 쓰고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의 딸이 잉글랜드 최고의 군주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1세예요. 아들 못 낳았다고 내쳐진 여자의 딸이 나라를 황금기로 이끈 거죠. 역사는 진짜 아이러니해요.
세번째 제인 시모어는 사망이에요. 헨리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았는데 열이틀 만에 산욕열로 세상을 떠나요. 산욕열이란 출산 후 감염으로 생기는 열병인데 당시엔 손도 못 쓰던 병이었어요. 왕비 자리에 앉은 지 겨우 1년 반이었죠. 원하던 아들을 낳아준 아내가 하필 그렇게 되다니 이것도 참 얄궂어요ㅠㅠ
헨리는 크게 슬퍼했고 여섯 왕비 중 유일하게 왕실 장례를 치러줘요. 자기가 죽을 때도 제인 옆에 묻어달라고 했고요. 만약 제인이 살아 있었다면 둘은 끝까지 행복했을까요? 그런데 이걸 순수한 사랑으로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들의 정통성을 세우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는 해석도 있거든요. 정말 사랑해서였는지 아들 때문이었는지 이건 끝까지 미스터리예요.
네번째 클레페의 앤은 이혼인데 여기서 반전이 터져요. 이 사람이 여섯 중에 제일 잘 살았거든요ㅋㅋ 앤은 이혼에 순순히 동의해줬어요. 앞선 두 왕비가 어떻게 됐는지 다 봤으니까요. 그랬더니 헨리가 고마웠는지 국왕의 사랑하는 누이라는 칭호에 넉넉한 연금 성과 저택까지 안겨줘요. 앤은 귀국하지 않고 영국에 남아 왕실 행사에 초대받는 친구로 지냈어요. 그리고 여섯 왕비 중 가장 오래 살아서 1557년에 세상을 떠나요. 헨리보다 무려 10년을 더 살았어요. 못생겼다고 쫓겨난 사람이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거죠. 오히려 좋다는 말이 딱 어울리네요ㅋㅋ
다섯번째 캐서린 하워드는 처형이에요. 결혼 전 남자관계가 밝혀지면서 1542년 런던탑에서 생을 마감해요. 왕비가 된 지 2년도 안 됐고 나이는 겨우 스무 살 안팎이었어요. 앤 불린이 어떻게 됐는지 뻔히 알면서도 왕비 자리를 받아들였다가 결국 사촌언니와 같은 길을 걷게 됐어요.
여섯번째 캐서린 파는 생존이에요. 사실 이 사람은 왕비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청혼을 받았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앞의 다섯 명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다 봤는데 자기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닌가 싶었겠죠ㅠㅠ 근데 왕의 청혼을 거절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래도 헌신적으로 왕을 돌봤고 1547년 헨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마침내 자유를 얻어요. 다만 이 사람도 결말이 마냥 해피하진 않아요. 옛 연인과 재혼했는데 딸을 낳다가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나거든요.
마지막으로 정리해볼게요. 헨리의 세 아이가 모두 차례로 왕이 돼요. 제인의 아들 에드워드 6세 캐서린의 딸 메리 1세 그리고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요.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며 아내들을 그렇게 버렸는데 정작 왕조를 빛낸 건 딸이었어요. 딸 엘리자베스가 나라를 그렇게 잘 이끌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심지어 헨리의 핏줄은 세 자녀 대에서 끊기고 튜더 왕조는 막을 내려요. 평생을 아들 하나 얻겠다고 그토록 부지런히 살았는데 결과가 이거라니 허무하기 짝이 없네요ㅠㅠ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위키백과 헨리 8세의 아내들 · 아라곤의 캐서린 · 클레페의 앤 · 캐서린 하워드 / 나무위키 앤 불린 · 제인 시모어 · 캐서린 파